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첫 만남, 섣부른 선택
※ ‘안나이’가 쓴 글입니다
현재는 테슬라의 찐팬이라 스스로 생각하는 내가 처음 테슬라를 알게된 건 2013년 여름, 미국 어학연수 때였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공부와 경험(이라 쓰고 맨날 놀기라고 읽는다)을 위해 그동안 모은 돈을 들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몇달이 지났을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힘들다는 생각에 결국 한 마리만 제대로 잡기로 했다.(experience…..) 어학원도 땡땡이치고 친구들과 서부를 크게 도는 여행을 계획했고, 테슬라를 만난 건 그 여행의 시작점인 샌디에고(San Diego)에서였다.
인연은 우연처럼 다가온다.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복합몰에 일찍 도착해 가만히 있지 않고 싸돌아다닌 것이 지금 보니 내 생에 중요한 포인트였던 것이다. 그 당시 사진을 저장해 놓은 폴더를 구석구석 뒤졌는데, 2013년 7월 11일에는 정확히 테슬라 매장 사진 4장 뿐이다.
그때 테슬라 매장을 처음 보고 내 머리 속에 떠올랐던 생각이 아직도 또렷하다.
코.웃.음.
공대생인 내가 에디슨과 전류 전쟁(War of currents)으로 유명한 니콜라 테슬라를 모르긴 어려웠다. 그래서 이 매장이 주는 느낌은 마치 ‘아인슈타인'으로 간판을 내걸고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며놓은 것이었다. ‘테슬라'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차를 전시해? 유치하고 과해보였다.
게다가 제대로 된 자동차는 딱 1대 전시되어있는데(다른 1대는 동력계와 뼈대만 있었다), 나름 기계 전공인데도 생판 처음 들어보는 회사였으니 얼마나 코웃음이 나왔겠는가. 분명히 제대로 양산될 리 없는 컨셉카 같은 걸 홍보하려는 매장이라 생각했다.
그 당시 만나기로 한 친구들 오려면 시간도 남았겠다, 저 이쁘게만 보이는 차는 왜 전시했는가 하는 생각에 불쑥 들어갔다. 물론 전기랑 뭔가 관련있지 않을까 했지만 순수 전기차인 줄은 생각도 못했다.
긴 시간은 아니었다...한 20분?
차는 외형은 매우 잘 빠졌지만, 그건 어떤 기술적 흥미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먼저 차량 동력계(powertrain)과 뼈대(skeleton)에 눈길이 갔다. 그것은 매우 ‘납작’했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미니카' 뚜껑 벗긴 버전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공기저항 때문에 뚜껑 벗기고 트랙을 달리게 했던 경험, 다들 있죠?).
차량 부품에 커버가 덮여있는 부분이 많아서 제대로 알기 어려웠지만 운전대 등이 없어서인지 이것만으로는 뭔가 제대로 작동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기존의 굉장히 복잡한 다른 차량보다 훨씬 심플하고 깔끔해보였다.
신기하지만 뭔가 크게 와닿던 차였다. 하지만 순간 뒤를 돌아보고 내 눈은 더욱 휘둥그레졌다.
차를 구경하던 누군가가 차의 프렁크(Frunk)를 열었고, 슈퍼카에서나 보이던 바로 그런 공간이 나온 것이다.
그 공간은 매우 넓었으며 보통 차 트렁크의 1/3은 넘어보였다. 이 때만해도 아까 본 뼈대가 이 자동차 동력계의 전부인 걸 파악하지 못한 나는 바로 차의 뒤로 돌아갔다. 슈퍼카 같은, 시트 뒤에 위치하는 커다란 동력계를 기대했지만, 거기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웬만한 세단은 엄두도 못 낼 만큼 넓은 크기의 트렁크였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자동차의 구조를 완전히 깨는 그 매끈하고 유려한 자동차가, 그 순간 너무 신기해서 직원한테 물었다.
이거 어…어떻게 가는 거야?
워낙 오래 된 기억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직원이 아까 본, 전시되어있는 내부 뼈대를 가리켰다.
그때부터 차를 찬찬히 보고 앞에 푯말에 세워진 설명도 유심히 읽었다. 이게 전기로만 가는 차이고 동력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모터는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등을 알게 되었다.
2013년, 아주 얕은 상식을 갖고 있는 공학도였던 나에게 자동차라는 것은, 다른 산업에 비해서 크게 변화가 있지도 않고 딱히 연구할 아이템도 없는 분야였다. 이미 상용화된 지 100년 다 된 물건이 무슨 연구 개발 의미가 있겠냐고.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선택하는 테마였다.
하지만 테슬라의 모델S를 만나보고는 머리를 띵 하고 맞은 것 같았다. 이건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꿀만 한 아이템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기계과 공학도인, 심지어 4학년이라서 미래 진로를 고민하는 나에게, 아주 먼 미국 땅에서 이런 인연과 기회를 만나다니!
그 당시 20분 정도의 구경을 마치고 테슬라 전시장을 나오는 나에게 든 생각은...
전기로 가는 자동차, 개멋지다!!! 공부하고싶다!!!!
(안 그래도 나 기계과인데!! 개꿀)
하지만 ‘테슬라'라는 전기차 업체에 대해 주변에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저 인연 후에 바로 미국 서부 여행을 시작하게 되면서 ‘순수 전기차 테슬라'에서 '테슬라'에 대한 아주 강렬한 인상은 약간 희미해져가고 새로운 아이템인 '전기차'를 연구하고 싶다는 마음만 남게 되었다.
결국 어학연수를 마치고 졸업 후 전기차를 공부하려다 우리 대학에서 순수 전기차 연구 분야를 하는 교수님을 찾지 못해 하이브리드 자동차 분야로, 박사까지 공부하게 되었다(엔진과 모터 둘 다 동시에 제어해야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복잡성과 난이도를 생각하면, 전기차를 연구하려고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선택한 건 아주 섣부른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테슬라와 제대로 된 인연이 시작된 건 중-고-대-대학원까지 같이 다닌 ‘더지’와 2015년 기숙사 옆 동에 살면서부터였다. 더지 덕분에 세계 정상급의 테슬라 정보와 투자 의사 결정에 도움을 받아오고 있다. (2015년 테슬라를 만난 후 '홍보대사'가 되었다 참고). 또한 ‘테슬라 오너 후배’로서 모델Y를 구매하고 행복지수가 몇 단계 더 올랐다. 앞으로 테슬라와 관련하여 나와 내 와이프의 다양한 이야기를 꾸준히 쓸 예정이다. 내 글로 인해 누군가가 ‘우연한 인연’을 만날 수 있다면 굉장한 즐거움이 될 것 같다.
2013년 샌디에고에서 테슬라를 접하고 인생의 방향이 변했을 때 주식은 왜 안 샀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이야 너도나도 해외주식이다, 나스닥이다, ETF다 하지만, 그 때는 해외주식 자체를 하는 개인이 거의 없어서 생각도 못했고, 돈도 없었다.(가능하면 대학생 때는 어학연수보다 교환학생을 가기로 하자)
전혀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내 인생의 섣불렀지만 즐거운 선택을 할 수 있게 한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