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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Jan 26. 2019

왜 미국 래퍼들은 로렉스에 환장하는가?

로렉스를 품은 힙합, 힙합을 품은 로렉스.

미국의 남성지 GQ가 운영하는 공식 유튜브 계정에 흥미로운 주제의 영상이 하나 있다. 영상의 제목은 '10 Essentials: 10 Things Can't Live Without'.

트로이 시반, 존 조, 빅 션, 제드 등의 셀럽이 출연해 자신의 삶에 필수적인 10가지를 꼽아 설명하는 10분 내외의 클립 영상인데, 그들이 나와 얼마큼 닮았고 또 얼마큼 멀리 있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어 유익하고, 소위 잘 나가는 친구들이 어떤 것들을 소중히 하며 감각적인 매일을 살아가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재미있는 콘텐츠다.


대표 힙찔이로서 물론 나의 영상 클릭 우선순위는 미국 래퍼들이었는데, YG, Big Sean, Ty Dolla $ign, G-Eazy, Pusha-T, 6LACK 등이 탁자 앞에 '가만히' 앉아 자신의 열 가지 에센셜 아이템을 '애써' 스웨그 있게 설명하려는 모습을 보며 가오에 살고 가오에 죽는 힙합의 겉멋 정신을 본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명의 래퍼들이 열심히 나열하는 본인들만의 필수 아이템을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나는 문득 ‘내가 살 수 있는 것’과 ‘감히 살 수 없는 것’을 구별하고 있는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

래퍼 Pusha-T가 꼽은 Kiehl의 에이지 디펜더 모이스처라이저와 Aveeno의 클리어 컴플렉션 페이셜 클렌저 그리고 Uniqlo 크루넥 쇼트 슬리브 드라이 컬러 티셔츠는 내게 (나도 살 수 있는 물건이라는) 커다란 위안과 감동을 주었지만, 반면 내게 승부욕, 정복욕과 함께 좌절감과 열패감의 양가감정을 안겨준 래퍼들이 꼽은 공통적인 아이템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로렉스 시계였다.

사실 내가 처음 로렉스 시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중학교 2학년 때 엄마 몰래 구매한 투팍의 전설적인 앨범 'All Eyez On Me'의 커버 이미지 때문이었다. 그의 손목에서 빛나던 로렉스 시계와 Death Row 레코드의 심볼을 담은 금목걸이는 내가 처음으로 목도한 '힙합 스웨그'였다.


YG의 Rolex Ring from GQ Youtube
Pusha-T의 Rolex Watches from GQ Youtube
G-Eazy의 Rolex Watches from GQ Youtube
래퍼 6LACK의 로렉스와 화려한 주얼리 from GQ Youtube
앨범 All Eyez On Me 커버 속 투팍의 로렉스


여기서 잠깐 가볍게 눈을 돌려 한국 힙합 씬의 경우를 살펴보자. 개인적인 생각을 밝혀보자면 한국 힙합 씬은 물질주의에 국한한다면 미국 힙합 씬의 정통성(?)을 성실하고도 착실한 모범생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쭉쭉 흡수하여 창의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메리칸 힙합 머니 스웨그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창의적인 코리안 스타일로 수정 및 재적용하는 일에 있어 최선봉에 서 있던 그룹 일리네어 레코즈의 정규 1집 컴필 앨범의 커버 사진은 힙합 씬에서 로렉스의 의미를 너무나도 명확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세 멤버의 손목을 롯데제과의 '엄마손파이'처럼 겹쳐 그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로렉스 시계 3개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유치한(?) 앨범 커버 이미지!

2019년을 기점으로 35세의 반열에 오른 더 콰이엇이나 평소 느낌 있는 삶을 지향해 오던 빈지노 정도면 지금쯤 아마 꽤 부끄러워하며 이불을 걷어찰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2014년의 앨범 커버를 통해 대중들에게 그들의 '물질적 성공' 내지는 '자수성가'라는 개념을 로렉스 시계로 보다 확실하게 이해시킬 수 있었다. 앨범 수록곡 'Rollie Up'에서는 대놓고 서로의 Rollie(로렉스 시계)를 Up하라고 계속 부르짖기도 했다.


'Now put your rollie up up up.

Now put your rollie up tonight.

Now put your rollie up up up.

Now put your rollie up to the sky.

60돈의 금통을 들어 위로,

I paid my bills 다 처리된 지로'


일리네어 레코즈 'Rollie Up'


일리네어 레코즈의 앨범 11:11의 커버 이미지


그렇다면 래퍼들은 왜 그토록 로렉스에 열광하는 것일까. 물론 최근에는 파텍 필립에 밀려 힙합 씬에서 로렉스의 위상이 조금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렉스는 여전히 로렉스이다.

로렉스가 힙합 씬, 특히 본토 미국 힙합 씬에서 갖는 의미는 무얼까. 어쩌면 그 이유란 것은 너무나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로렉스 시계는 익스펜시브하고 클래식하며 패셔너블하고 멋있기 때문에. 하지만 세상에 익스펜시브하고 클래식하며 패셔너블하고 멋있는 명품 시계는 차고 넘친다. 방금 언급한 파텍 필립부터 위블로, 피아제, 리차드밀, 오메가까지(또 뭐가 있더라?) 그리고 실제로 어떤 곡들을 통해 래퍼들은 로렉스가 아닌 파텍 필립이나 위블로 등을 대놓고 찬양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이지 미국 힙합 씬에서 로렉스는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만 같다. 단순히 로렉스 시계의 가격이나 브랜딩, 일반 사회적 위상, 디자인 측면에서의 우수성 때문이라고 축소 해석한다면 어딘가 모르게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음, 앞서 언급한 유튜브 GQ 10 Essentials 인터뷰 속 래퍼 Pusha-T와 G-Eazy가 Rolex를 자신의 필수 아이템으로 꼽으며 덧붙인 말을 들어보면 힙합 씬에서 로렉스가 가지는 의미에 대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래퍼 Pusha-T

"로렉스는 많은 의미가 있어요. 힙합 인더스트리에 있는 친구들과 제게 로렉스는 어떤 성취의 징표예요. 우린 이만큼 벌었고 성공했다. 일종의 벤치마킹 같은 거죠."


래퍼 G-Eazy

"제게 로렉스는 우월한 클래스예요. 저는 로렉스에 대해 떠드는 랩을 들으며 자랐어요. 로렉스는 성공으로 가는 길목에서 늘 가지고 싶은 어떤 벤치 마크 같은 거예요. 매번 손목을 내려다보면서 로렉스를 보고 시간을 확인하면 자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어떤 격이 있어요."


래퍼 Pusha-T와 G-Eazy는 인터뷰를 통해 로렉스를 어떤 성공의 벤치 마크, 즉 성공의 증표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이 성공 기준점으로서의 ‘로렉스’의 입지를 만든 건 누구이며 또 언제일까. 나는 하나의 인기 현상을 확실하고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의 원류를 파헤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주의를 가지고 있다. 그리 재미있는 일은 아니지만(사실 따분한 일에 더 가깝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1984년을 전후로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등장한 25세에서 39세 사이의 쿨하고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을 가리켜 여피YUPPIE족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물질과 성공 지향적인 삶에 경도되어 조금 거칠게 분류하여 이야기하자면 '보여주기식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종족(?)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공적 인생의 제스처로써 BMW와 포르셰, 큼지막한 로고의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 등을 활용했는데, 그러한 여피족의 보여주기식 생활양식과 취향은 그들의 손목 위에선 로렉스 시계로 대변되었다.

여피족은 사실상 미국 트렌드 세팅의 중심지 뉴욕에서 탑 리딩 그룹으로 활약하며 그들이 지향하는 삶의 양식과 과시적 취향은 자신들의 실제적 노력과 미디어를 통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리고 수년이 흘러 여피족이 지핀 과시적 소비와 보여주기식 라이프스타일 혁명의 불꽃은 미국 힙합 씬으로 옮겨 붙게 된다(물론 커티스 블로우부터 에릭 비&라킴 등의 70/80년대 고전 래퍼들도 블링블링한 골드를 자랑하며 자신들의 건재함을 드러냈지만, 90년대에 이르러서야 힙합이 하나의 분명한 뮤직 인더스트리로써 확실히 자리 잡고 부자 래퍼들을 만들어내며 블링블링하고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추종자들을 양산했다.)


사실 다른 음악 장르와 달리 힙합은 아티스트의 독특하고 개성적 면모(제스처, 패션 스타일 등)와 특징적 표현의 가사 등이 하나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이자 브랜드 페르소나로 기능하며 하나의 스토리가 된다. 특히 랩 가사는 아티스트 그 자체를 온전히 대변하는 수필 문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초중반을 전후로 하여 힙합 인더스트리에 진입하고자 하는 이들과 이미 힙합 씬에서 활동하던 이들에게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미국의 두 전설적인 래퍼 투팍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아니, 없을 수도 있구나. 많지 않을 것이다,라고 정정하겠다) 지금까지도 투팍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의 탄생일과 사망일에 현역 래퍼들은 온 마음을 다해 그들을 향해 무한한 리스펙트를 날리는 게시물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이 두 래퍼가 힙합 씬에서 지니는 의미와 영향력을 구구절절 이야기하다가는 이 게시물의 본질을 놓치게 될 것이기에 아주 간단히만 비유하자면 그들이 (미국) 힙합 씬에서 갖는 의미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역사 속 위인 둘을 꼽아보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탑 오브 마인드로 튀어나오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갖는 의미 정도와 감히 비견될 수 있을까(래퍼 ZICO의 형이자 쇼미더머니 참가자 우태운은 쇼미 방송에서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의 아이코닉 송 'Hypnotize'의 비트를 잘 모른다고 하여 뭇 래퍼들과 힙찔 팬들을 당황케 하였다).

말인즉슨 생전 그들의 라이프스타일 면면은 곧 성공적 랩스타란 무엇이고 어떠한가에 대한 기준점으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90년대에 이르러 힙합이라는 음악 장르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힙합이라는 장르 브랜드의 마케팅적 요소로서 유명 래퍼가 두른 디자이너 의류와 명품 시계가 활약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단연 노토리어스 비아지와 투팍이 놓여 있었다. 둘의 노래 속 이런 가사를 한 번 보자.


Where the true players at? Throw your Rollies in the sky

Wave'em side to side and keep your hands high

Mo Money Mo Problems by NOTORIOUS B.I.G


Th*glife nig*az (Hey, pass me my m*therf**kin' Rolex)
Th*glife nig*az (Yes, bi*ch, that's a Presidential)

Out On Bail by 2PAC


NOTORIOUS BIG
2PAC


미국 힙합 씬의 꼭대기에 올라 힙합 장르의 커머셜라이징을 앞당긴 래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와 투팍은 그들의 음악을 통해 놀 줄 아는 놈이라면 Rollie를 하늘 위로 추켜올려 흔들어재끼라고 요구하고, 자신의 프레지덴트 로렉스를 달라며 소리친다.

왜 그런 말 있지 않나. 애들은 다 어른들을 보며 배운다는 말. 개인적으로 그렇게 시간의 세례를 받은 관용적이고 습관화된 말속에는 과학적인 일리마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와 투팍이 던지는 이런 로렉스 라인은 랩스타가 되고 싶은 래퍼들과 이제 막 래퍼가 되고 싶은 꿈나무들에게 가난을 벗어나고 싶고 정상을 정복하고 싶고 랩스타의 꿈을 이루고 싶은 막연한 열망을 구체화시켜주는 좋은 매개가 되었을 것이다.

아메리칸드림의 3요소를 두고 지극히 세속적으로 훌륭한 집, 멋진 차, 반짝이는 시계를 꼽기도 한다.

1993년, 도둑질을 당한 투팍은 다이아몬드와 골드 주얼리 따위를 강도에게 빼앗겼지만, 그의 프레지덴셜 로렉스 데이 데이트만은 건재했다. 과연 아무리 도둑일지라도 염치는 있는 것이다. 감히 한 사람의 꿈을 짓밟아서는 안된다는 상도를 지킨 것이다.


대학에서 광고를 전공한 사람이자 한때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어 발광하던 나는 좋아하는 카피 몇 개쯤을 외우고 다니는데, 그중에는 로렉스의 이런 카피가 있다. 로렉스를 품은 힙합에게 아래 카피를 바치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 내가 쓴 카피는 아니지만(멋쩍).


'세상 그 어떤 사전에도 우리가 하는 일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단어는 없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지만 전통이라고만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혁신은 오직 시작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조각하고 그림을 그리고 탐험하지만 탐험가, 조각가, 화가는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단어는 없습니다. 롤렉스 웨이만 있을 뿐입니다.'



덧붙이는 말)


1. 좋은 친구 사이에서 나중에는 웨스트코스트와 이스트코스트 힙합 씬의 대표가 되어 서로를 죽일 듯이 노리다가는 결국 사이좋게 목숨을 잃은 투팍과 노토리어스 비아지에 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하나. 투팍은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의 첫 로렉스를 사준 주인공이었다.


2. 로렉스가 파텍 필립에 밀리고 있다. 아니, 밀린 지 꽤 된 것 같다. 래퍼들도 아마 로렉스에 질렸거나 너무 흔해서 짜증 났거나.


참고)

https://www.magneticmag.com/2017/05/the-psychology-behind-watches-in-hip-hop/

https://www.bobswatches.com/rolex-blog/just-because/hip-hop-icon-nas-rolex-watches.html

https://www.gq.com/story/nas-talks-rolex-diamonds-apple-watch

https://www.highsnobiety.com/2017/04/05/hip-hop-jewelry/

http://www.marketwired.com/press-release/rolex-who-is-wearing-rap-star-wileys-rolex-what-about-tupac-shakurs-rolex-920429.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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