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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평연습 May 30. 2022

이제는 덜 유창하고 더 주저하는 시를

#56번째 책)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 느린걸음(2022)


이제 이 시인은 숨쉬듯이 시를 써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박노해의 이번 네 번째 시집이 출간되는 데 12년이 걸렸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여기에 실린 삼백여 편의 시들은 일단 그 수에 있어 압도적이다. (이렇게 두꺼운 시집이라니?) 시 쓰는 일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작품들도 몇 있었지만, 이번 시집 안에는 시인으로서의 긍지나 자부, 가능한 오래 시를 쓰고 싶다는 결심 같은 것들이 더 많이 보였다. 시인이 시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으나, 그 사랑의 정도가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과연 이렇게 될 수도 있구나 싶다. 이번 네 번째 시집에서 그는, 그야말로 시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의 시작에서 박노해가 숨쉬듯이 시를 쏟아내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썼지, 그런 '경지'에 도달했다고 쓰지는 못한 이유가 있다. 그는 1984년 기념비적인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의 출간 이후 지금까지 무려 40년째 시를 써 온 장인이자, 내공있는 기술자다. 실제로도 그의 시를 읽어 보면 틀림없이 오랜 공력의 솜씨임을 알겠다. 일필휘지란 말도 있거니와, 슥슥 휘둘러서 척척 써 내는 장인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런데 그것이 독자로서는 기뻐할 만한 일이 못 된다. 그의 시는 유려하고 문장은 숨쉬듯 자연스러우나, 그런 유창함은 좋은 시의 자질과 무관하다. 사실 읽기 어렵고 부자연스러운 문장들에서 '시적인 것'을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들의 그 '낯섦'에서 비로소 새로운 언어의 지평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낯설게 하기'는 언제나 시의 본령이다. 시의 가치를 탐구하는 일에서 참으로 다양한 관점의 미학이 존재하지만, 결코 이 '낯설게 하기'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대학에서 시를 가르칠 때도 가장 처음에 가르치는 것이 이것이다. 시의 언어가 어떤 치명적인 '낯섦'을 제공하면, 한 번 그것을 읽고 난 후에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고, 때문에 한 편의 시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해도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꿀 수는 있게 된다. 대강 말한 것이지만 이것이 좋은 시를 읽었을 때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다시 말해 낯선 시가 다 좋은 시는 아닐지언정 언제나 좋은 시는 낯설다.

그런데 박노해의 시집은 낯설지가 않다. 이번 시집에서는 낯선 언어를 맞닥뜨리고 고민에 빠지는 일보다, 당연하고 듣기 좋은 말들 앞에서 그저 수긍하고 넘어가는 일이 더 잦았다. 범박하게 비유하면 이 삼백여 편의 시들 중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시는 적었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시들이 대부분이었다. 많은 시들이 충분히 '시적'이지 못했다는 의미다. 시는 아름답고 좋은 말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말을 아름답게 쓰는 것이라고, 문학 평론가 신형철 선생은 말했다. 이미 아름다운 말들만 골라서 쓰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는 아름답다고 생각되지 않는 말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시인이라는 의미에서 한 말이겠다. 이번 시집에는 아름다운 시들이 많이 실려 있지만, 내게 그것은 이미 아름다운 말들을 잘 골라서 모은 결과처럼 보였다. 때문에 이 시집이 낯설지 않고 익숙했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던 날
그날, 내 영혼은 피폭되어버렸다

팔레스타인에 드론 폭탄이 떨어지던 날
그날, 내 영혼에는 표적의 칩이 박혀버렸다

4대강이 거대한 시멘트 관 속에 수장되던 날
그날, 내 영혼의 은하수는 끊어져버렸다

교복 입은 그 소녀가 옥상에서 투신하던 날
그날, 내 영혼에는 움푹 핏자국이 파여버렸다

세계의 토박이 농민들이 삶터에서 쫓겨나던 날
그날, 내 영혼은 유민으로 추방되어버렸다

(…)

그날 이후,
나는 영혼의 연루자가 되고 말았다

-161면, 「영혼의 연루자」 부분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어떤 시들은 감동적이었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 폭발 사고가 일어났을 때 그는 마치 자신이 피폭된 것처럼 안타까워한다.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비극에서도 그는 그것이 자신과 상관 없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한 여학생의 투신 자살 사건도 자신이 겪은 일인 것마냥 "내 영혼에는 움푹 핏자국이 파여버렸다"고 고백한다. 세계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든, 그는 타인의 어떠한 비극도 다 제 마음 안에 품는다. 세상의 모든 비극과 "연루"되어 있다고 믿는 감수성. 그의 언어가 낯설지 않았다고 해도, 이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감수성만큼은 분명 낯선 것이었다.

이 시를 읽고 그가 왜 시를 쓰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타인의 상처를 제 상처처럼 받아들일 줄 아는 예민함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겠다. 그런 윤리적인 감수성을 갖기 힘든 시대라서, 그가 보여주는 예민한 감각은 특히 감동적이다. 쉽게 상처받고 남들보다 잘 아파한다는 점이야말로 그가 가진 시적 자질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가 쓸 시가 지금보다 더 민감하고 섬세해지기를 기대해 보아도 좋겠다. 다만 그것은 낯선 언어 위에 놓여졌을 때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그가 시를 어렵게 쓰기를 바란다. 숨쉬듯이 자연스럽게 쓰인 시는 읽기에 편할지 몰라도 덜 매혹적이고 덜 오래간다. 그의 시가 덜 유창하고 더 주저하면 좋겠다. 우리는 쉽게 나온 열 편의 시가 아니라 어렵게 쓰인 한 편의 시를, 가까스로 쓰인 하나의 문장을 더 기다린다. 익숙하게 아름답기보다 낯설게 절망하는 시들을 우리는 더 기다린다. 그의 다섯 번째 시집에서는 시를 막 쏟아내는 '지경'이 아니라, 하나하나 겨우 토해내는 '경지'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05.30.22.

*이 글은 느린걸음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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