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새로운 경험

by 백승인

해마다 겨울이 오면 스키를 타고 싶었지만, 선뜻 엄두를 내지 못했다. 평소 잘난 척하는 재미에 사는 것 같은 1년 후배가 자기 자랑하는 걸 들을 때면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가 스키장에 다녀왔다고 이야기할 때는 부러웠다. 그 후배를 보면 나도 나이 탓만 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시도했어야 하는데 새롭고 낯선 것에 맞설 용기가 부족했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흘러 50대 중반이 되자 "이제 내 인생에서 스키는 어렵겠지? 다음 생에서나 해야겠다."라고 체념했는데, 뜻밖에도 처형이 스키장에 가자고 제안했다.


처형은 나와 동갑인 아내보다 두 살 위로, 활달하고 사교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수영, 스킨스쿠버, 문학 기행, 사진, 댄스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기던 그녀는, 직전 겨울에 댄스 동호회에서 주관하는 스키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 부부가 스키장에 가보고 싶다는 말을 했던 걸 기억하고 있던 처형은, 그해 겨울에 우리를 초대했다. 그녀가 회비까지 내준 덕분에 부담 없이 기대에 부풀어 용평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 나이가 되도록 한 번도 스키장에 가본 적 없는 우리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혹여 나이가 많아 입장조차 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여행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우리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도했다.


첫날 새벽, 차량 정체로 길이 꽉 막혔지만 여주 휴게소에서 일행과 만나면서 기대감이 점점 커졌다. 그들은 처음 보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는데, 대부분 전·현직 교사들이었다. 최고 연장자는 72세였고, 우리보다 젊은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스키복으로 갈아입고 스키장으로 나서자, 눈부신 설경이 반겼다. 스키 부츠를 신은 채로 걷는 것이 어려웠지만, 일행의 하나인 강사에게서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강사인 69세 퇴직 교사는 진중하면서도 친절한 태도로 강습을 했는데, 그의 열정이 인상 깊었다.


처음에는 넘어지고 일어서는 과정이 서툴렀지만,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리프트를 타고 초보자 코스에 올라 처음으로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순간,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했다. 리프트를 탈 때는 혼자서도 잘했는데, 내릴 때는 제대로 서는 게 쉽지 않았다. 여러 번 넘어졌고 옆 사람이 부축해 줘서 겨우 넘어지지 않기도 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스키 타는 요령을 터득하며 나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야간 스키를 경험하며 점점 자신감이 붙었고, 스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둘째 날,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바라본 설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나무 위에 핀 상고대는 마치 얼음으로 조각한 예술 작품 같았고,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들은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스키를 타는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2~30대 젊은이들이었다.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온 40대도 많았지만, 50대 이상은 우리 일행을 제외하곤 거의 보기 어려웠다.


여행 마지막 날, 아쉽게도 시간이 부족해서 스키를 타지 못하고 대신 곤돌라를 탔지만, 2박 3일간의 경험은 우리에게 새로운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우리나라에도 활동적인 노년 세대,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며,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그 여정은 단순한 여행을 넘어 다양한 배움과 추억을 선사했다.


이 여행을 계기로 거의 매년 겨울이면 그들 혹은 동서 부부와 함께 스키장을 찾았다. 어느 해에는 스키장 가는 길에 들른 식당에서 송승환 배우를 우연히 본 적도 있었다.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이라는 중책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인지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지만, TV에서만 보던 인물을 직접 만난 것이 신기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러나 아내가 골다공증 치료를 받게 되면서 부상이 염려되어, 우리는 더 이상 스키장을 찾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경험을 통해 스키뿐만 아니라 다양한 도전을 함으로써 인생의 새로운 면을 탐험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스키장을 처음 찾았던 그날의 소중한 기억을 되새기며, 앞으로도 새로운 경험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