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물론 거기에 코로나 한 스푼을 더한 대학생이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의 시간을 보내고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치열한 고등학교 3년을 보냈다. 그리고 내 스스로는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좋은 대학에 합격했고 대학 생활을 즐긴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2020년 1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1달 뒤부터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사건’이 시작되었다. 바로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었다
코로나19가 국내에 확산되기 시작할 쯤에는 바이러스의 치사율도 높았다. 그래서 우리 학교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비대면 수업’을 통해 개강하기로 했다. 그리고 비대면 수업을 연장하다가 코로나19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한 학기 모두 비대면 수업을 했다. 집에서 녹화된 강의나 줌을 이용한 실시간 강의로 수업을 들었다. 그렇게 내 대학교 1학년 1학기는 학교 한 번 가지 못해 보고 우리 집에서 종강을 맞이했다. 오죽 학교가 궁금했으면 학교를 보러 가려고 혼자 호텔을 잡고 학교 구경을 했을 정도다.
비대면 수업의 영향인지 방학 같지 않았던 방학이 끝나고 2학기 개강이 다가왔다. 대면 수업의 기대를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었지만 당연히 비대면 수업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2학기가 개강을 하고 나는 1학기 때와 같이 비대면 수업을 했다.
그러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어느 정도 감소하니까 어느 날 학교에서 ‘부분 대면 수업 전환’을 결정했다. 내가 수강하던 과목들 중에서도 몇몇 과목이 대면 수업을 하고 대편 시험을 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10월에 기숙사에 갔다. 설렘도 있었지만 약간의 낯섦도 있었다. 이번 기숙사 입주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렘이 더 컸던 것 같다. 2인실에 들어간 나는 룸메이트가 언제 올까라는 생각을 매일 했지만 결국 오지 않았고 혼자서 2인실을 썼다. 처음에는 외로웠지만 적응을 하고서는 오히려 깔끔한 내 성격에는 혼자 있는 게 더 편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에 갔는데 정작 수업은 교양 과목인 ‘농구’ 수업 두 번과 전공과목 대면 시험만 했던 것이다. 하필 학교 안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전국적으로 다시 유행이 돼서 비대면으로 전환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기숙사에 살다시피 있었다. 물론 내가 농구를 좋아해서 학교 농구 동아리에 가입해 3~4번 정도 농구를 했었고 프로농구 시즌이었기에 농구도 보러 다녔다. 비록 ‘코로나 학번’이어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MT를 못했고 아는 동기가 한 명도 없어 아쉬웠지만 나름 혼자서 재밌게 보낸 거 같다.
이렇게 기숙사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한 편으로는 고민이 생겼다. 바로 군대는 언제 가야 할까라는 것이다.
고등학교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는데 친구가 20년 10월 5일에 입대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도 코로나19로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있었는데 이럴 때 빨리 군대에 갔다 오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해 추가 모집으로 신청해 입대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친구는 논산 훈련소로 입대를 하고 훈련소와 특기병으로 약 2주간 후반기 교육을 받고 자대 배치를 받고서 다시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군대를 경험해보지 못한 나는 아직 군대에 대한 약간의 불안한 시선과 궁금증이 있었기에 친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추가로 유튜브 ‘효자손’ 채널을 보면서 군대가 어떤 곳인지 알려고 했다. 불안한 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없애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먼저 입대한 친구를 보면서 나도 코로나19 때문에 제대로 학교도 다니지 못할 거 빨리 입대나 할까 생각했다. 그렇게 입대 정보를 찾다가 전공을 살리면서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기술행정병 보직에 지원하기로 했다. 첫 시도 때는 21년 2월 입대 예정인 ‘일반 행정병’에 지원을 했는데 생각보다 높은 경쟁률로 합격이 되지 못했다. ‘일반 행정병’ 쪽은 경쟁률에 세서 안 될 거 같아 비슷해 보이는 ‘군사 정보병’에 21년 3월 입대를 바라보면 지원을 했다. 그렇게 두 번째 신청만에 나는 합격이 되었고 21년 3월에 입대하기 예정이 됐다. ‘군사 정보병’이 정확히 무슨 직책인지는 잘 몰랐지만 행정병과 비슷해 보였고 당시의 나는 행정병이면 몸도 잘 쓰고 행정업무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편할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20년 12월 말, 연말이 된 시점 나의 대학교 1학년은 이렇게 끝이 났다.
기숙사에 있던 짐을 캐리어와 가방에 싸면서 기숙사 내부와 학교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21년 3월에 입대하면 22년 9월에나 전역을 하고 그러면 바로 복학하지 못하기에 23년에나 학교에 복학할 수 있기 때문에 추억으로 잘 간직하려고 했다. 그렇게 약 2년 뒤에 다시 만날 것을 혼자서 기약하면서 기숙사와 우리 학교에 인사를 하고 나는 다시 집으로 왔다.
입대 때까지는 아직 3개월 정도 시간이 있었기에 그 시간 동안 여행도 다니고 친구들과 놀기로 했다. 그중 ‘우진’이라는 친구는 고등학교 때 같이 동아리와 교외 활동을 같이 했던 친구여서 많이 친했다. 우진이도 나처럼 언제 입대하지라는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시점 이미 나는 3월에 입대하기로 예정이 돼있어 우진이는 나를 부러워했다. 이미 우진이는 추가 입영 모집을 몇 번 시도를 했으나 생각보다 치열한 경쟁률로 계속 실패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처럼 기술행정병에 지원해서 입대하라고 추천했다.
21년 1월 새해가 밝고 21년 1월 6일에 나는 우진이와의 약속을 위해 우진이의 집 근처로 갔다. 그날 우진이는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추가 입영 모집을 시도하기로 했다. 이번에 안 되면 그냥 올해에는 입대 안 한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와 우진이는 만나서 컴퓨터가 빠른 PC방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우리 둘은 병무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로그인을 했다. 우진이는 추가 입영 모집 창을 열었고 이미 3월에 입대하기로 한 나는 여유롭게 병무청 홈페이지를 둘러보고 있었다. 우진이는 대학 수강 신청처럼 사이트 시간을 알려주는 사이트를 켜놓고 예정된 시간을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우진이는 드디어 신청에 성공했다.
근데 성공했다는 우진이 말에 나는 기쁨도 있었지만 초조함도 있었다. 우진이가 나보다 빠르게 입대한다는 것이 나도 더 빨리 입대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날 초조하게 만든 것 같다. 그때는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한 번 취소하면 돌릴 수 없는 3월에 예정된 입대를 취소해버리고 나도 추가 접수 창에 급하게 들어갔다. 근데 자리가 없는 것이다. 망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안 좋아진 나는 그래도 계속 새로고침 F5를 연타했다. 그러다가 날짜 하나가 떴는데 우진이가 신청한 날과 같은 날짜였다. 우진이가 신청한 날에 입대하는 부대는 우리 지역 방위 사단 신병교육대대였기에 부러웠던 나도 같은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재빠르게 날짜를 클릭했다. 그리고 접수에 성공했고 나도 입영 부대가 우진이와 같은 신병교육대대였다.
이 소식을 우진이와 고기를 먹다가 나와서 어머님께 알려드리니 놀라셨다. 이유는 입대 날짜가 1월 12일이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날은 1월 6일이다. 3월 입대 예정이어서 약 60일이 넘게 남았던 입대 날이 클릭 하나로 6일이 된 것이다. 어머니가 그래도 괜찮겠냐는 말씀에 나는 괜찮다고 오히려 빨리 다녀오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말씀드렸고 아버지도 그게 더 좋겠다고 하셨다.
이렇게 입대 날이 정해지고 다음날 1월 7일, 카카오톡으로 병무청에서 입영일자와 입영부대를 다시 고지해주었고 8일에는 귀가 예방 수칙과 메일로 입영통지서를 보냈다는 메시지가 왔다. 이렇게 미필 민간인으로서의 나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 군대 보안 상으로 정확한 부대 이름과 위치를 공개할 수 없다는 점과 사람 이름을 가명으로 사용했다는 점은 양해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