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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평연습 Oct 31. 2021

그러나 다소 순진한 여정

#14. 열네 번째 책) 조 예은, <스노볼 드라이브>


언젠가 들었던 스티브 잡스의 말이 이 작품과 참 잘 어울립니다.

"The journey is the reward." -여정 자체가 보상이다.

열네 번째 책, <스노볼 드라이브>, 조 예은, 한국, 2021.






꼭 영원히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25p中



이 순박한 작품의 마지막 문장을 옮겨 적다 보니, 꼭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아이에게는 달리는 힘만 있을 뿐, 어딘가에 도달하려는 의지는 없기 때문에, 달려 나가는 움직임만 있고 명확한 목적지는 없기 때문에.

그래서인가 이 작품의 결말은 어딘지 꼭 아이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꼭 영원히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면서 끝나는 이 소설. 여기서는 그만큼 '달린다'의 의미가 중요해집니다.

이월과 모루 이모의 기묘한 만남은 고속도로 위에서 이루어지며, 이들은 트럭을 타고 함께 '달리며', 많은 중요한 대화들을 나눕니다. 이월의 개 '하루'가 공장에 숨어들었을 때 그 숨막히는 적막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는' 장면, 이월과 모루의 이모가 강도에게 쫓기며 '달리는' 장면, 마지막에 모루가 이월을 만나기 위해 보호 장구도 없이 '달려가는' 장면…….


이 소설에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인물들이 '달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이 어디로 달리는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월과 모루의 이모가 쫓길 때, 그들은 그저 강도를 따돌리기 위해 달릴 뿐, 어딘가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월이 새엄마를 묻어주기 위해 트럭을 타고 갈 때 역시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냥 갑니다.


이 소설 제목의 일부이기도 한 '드라이브' 라는 말은, 바로 이런 것들을 가리키기 위한 하나의 표현으로 보입니다.

정확한 목표와 목적의식을 갖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일련의 행위들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행위. 그러니까 <스노볼 드라이브>에서 '달린다'는 행위는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달리기 위해 달린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의미가 되는 '달리기' 입니다.


말하자면, 내가 현재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어디로 가는지 혹은 언제 도착하는지와 같은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그런 세계, <스노볼 드라이브>에서 이 작가가 그리고 있는 세계는 바로 그런 곳입니다.

따라서 '드라이브' 란, 어떤 움직이는 상태, 즉 목적지가 어디든간에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이 소설의 어조로 보자면 아마도) 고무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이 작품은 우선 두 인물 -이월과 모루의 어떤 모험 이야기로 읽힙니다.

녹지 않는 눈이 내리는 세계에서 인물들은 각자의 어떤 미스테리들 (이를테면 과거의 어떤 기억이라든지, 이모의 미스테리한 실종이라든지, 스노볼이라는 의미심장한 단서라든지……) 에 둘러싸인 여정을 떠납니다.


그런데 그 여정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작가는 하나의 여정(모험)을 그리고 있으나, 앞서 말했듯이, 그 여정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고요.

오히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움직인다는 사실, 달리고 있다는 사실, -최종적으로는 결국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는 여정 그 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가만히 서 있지 않고 나아가는 상태, 작가의 표현과 일치시켜 말하면, 일종의 '드라이브' 상태.

그러므로 이 소설의 목적지가 어디든, '꼭 영원히 달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순수한 낙관으로의 귀결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말로 아이같은 구석이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저를 포함해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어딘가 덜 끝난듯한 느낌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들이 많이 남아 있고, 특히나 실종된 모루의 이모의 행방이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은 채로 이야기가 끝나고 맙니다. 찝찝함을 남긴 채로.

답을 내려주지 않고 이렇듯 모호하게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방식은 '열린 결말' 이라는 소설 기법으로 옹호될 수도 있겠으나, 이 경우에는 치열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너무나 간편하고 쉬운 길을 택한 것이 아닌가, '드라이브' 라는 어떤 상징적인 메세지에 의존하여 쉽게 결말을 맺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서 말한 바대로 <스노볼 드라이브>라는 작품의 결말에 어딘가 아이 같은 구석이 있다는 점은 어쩌면 이 작품의 가장 큰 약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작가는 여정의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 그 자체라는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작품을 다 읽고 난 뒤에 남는 것은 그 메세지를 수반한 깊은 감동이라기보단 너무 단순해서 순수하게까지 여겨지는 어떤 순진한 믿음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여정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이 작가가 그려내는 여정이 치열하지 못한, 다소 순진한 여정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이 작품을 한 마디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

목적지가 어디든, 영원히 달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순수한 낙관.


이런 소설을 읽으며, 언젠가 들었던 여정 그 자체가 보상이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을 떠올려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영원히 달릴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0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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