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평연습 Oct 31. 2021

작고 유치하고 착한 상상력

#16. 열여섯 번째 책) 정 세랑, <재인, 재욱, 재훈>


유치하지만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쓰는 능력이 아마도 독자들이 이 작가를 찾는 이유 같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같은 이유로, <재인, 재욱, 재훈>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열여섯 번째 책, <재인, 재욱, 재훈>, 정 세랑, 한국, 2014.






어쩌면 구해지는 쪽은
구조자 쪽인지도 몰라.
-164p中



정 세랑 작가의 소설을 두고 많은 설명을 늘여놓는 것은, 불필요할 뿐더러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짧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녀는 유쾌하고 순수하게 소설을 쓴다, 라는 게 여태껏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며 떠올린 저의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 작품, <재인, 재욱, 재훈>을 포함해 그녀의 대부분의 소설들은 정말로 유쾌하고 순수하기 그지없습니다.


소설을 읽어 보면 그 작가의 문학관이 여실히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한 작가의 글을 읽으면 그 작가가 소설을 어떤 도구로(혹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누군가는 소설을 어떤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씁니다. 또 누군가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소설을 쓰고, 정치/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소설이란 일종의 탈출구일 수 있고, 무기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겐 편지나 일기 같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듯 한 편의 소설을 쓴다는 행위에는 너무나 많은 이유와 목적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제 생각에 정세랑 작가가 글을 쓰는 목적은 치유나 휴식에 있는 듯합니다. 편안함을 제공하는 것. 따라서 그녀에게 소설이란 힐링의 도구가 됩니다.


이것은 작가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게 독서란 일종의 노동일 수 있습니다. 또 누군가에겐 독서가 오락일 테고, 혹은 어떤 탐구의 영역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읽는 이의 입장에서 늘 그녀의 소설들은, 언제나 편안한 휴식으로 여겨집니다. -쉬어 간다는 느낌. 특히 <재인, 재욱, 재훈>은 독자에 입장에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쩐지 이 글을 쓴 작가도 편안하게 썼을 것만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소설을 힐링의 도구로 사용하는 이 작가의 자세가, 그녀의 소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도 영향을 주나 봅니다.


따라서 편안함이 소설에 있어 하나의 덕목이 될 수 있다면, 이 작가가 독자들에게 왜 그토록 사랑받는지를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유쾌하고 순수하며 편안한 이야기를 쓰는 능력. 이것이 아마도 독자들이 이 작가를 찾는 이유일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의 내용을 한 마디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



영문도 모른 채 어떤 특별한, 그러나 아주 사소한 (초)능력을 갖게 된 인물들이 몇 명의 사람들을 구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라는 마지막 문장으로 보아, 어쩌면 앞으로 더 구할지도 모릅니다.


작중에는 이런 대사도 나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아직도 세계의 극히 일부인 것 같아. 히어로까지는 아니라도 구조자는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
-164p


히어로까진 아니더라도 '구조자'.

이 소설에서는 그런 평범하고 사소한 구조자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제공하는 조그만 친절과 다정함이 주제가 됩니다. 대단한 영웅이거나 위대한 업적이 아니고요.

이 글의 맨 처음에 인용된 글은, 작고 평범한 한 '구조자'의 대사였습니다.



"어쩌면 구해지는 쪽은 구조자 쪽인지도 몰라."



-라는 대사는 구조자가 타인을 위해 내민 도움의 손길이 때론 자기 자신을 돕기도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작가가 글을 쓰고 그것이 독자에게 치유와 휴식을 제공하는 일을 일종의 '도움의 손길' 이라고 본다면, 그것이 작가 자신을 돕기도 한다고 말입니다.

이 작가는 소설을 통해 누군가를 치유하거나 쉬게 하려는 듯 보이지만, 저 말대로라면 이런 글을 씀으로써 오히려 정말로 치유받고 휴식을 얻는 쪽은 바로 작가 자신이겠지요.


힐링의 도구. 이 작가가 소설을 바라보는 태도가 이것입니다. 그런데 이 힐링이란, 읽는 이 뿐만 아니라 쓰는 이에게도 해당되는 말인 듯합니다. 다시 말해, 그녀는 소설을 쓰면서 치유받고, 또 그 소설로 사람들을 치유합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 <재인, 재욱, 재훈> 뿐만 아니라 그녀의 소설은 언제나,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입니다.






유치하다 할 만큼 순수한 상상들이, 그녀의 소설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현실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 역시 너무도 순수하고 유쾌해서, 그녀의 이야기는 유치하지만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이 상상력을 두고 착한 상상력이라 말한다면, 아마도 그녀가 창조한 세계에서 '힐링' 받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09.29.21.

instagram : 우리 시대의 책읽기(@toonoisylonelinesss)

naver blog : blog.naver.com/kimhoeyeon

작가의 이전글 침묵과 부재 속에 의자가 스스로 연기하는 기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