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민간인에서 군인이 된 그날, 2021년 1월 12일

by 김영현

1월 10일, 입대 2일 전이다. 집에서 나는 강아지와 어머니와 아버지와 사진을 찍었다. 긴 머리를 가지고 있는 나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서다. 그리고서 나는 어머니와 나는 집 앞에 있는 미용실에 갔다. 원래 가던 미용실이 아니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어차피 바리깡으로 다 밀어버린 텐데. 미용실에 들어갔는데 손님 한 명이 자르고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서 기다리면서 나는 아 이제 이 곱슬머리도 1년 반 동안 못 보겠네라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머리를 자르고 있던 여자 손님이 단발로 자를지 아니면 다듬을지 선택하는 모습을 보고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는 선택권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쉽사리 어떻게 자를지 선택하지 못하는 손님에게 사장님은 내 머리를 빠르게 자르니까 그동안 생각하고 있으라고 말한 뒤 나에게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서 몇 미리로 자를 건지 물어보자 보통 몇 미리로 자르냐고 물어봤다. 사장님은 보통 6mm로 자른다고 해서 그럼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먼저 머리숱부터 가위로 잘랐다. 거침없었다. 다듬을 때의 그 섬세한 느낌은 1도 없었다. 어느 정도 숱을 쳤을 때 바리깡에 6mm 캡을 끼우고 전원을 켜자 '위이잉'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셨다. 바리깡은 내 머리 이곳저곳을 누볐고 내 눈앞은 머리카락들이 폭포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겉으로는 무덤덤했지만 속으로는 이제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에 떨리고 슬펐다.

집에 가서 친구들한테 머리 자른 사진도 보내주고 아버지와 누나도 내가 이제 진짜 입대를 한다는 것을 몸소 체감했다고 한다. 그리고 입대하면 우리 강아지를 자주 못 보기에 더 많이 놀아주고 사진도 많이 찍어서 간직했다. 이렇게 민간인으로서의 하루가 또 지나가고 나는 자기 위해 누웠는데 베개에 닿는 내 머리의 느낌이 너무 이상했고 어색했다.


1월 11일, 입대 1일 전이다. 하루 전에는 딱히 한 일이 없었다. 전날과 같이 강아지와 놀고 그랬다. 그리고 누나의 상표 특허 출원을 도와줬다. 물론 입대하기 하루 전날까지 이걸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연락드려서 잘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렸다. 입대 전까지 알차게 보내려던 나의 계획들은 입대로 정신이 없어 아무것도 제대로 못한 것 같다. 이렇게 다시 밤이 되고 나는 아직도 어색한 내 머리와 함께 민간인으로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1월 12일, 드디어 그날이 밝고 말았다. 전보다 유난히 눈이 빨리 떠졌다. 1분 1초라도 내 눈에 우리 집, 우리 가족은 담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입영 시간이 14시까지였기 때문에 천천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원래 입대 전에 맛있는 음식을 사준다고 했지만 입맛이 너무 없어서 그냥 집 앞에 있는 파리바게트에서 샌드위치 두 개를 사서 차에서 먹었다. 없는 입맛에 그래도 배는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먹으면서 나와 어머니, 아버지는 차를 타고 누나가 운영하는 카페에 갔다. 내가 입대를 하기에 잠시 동안 카페를 닫고 같이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누나까지 태워서 내가 입영하는 부대로 갔다. 정확히는 입영하는 훈련소가 아닌 훈련소로 가기 전 2주 동안 격리할 지역 방위 사단의 예비군 훈련장 부대로 갔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집에서 입영 부대로 가는 길은 차로 10분 정도 거리였다. 그리고 가는 길에는 내가 졸업한 중학교가 있었고 그 옆에 있는 대학교는 우리 아버지의 사무실이 있어서 자주 다녔고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과 농구도 자주 하던 곳이었기에 나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거리였다.

그렇게 익숙한 거리를 지나 입영 부대 쪽으로 가니 점점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입대 전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같은 날 입대하는 우진이와 같이 들어가기 위해 우진이와 연락을 시작했다. 근데 연락이 잘 되지 않았고 나는 길을 따라 차를 타고 가니 부대 앞 쪽에 도착했고 통제하던 간부인지 병사인지 모를 군인에게 입대하는 사람만 내리고 차는 바로 정해진 길 따라서 나가시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는 그럼 차 나가서 인사하고 다시 들어오면 안 되냐고 물어봤는데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누고 차에서 급하게 빠져나와 가족과 헤어졌다. 원래는 입영 신고를 위해 부모님도 들어오시는 건데 코로나 때문에 그런 것이 다 사라졌다. 연락을 하던 우진이는 내가 차에 내릴 때 휴대폰을 차에 두고 내려서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았고 그냥 먼저 들어갔다.


1월이기에 엄청 추운 날씨여서 들어갈 때 핫팩과 털장갑을 나눠주었다. 나라사랑카드로 입대 확인을 하고 코로나 19 관련 설문조사를 하고 PCR 검사를 하기 위해 기다렸다. PCR 검사를 처음 하기에 조금 떨렸다. 내 차례가 되고 긴 면봉을 내 코에 깊숙이 넣었는데 진짜 아팠다. 너무 아파서 코를 문지르면서 마지막 절차를 기다렸다. 그리고 통제 간부가 이름을 불러서 옆에서 줄을 섰다. 근데 이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뭔가 익숙한 이름이 들린 것이다. 그리고 목소리가 나온 곳으로 얼굴을 돌렸더니 내 고동학교 1학년 동창인 것이다. 정말 신기했다. 그렇게 나와 내 동창을 포함한 12명은 간부의 인솔에 따라 2열로 부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부대 위병소에 있는 4명의 군인이 우리를 보면서 '와 언제 전역하냐'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나는 그 사람들이 부럽기만 했었다.

통제 간부를 따라가다 보니 우리가 2주 동안 격리 생활할 막사에 도착을 했다. 생활관에 들어간 우리는 짐을 두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다들 처음 보는 사람이기에 어색한 건 당연한 거였다. 그러다가 조교가 들어와 한 명 씩 봉투를 줬다. 생활기록부라고 적힌 봉투였다. 그 안에는 생활기록부와 다른 설문 조사 종이가 있었다. 지금부터는 그 설문 조사와 보급품 사이즈를 적으라고 해서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앞 생활관에도 사람들이 들어가는데 거기에 내 친구 우진이가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아마 내 바로 다음 조에 속해서 들어온 것 같다.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이 지나가다가 조교가 들어와서 자기소개를 하고 기본적인 생활 규칙을 알려주고 나갔다.

또다시 시간이 흘러가다가 저녁이 돼서 밥을 먹을 시간이 된 것이다. 첫 군대식이라니. 기대가 1도 없었다. 격리 때문에 식판에 비닐을 씌워서 한 생활관 씩 나와서 밥을 퍼서 먹는 방식이었다. 책상도 없어서 밥을 먹는데 허리가 아파 죽을 뻔했다. 밥을 다 먹고 정리를 하고 취침시간까지 할 게 없었다. 그 시간에는 이제 옆 사람과 통성명을 시작했다. 나는 아무래도 내 고등학교 동창 은수와 먼저 말을 했다. 어떻게 오게 됐는지 잘 지냈는지 등을 서로 물어봤다. 은수는 내 옆자리에 있던 병채라는 친구와 동반입대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도 한 두 명씩 모이면서 점점 친해져 가게 되었다. 민재라는 친구도 우진이가 있는 생활관에 동반입대 친구가 있다고 했고 홍석이는 창원에서, 한 살 형인 동준이 형은 부산에서 왔다고 하고 동현이는 삼척에서 왔다고 했다. 서로 대학이랑 학과도 물어보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렇게 수다라도 하니까 시간이 어느덧 취침시간이 됐다. 근데 문제는 보급품이 여기 예비군 훈련장에 있지 않고 사단 본부에 있기 때문에 아직 보급을 못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입고 온 옷을 그대로 입었고 샤워랑 양치도 하지 못하고 잤다.


이렇게 나의 입대 날이자 군생활 1일이 지나갔다. 잠이 안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와서 다음 날 당황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미필 민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