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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평연습 Oct 31. 2021

고독은 인간 존엄의 한 형태일 수 있다.

#1. 첫 번째 책)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우리 시대의 책읽기, 첫 책으로 이 작품보다 더 적절한 책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 책은 책들에 대한 책이자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책, 다시 말해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

첫 번째 책,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체코, 1980.






태양만이 흑점을 지닐 권리가 있다.
-괴테



소설 첫머리에 인용된 이 제사는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아마도 이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이 작품을 파악하는 중요한 과정이 될 것 같습니다. 여러 번 읽고 고민한 끝에 제가 찾은 나름의 답은 이렇습니다 : '인간만이 고독을 지닐 권리가 있다.'


흑점은 태양 표면의 검은 얼룩 같은 것으로, 태양의 밝게 빛나는 얼굴에 난 흉터 같습니다. 흑점이 없다면 더 아름다울 텐데, 완전무결해 보이는 태양에게도 결점은 있다는 뜻일까요?

괴테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태양이기에 가질 수 있는 게 흑점이라며, 태양만이 흑점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더 나아가 흑점이 태양을 태양답게 만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보후밀 흐라발은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인간만이 느끼는 고독을, 태양만이 갖는 흑점의 위치로까지 격상시켰습니다.






폐지 압축공 ‘한탸’는 삼십 오년째 어두운 지하실에서 쏟아지는 폐지 더미 속에 파묻혀 일하고 있습니다. 그 폐지 더미 속에서 발견하는 책들 덕분에 그는 의도치 않게 교양을 쌓고 그의 고독은 시끄러워집니다. 흥미로운 것은, 한탸는 책을 읽으며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나에게 독서는 기분 전환이나 소일거리가 아님은 물론, 쉽게 잠들기 위한 방편은 더더욱 아니다. 십오 대에 걸쳐 사람들이 글을 읽고 써온 나라에 사는 내가 술을 마시는 건, 독서로 인해 영원히 내 잠을 방해받고 독서로 인해 섬망증에 걸리기 위해서다.
-12p


이 대목은 같은 체코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의 그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우리는 우리 정신을 헤치고 찔러대는 책을 읽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우리 뒤통수를 때려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가?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기분 전환이나 소일거리가 아니라 우리 정신을 헤치고 찔러 대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들, 독서로 인해 영원히 잠을 방해받고 독서로 인해 섬망증에 걸리기 위해 책을 읽으며, 스스로 외톨이가 되려 하고 기꺼이 고독해지길 바라는 그런 사람들. 흐라발과 카프카 같은 사람들. 한탸는 그런 모든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즐거워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서 책을 읽습니다. 왜냐하면, ‘최상의 자신’이 되기 위해서지요.


그 무렵 압축기로 책들을 압축하노라면, 덜컹대는 고철의 소음 속에서 20기압의 힘으로 그것들을 짓이기고 있노라면, 인간의 뼛조각 소리가 들리곤 했다. 마치 고전 작품들의 뼈와 해골을 압축기에 넣고 갈아댄다고나 할까. 탈무드의 구절들이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올리브 열매와 흡사해서, 짓눌리고 쥐어짜인 뒤에야 최상의 자신을 내놓는다.’
-26p


어쩌면 독서란 압축기에서 짓이기고 갈리는 고통과도 맞먹는 행위일지 모릅니다. 우리의 정신을 뒤흔들고, 고통을 선사하고, 시끄러운 고독에 빠뜨립니다. 이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소설의 (비극적) 결말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소설의 중/후반부에 이르자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기계와 문명, 과학의 발전이 파괴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날로그를 집어삼키는 자동화 기계의 폭력이란 무엇인지? 이제 이 작품은 이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부브니의 거대 압축 기계 앞에서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수많은 책들이 압축기의 거대한 입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책이 외면당하는 우리 시대의 모습을 발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익명의 꾸러미들을 미친 듯이 압축하고 또 압축했다. 고대나 현대 화가의 복제화 따위도 염두에 없었다. 나는 보수를 받고 일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예술과 창조, 미의 창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99p






소설 마지막 부분의 텍스트는 마치 술 취한 사람의 걸음걸이 같습니다. 비틀거리고 아슬아슬하면서도 결국엔 가야 할 곳에 간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 가야 할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맨 처음’이라 대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삼십 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7p


이토록 담담한 첫 문장은, 그 무던함 때문에 무심코 흘려 보내기 쉽습니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면 중요한 단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러브 스토리’.

이 단어에 집중하면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맥락을 알기 힘든 몇 가지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어린 집시들 이야기라던가, 한탸의 실패한 첫사랑 이야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다시 만난 만차의 사랑 이야기 등등……


이것들은 모두 불완전한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뭔가 부족했거나, 어긋났거나, 뒤틀리고 부러졌거나, 꼭 맞지 않고 튀어나왔거나… 한탸의 인생은 이렇게 미완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온전한 사랑이 단 하나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인생을 가득 채운 미완의 사랑들 사이, 단 하나의 온전한 사랑, 온전한 러브 스토리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신봉했던 책들이며, 폐지 압축이며, 그토록 시끌벅적했던 고독입니다.


그에게 고독은 결점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절망적인 것도 아닙니다. 불완전함 사이에서 오히려 빛나는 완전함이자,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내야 할 무엇이었습니다. 고독은 자신을 완성시키는 것이었으며 그건 이를테면 태양의 흑점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고독 속에서 그는 온전한 사랑을 찾고 그저 폐지를 압축하는 기계부품이 아니라 인간이기를 자처했습니다. 자신에게 고독할 권리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결말에서 끝내 한탸는 스스로를 버리는 선택을 했으나, 그 대신 중요한 무언가를 지켜냈다고 여겨집니다. 그 ‘무언가’란, 지금 제 힘으로는 인간 존엄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나와 비슷한 수많은 사람들이 프라하의 밑바닥, 지하실과 지하 공간에서 활기 넘치는 생생한 생각들로 머릿속을 가득 채운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걸 알고 나니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기운이 난다.
-41p


이 문장 덕분에 한 폐지 압축공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이것은 우리에 대한 이야기, 우리 시대의 책읽기에 관한 이야기, 독서라는 고독한 정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08.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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