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맨’이 쓴 글입니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테슬라 주식을 3살 아들과 아버지, 장모님께 각각 증여했다. 왜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이며, 장인어른이 아니라 장모님이냐고? 양가 부모님께 골고루 드리려 했는데 당시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이 글은 주식을 증여한 그 과정들 얘기다.
은행은 수십 번도 넘게 와봤지만 증권사 지점은 처음이었다. 은행과 비슷한 구조였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더 소란스러웠달까.
“여기서 종목 매수는 어떻게 하는 거야?”
“어머님, 매수는 여기 화면에서 이렇게 이렇게 하시면 돼요.”
“아이고, 그렇구먼. 내가 갖고 있는 주식을 보려면?”
“어머님, 잔고 확인은 여기서 이렇게 하시면 돼요. 어머님, 어머님께서 직접 익히셔야 돼요. 돈이 오가는 건데 매번 제가 도와드릴 수는 없잖아요.” (단호. 귀찮.)
주식 열풍을 새삼 느꼈다. 증권사 직원분들이 어르신들을 상대하는 대화가 곳곳에서 들렸다. 2020년 12월 어느 날, 나도 여러 명의 직원 중 한 명 앞에 앉아있었다.
내가 갖고 있던 테슬라 주식을 아들에게 빨리 증여해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다. 미성년 자식에게 증여한 세금을 공제받을 수 있는 금액은 10년 간 2천만 원. 본래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증여를 하려고 했으나, 뭐부터 건드려야 할지 몰랐다.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해야 했던 터라 그렇게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슬슬 찬바람이 불며 2020년을 마무리하는 그 시점,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실행하기로 했다.
아들은 당시 한국 나이로 3세(27개월). 미성년자의 주식 계좌를 만들기 위해선 반드시 증권사 오프라인 지점을 찾아가야 한다. 요즘은 비대면으로 10분 정도면 간단하게 주식 계좌를 만들 수 있지만 미성년자는 예외다. 덕분에 주식 계좌는 수년간 갖고 있었지만 생애 처음으로 증권사에도 와본 것이다.
내 앞의 직원이 보안카드를 하나 건네줬다. 얼마 만에 보는 보안카드인가. 아들의 공인인증서를 발급하고 이체 등 거래를 하기 위해선 이렇게 실물 보안카드를 써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아들의 계좌는 내 증권사 어플에 같이 담겨 쉽게 확인해볼 수 있었다. 내 계좌 번호 밑에 아들의 계좌 번호가 바로 보였다.
아빠는 이런 거구나.
내 것 말고도 관리해줘야 하는 게 생기는 거구나.
새삼스럽지만 어떤 책임감 같은 것이 가볍게 어깨를 눌렀다.
아들의 계좌를 만든 후 주식을 대체출고('이체' 개념)하는 건 쉬웠다. 증권사 어플의 ‘대체출고’ 메뉴로 들어가 주식을 보낼 계좌를 입력하고 주식 수량을 써서 출고 버튼을 누르면 끝.
다만 이때 ‘선입선출’ ‘후입선출’의 개념이 나오는데, 이건 증권사마다 방식이 달라서 확인을 해봐야 한다. 내가 쓰는 미래에셋의 경우 먼저 산 주식을 선택해 보낼 수도 있고, 늦게 산 주식을 보낼 수도 있다. 테슬라와 같이 지속적으로 우상향 하는 기업이라면 먼저 산 주식을 보낼수록 유리하다. 왜냐하면 내가 나중에 수익 실현을 할 때 (남아있는) 늦게 산 주식을 팔아야 실현 수익이 적어져, 결국 양도세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사용 중인 증권사에 확인해봐야 한다. 어떤 곳은 평단가 기준으로 실현 손익이 확정된다는 얘기도 있다.)
주식을 받은 아들 입장에선 넘겨받은 날의 가격이 매수 단가가 되기 때문에 선입선출이든 후입선출이든 동일하다. 따라서 증여자인 나의 입장만 고려하면 되고, 선입선출로 주식을 출고하는 게 유리하다.
증여한 다음엔 홈택스에 가서 증여세 신고를 해야 한다. 신고는 증여일 기준 3개월 내다.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전후 2개월의 종가 평균을 내야 하니 증여일 기준 2개월 후, 3개월 전이 되겠다. 증여세 신고는 증여받은 사람이 한다. 그래서 우리 아들이 해야 한다. 증권사에서 받은 추억의 보안카드를 사용해 아들의 공인인증서를 만들고 홈택스에 로그인했다.
증여가액은 어떻게 산출할까? 해외 주식의 경우 산출 방법이 인터넷에 잘 나와있지 않아서 직접 세무서에 연락해 알아냈다. 결과적으로 국내 주식을 증여하는 경우와 같다. 증여하는 날 기준으로 테슬라의 전 2개월 후 2개월, 총 4개월 간 종가의 평균을 내는 것이다. 여기에 수량을 곱해 증여 금액을 산정한다. 환율은? 증여일의 환율로 하면 된단다. 사실 환율은 매일 변하는 터라 이 부분은 명확하지 않은 느낌을 받았는데, 세무서 담당 직원은 그렇게 설명하더라. 네이버 증권에 가보면 일자별로 종가가 잘 정리돼있다. 그걸 엑셀로 긁어와 평균을 내고 증여일의 환율과 수량을 곱해준다. 그러면 세금을 신고하기 위한 증여가액이 산출이 된다.
(주식으로 증여를 할 경우 이렇게 복잡하다. 또 증여일 후 2개월 동안 주가가 확 뛰어 공제가능액인 2천만 원을 넘길 수도 있다. 가장 심플한 건 현금으로 2천만 원을 주고 그걸로 주식을 사는 거다. 하지만 나는... 현금이 없었다ㅠㅠ)
하나하나 방법을 찾아가며 실행한 끝에 내 3세 아들은 테슬라 주주가 되었다. 내가 처음 주식을 산 건 27살이었는데, 요 조그마한 애기는 나보다 24년 일찍 주식이란 걸 갖게 된 것이다. 그것도 테슬라라는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회사의 주식을.
웃긴 얘기지만, 샘이 났다. 부럽다, 짜식.
아들에게 경제관념을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직접 주주가 되어보는 게 가장 빠른 학습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증여세를 아끼기 위한 목적이기도 하다.
10년 뒤에 또 줄게.
너, 아빠한테 잘해라.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아빠를, 아이는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아빠로서는 뿌듯한 경험이었다.
양가 부모님께 주식을 증여한 건 그 이후였다.
장모님이 일주일 정도 우리 집에 머무르실 때가 있었다. 장인어른은 일이 있어 오지 못하셨다. 대신 장모님이 장인어른 신분증을 갖고 오셔서 두 분 각각의 증권 계좌를 만들어 드리려고 했다. 그런데 얄궂게도 장인어른의 주민등록증을 비대면 계좌 개설 어플이 인식을 못하는 게 아닌가. 운명인 건가. 어쩔 수 없이 장모님의 계좌만 만들어드리고 증여도 장모님께만 하게 됐다. 장인어른은 괜찮다고 허허 웃으셨다.
내가 장인 장모님께 직접 증여를 한다고 할 때 세금 공제 가능액은 10년에 1천만 원이다. 그런데 와이프가 부모님께 증여하게 되면 5천만 원으로 늘어난다. 그래서 내가 와이프에게 먼저 장모님 분을 주고 와이프가 다시 장모님께 드리는 방식으로 대체출고를 실행했다.
※ 증여세 공제 기준 (10년 간 공제가능누계액)
- 배우자끼리의 증여: 6억 원 공제
- 직계존속, 직계비속 간 증여: 5천만 원 (단, 미성년 자녀에게 증여할 경우 2천만 원)
-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에게 증여: 1천만 원
아버지께도 비슷한 시기에 증여를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아버지 스스로 본인의 증권 계좌를 만들기가 쉽지 않아 만나서 해드리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만나기도 어려웠다. 그러다 올해 4월 작은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야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빈소에 한동안 친척 형들과 앉아있다가 문득 생각이 들어 아버지의 핸드폰을 가져다 계좌를 개설했다.
여담이지만, 부모님의 핸드폰은 왜 항상 느릴까. 그리고 왜 항상 저장용량이 꽉꽉 차있을까.
스마트폰을 써온 수년간 느꼈던 의문점들이다. 증권사 앱을 깔려고 하니 용량도 찼다고 하지 설치 속도도 느리지... 아버지 폰에 깔린 쓸모없는 어플과 캐시를 지우면서 생각한다. 자식들 폰은 항상 빠릿빠릿하고 최신폰인데, 저장용량도 넉넉하고 필요 없는 앱들은 금방금방 지워 쾌적한데 꼭 아버지 어머니 폰은 그렇지 않더라. 아들이 잘 못 챙겨드리는 건가. 괜스레 서글퍼졌다.
내 아들한테 잘하라고 하기 전에
나부터 잘해야겠구나.
어찌어찌 계좌를 만들고 간단하게 주식도 출고했다. 아버지는 한동안 증권 앱 화면을 보고, 닫았다.
장모님과 아버지, 두 분께 공통적으로 드렸던 말이 있다. “괜히 어플 열어서 자주 보지 마세요.” “없는 돈이다, 생각하고 그냥 묻어두세요.”
그런데 전해 듣는 얘기로는 장모님은 종종 어플을 열어서 수익률을 확인하신다고 한다.ㅎㅎ 아버지한테 직접 듣진 못했지만, 어머니도 그 뒤로 주식에 관심이 생겼는지 오늘은 왜 떨어졌냐, 어제는 왜 올랐냐, 이런 질문들을 하면서 꽤 자주 주가를 확인하는 것 같다.
양가 어른들이 증권 어플의 호가창을 유심히 쳐다보는 걸 상상하면 기분이 묘하다. 사실 실시간으로 변하는 주식의 가격은 종종 ‘탐욕의 숫자’로 인식되거나 비유된다. 단시간 내 빠른 수익을 얻기 위해 집중해서 봐야 하는 일종의 게임 스코어인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들이 호가창을 보는 게 그런 마음이겠나. 오히려 주가를 보면서, 가끔씩은 서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까. 장모님은 ‘우리 딸, 우리 사위 기특하다’고, 나는 ‘오늘 좀 오르니 장모님 좋아하시겠네’라고... 요새 가족 간 멀리 떨어져 살기도 하고 대화가 없어 문제라고 하는데, 테슬라로 화제를 꺼낼 수 있는 것도 정다운 일이다.
양가 부모님들은 본래 주식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분들이었다. 으레 어른들이 그러하듯 일종의 도박 또는 위험한 게임 개념으로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간 우리 부부가 테슬라에 대해 공부하고, 여기에 투자하며 준수한 수익률을 기록한 걸 들으시며 주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셨다. 그리고, 이번 증여 사건이 마침표를 찍었던 것 같다.
이번에 주식을 증여한 일이 대단한 일이었다고 자부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테슬라라는 기업을 좋아한 일이 우리 가족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 같아, 그게 기분이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