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평연습 Jun 30. 2022

좋은 시집과 만나는 방법.

#62번째 책) 박정대 제2시집(2001)


세상에 시인은 너무도 많고 시집은 그것보다 더 많다. 평생 읽어도 다 읽을 수 없을 시집의 망망대해 속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 읽을 책을 고르는 일도 독서에 포함된다면,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거니와 좋은 시집을 고르는 순간 우리의 독서는 벌써 반은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좋은 시집인지 아닌지 읽어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는 게 문제. 그렇다면 다만 확률이라도 높일 수는 없을까.

우선 도서관이나 서점에 간다. 그리고 줄줄이 꽂힌 시집의 제목들을 차례로 발음해 보자. 텍스트를 구두(口頭)로 옮겼을 때 영 어색한 제목들이 있다. 가령 박정대의 첫 시집 「단편들」은 그리 어색하지 않다. 반면 그 옆에 꽂혀 있는 그의 두 번째 시집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는 몇 번을 읽어 봐도 이상하다. "음악 같은 눈"은 그렇다 쳐도 "청춘의 격렬비열도"라니?

구어(口語)는 우리가 편하게 말할 때 사용하는, 일상에 가장 맞닿아 있는 언어다. 그런 구어의 반대 격에는 일반적으로 문어(文語)를 떠올리기 쉽지만 문어는 구어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러니 구어의 정반대 개념을 말하라면, 그것은 시(詩)가 되겠다. 언어예술의 첨단으로서 시의 가치는 구어에 갇히지 않고 언어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시는 결코 일상적인 말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일상적인 말이어도 일상적이지 않게 써야 시가 된다. 다시 말해 시는, 그것이 정말로 시라면, 평범한 언어를 결코 믿지 않는다. 신형철이 말한 대로 시는 '언어를 의심하면서', '불가피하게 자해를 감당'하며 한 줄 한 줄 앞으로 나아간다(「느낌의 공동체」(문학동네, 2011).

이것이 우리가 좋은 시집을 고르는데 한 가지 힌트가 될 것이다. 제목에서 '언어를 의심한 흔적'을 찾아보는 것. 황인찬의 「구관조 씻기기」, 박연준의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김민정의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이것들은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좋은 시집이다. 이 제목들이 낯설고 '비일상적'이라고 느꼈다면 그만큼 이들이 '시적'이기 때문이라고 바꾸어 생각할 수도 있다. 뭐 항상 들어맞는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이런 식으로 좋은 시집을 만난 경우가 많다.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로 인해 그 경우는 이번에 하나 더 늘어났다.



06.30.22.


instagram : 우리 시대의 책읽기(@toonoisylonelinesss)

naver blog : blog.naver.com/kimhoeyeon

작가의 이전글 자기 파괴의 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