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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평연습 Dec 14. 2021

몽상의 기쁨과 슬픔

#29. 스물아홉 번째 책) 고 수유, <혼자라서 그립다>


그의 몽상에 동참하면서 인간이 겉으로는 유한하지만 안으로는 무한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혼자라서 '외롭다'가 아니라 혼자라서 '그립다'고 말하는,

이제껏 본 적 없는 감수성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스물아홉 번째 책, <혼자라서 그립다>, 고 수유, 한국, 2020.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99p, <그리움의 오후>中



이 작가의 소개글을 보니, <문학사상>에서 시로 데뷔하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로 당선되며 문학상을 받은 적 있다고 나옵니다. 또 <글쓰기가 두려운 그대에게>를 비롯해 몇 권의 글쓰기 혹은 책쓰기에 관한 책을 낸 적도 있고, 자기계발서, 시집, 장편소설, 불교에 관한 학술서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하게 글을 쓰고 있는 듯 합니다.

따라서 이 작가를 몇 가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가능합니다. 예컨대 그를 소설가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혹은 시인이라 부를 수도, 에세이스트나 수필가라 부를 수도, 아니면 그냥 작가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이름들 중 하나로는 <혼자라서 그립다>를 쓴 그를 나타내기 힘듭니다. 제 생각에는, 적어도 이 책에서만큼은 그에게 소설가나 시인이라는 이름보다는 몽상가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혼자라서 그립다>를 읽으며 이것이 어떤 종류의 글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는 아니고 소설은 더더욱 아닙니다. 굳이 규정해야 한다면 산문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만, 그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책은 하나의 몽상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일은 그의 몽상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처음에 이 책을 읽으며 하고자 했던 작업은 우선 각 글들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여기 실린 백여 편의 글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발견하는 일, 이 책을 하나의 단어로 요약한다면 그 단어는 무엇일까를 고민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끝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이 책의 제목이 암시하는 '혼자', 혹은 '그리움'이라는 단어도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을 함축할 수는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리움'과 관련된 글이 있는가 하면, '삶'을 이야기하는 글도 있었고, 반대로 '죽음'을 이야기하는 글이 나오거나 '언어'에 관해 말하는 글도 있었습니다. '발레' 이야기, '사랑' 이야기, '꿈' 이야기 등등, 이 글들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들어 있어서 하나의 키워드로 요약한다는 발상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따라서 '몽상'이라는 말로 집약하는 것 외에는, 이 책을 요약할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는 어찌 보면 두서 없고 정신 없이 이야기를 이어 가며, 그 주제는 모호하고 자주 바뀝니다. 하지만 한 가지 일관된 것이 있다면, 그가 계속해서 '생각'하고 '상상'하며, 또 '느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한, 이처럼 꿈처럼 펼쳐지는 생각과 상상을 조금의 부정적인 뉘앙스도 없이 '몽상'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가의 의도를 해치지 않으면서 최대한 사려 깊게 이 책을 한마디로 줄인다면, '함께하는 몽상'이라 쓰는 법을 택하겠습니다. 그의 몽상이 몽상으로만 존재했을 때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글로 써 남겨 놓은 순간부터, 그의 몽상은 공유되는 몽상이고 다시 말해 독자들과 함께하는 몽상일 것입니다. 우리는 문장을 읽는 것으로 그의 몽상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이 작품이 독자와 작가 사이 하나의 매개체가 되어서, 몽상이란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면, '혼자라서 그립다'고 호소하는 작가의 말을 이렇게 뒤집을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일이 '함께' 그리워하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이 글은 헤세의서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쓰였습니다.





12.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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