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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Jan 07. 2019

아워레가시와 스웨덴 패션

스웨덴 패션 브랜드의 저력

Acne Studios, Eytys, CMMN SWDN, Nudie Jeans, Cheap Monday, Our legacy, WeSC 그리고 H&M, 이 브랜드들의 공통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는가? 음, 다음과 같이 힌트를 하나 드리겠다.


‘스로 시작해서 웨덴으로 끝나는 북유럽에 위치한 복지 국가에 본거지를 둔 패션 브랜드.’


힌트가 어떻게 괜찮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 위에서 열거한 친구들의 정체는 바로 스웨덴의 패션 브랜드들이다.


요 근래 한국 나이로 30살이 되는 일에 성공하면서부터 옷을 입는 새로운 재미를 느껴보기 위해 또 잊고 있던 나의 언포멀한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 자유롭고 편하지만 너무 과하지 않은 느낌을 잘 잡아낸 브랜드의 아이템을 하나씩 사들여서 기존의 스타일에 믹싱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OUR LEGACY


그러한 기준에 부합하여 요즈음 나의 쇼핑 위시리스트를 가득 채우고 있는 내가 간택한 브랜드를 하나 소개해볼까 한다. 이제는 한국에도 알려질대로 알려진 브랜드인데, 거칠면서도 섬세하고, 자유로우면서도 절제되고, 투박하면서도 동시에 세련된 '형용 모순'의 감각을 일깨우는 스웨덴의 패션 브랜드 ‘아워레가시Our Legacy’다(미니멀리즘, 컬트, 놈코어,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모두 아워레가시를 수식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어떤 신비로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이 브랜드의 매력이 놓여있다.)


2004년에 Jockum Hallin과 Christopher Nying에 의해 설립된 아워레가시는 이전 세대의 유산을 물려받아 우리 시대와 세대에 맞게 적용하자는 아이디어로부터 착안해 브랜드 네임을 설정하고, 친숙하지만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스타일의 옷을 만들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출발했다(지금의 성공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아워레가시의 설립자 Hallin과 Nying은 어렸을 때 함께 하키 선수로도 활약했고, 이후 각기 다른 회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의류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꽤 단순하면서도 강력한데, 본인들이 입고 싶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티셔츠'를 만들고자 함이었다고 한다. Nying의 아버지가 비닐과 프린팅 제작물을 만드는 일을 했었기에 그들은 고텐부르크와 스톡홀름 사이 작은 도시의 집 한편에서 프린팅 티셔츠 샘플을 제작할 수 있었고, 이후 오슬로와 코펜하겐 등의 부띠크를 찾아다니며 자신들이 만든 샘플을 소개하고 공급하며 브랜드 알리기에 본격 착수하게 된다.


왼쪽부터 OUR LEGACY의 Klaren (CEO), Nying (creative director), Hallin(chairman)


Hallin과 Nying의 서브 컬처에 대한 관심, 전통 남성복에 대한 새로운 해석, 남다른 생각과 시각(예컨대 항공 슈트, 빵집이나 은행의 유니폼 등을 조합하여 어울리도록 만들려는 노력), minimalism이라는 단어보다는 reducing이라는 단어에 집중하면서 간결한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지(소재가 좋다면 주머니가 없는 재킷도 그들 눈에는 좋게 보인다.) 등은 결국 통했고 아워레가시는 아크네 스튜디오와 함께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북유럽 패션 브랜드 자리에 올라섰다.

보여주기 식 시즌 컬렉션보다는 상품 자체에(염색 방법이나 소재, 색감) 온전히 집중하는 아워레가시의 철학(상품의 약 90%는 포르투갈에서 제작되고 나머지 10% 정도는 이탈리아에서 제작된다)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역시나 탄탄한 성공의 이면에는 사건의 알맹이에 집중하는 본질적 노력이 놓여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Swedish Fashion Brands



그렇다면 스웨덴은 다른 나라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다르길래 아워레가시를 포함한 무수한 크리에이티브 패션 브랜드가 전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장악할 수 있게 된 걸까?

우선 스웨덴은 스토리를 담은 국가의 전통적 디자인 유산-깔끔하고 유행을 타지 않는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을 잘 이어받아 새로운 방식으로 혁신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이는 미니멀리즘에 대한 스웨덴 특유의 접근 방식과 맥을 같이하는데, 미니멀리즘의 추구를 통해 영속성 또는 지속성을 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시장을 확실하게 유혹한다. 다음으로 스웨덴에는 매우 잘 조직된 패션 커뮤니티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스톡홀름이나 고텐부르크처럼 비교적 작은 도시의 긴밀한 커뮤니티 유대 관계는 지역에서의 성공이 스웨덴 밖으로 퍼져나가기 전에 잘 정리되어 서로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사시사철 어두운 스웨덴의 환경적 요인은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작업에 몰두하여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바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해준다. 즉, 기후가 디자인 감수성을 높여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능주의에 대한 집착을 들 수 있다. 스웨덴의 패션 브랜드는 조금도 요란하지 않다. 그들은 스테이지에서 곧바로 매장으로 직행할 수 있는 옷을 만들 뿐이다.


패션 브랜드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사실 이제는 우리가 흔히 부르던 '도메스틱 브랜드'라는 표현이 무색해진 시대이다. 이 시대의 브랜드는 (다만 국제 중학교나 경영 대학의 식상한 캐치 프레이즈만이 아니라) 탄생과 함께 필연적으로 국제화 또는 세계화를 준비해야만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지 않아도 브랜드가 지 혼자 세상으로 뛰쳐나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칭송되는 이상하고도 신기한 시대가 아니던가. 또한 잘 만들어진 브랜드 하나는 거짓말 몇 큰 술 보태서 나라의 격을 좌지우지한다. 초등학교 시절 부루마블 게임에서나 접했을 뿐이지 좀체 아무런 감흥도 일지 않던 나라 '스웨덴'에 내가 오늘 당장이라도 티켓 끊고 달려가고 싶은 건 분명 '아크네 스튜디오'나 '아워레가시', '이케아', '앱솔루트 보드카'와 같은 스웨덴 브랜드들의 정교하고도 영리한 브랜딩 전략이 내 가슴속에 일으킨 감동의 파문 때문일 터이다. 한국의 수많은 브랜드들이 하루빨리 더 훌륭해져 허구한 날 세계를 후려치며 피곤해할 그날을 나는 오늘도 손꼽아 고대한다.


[참고]


Our Legacy: Breaking the Confines of Scandinavian Minimalism by  Jacob Victorine from Graile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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