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

by 백승인

아침을 먹으려고 냉장고에서 반찬들을 꺼내 식탁 위에 하나씩 펼쳤다. 양배추 옆에는 양념 된장을 놓았다. 며칠 전, 아내가 친구 모임에 갔다가 받아온 된장이다. 음식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걸 좋아하는 친구가 직접 만든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된장을 찍지 않고, 양배추만 집어 먹었다. 그 모습을 본 아내가 물었다.
“왜 된장 안 찍었어?”
“당신이 만든 게 아니면 마음이 잘 안 내켜.”
내 말에 아내는 피식 웃었다.



생각해 보니, 신혼 초부터 그랬던 것 같다.

20년 넘게 어머니의 손맛에 길들여져 자랐지만, 결혼한 뒤 부모님 댁에 가면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보다 아내가 싸간 반찬에 먼저 손이 갔다. 신혼집이 처가 근처인 데다, 손위 동서들도 근방에 살아 자주 어울렸다.

처가나 동서네 집에서 밥을 먹을 땐 맛있게 먹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들이 해준 음식을 집에 가져와 먹을 땐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내의 음식에 익숙해져서일 수도 있고, 어쩌면 집이라는 공간에서는 오직 아내의 손맛만을 기대고 싶은 내 마음의 습관일지도 모른다.

물론 아내의 음식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두세 번쯤 외식을 한다. 특히 주말이면 꼭 한 끼는 밖에서 먹는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집에서는 아내가 만든 음식이 아니면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다. 나 스스로도 이 마음이 신기할 때가 있다.

아내는 밥을 거의 다 먹고, 마지막 한 숟가락을 김에 싸더니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내게 내밀었다.
“나는 도저히 못 먹겠어. 당신이 먹어.”

나도 이미 배가 불렀지만, 웃으며 그 밥을 받아먹었다. 그리고 말했다.
“아담이 이브가 준 선악과를 아무 의심 없이 먹은 것처럼, 남편도 아내가 주는 건 뭐든 감사히 먹어야지. 독이 들어 있어도.”

우리는 또 그렇게 웃었다. 특별한 말도 아니었는데, 요즘 우리는 그런 말속에서 자주 웃는다.


퇴직한 지 5년이 지났다.

이제 우리 부부는 서로를 날카롭게 대하던 시기를 지나, 훨씬 부드럽고 편안한 관계가 되었다. 젊은 날의 나를 “예민하고 까다롭다”라고 했던 아내는, 나이 들어 부드러워진 나를 조금은 여유롭게 바라봐주는 듯하다.

물론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아내는 “당신은 나를 적절히 이용만 하는 이기주의자야” 같은 말을 웃으며 툭 던지기도 한다. 장난 반, 진심 반이 섞인 말. 예전 같았으면 그 말에 마음이 상했겠지만, 이제는 나도 웃으며 받아넘긴다. 말보다 표정이 더 많은 걸 말해주는 관계, 그게 지금 우리다.


요즘 우리 하루는 아들과 손주 덕분에 새로운 기운이 돈다.

우리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사는 아들이 육아휴직을 내고 18개월 된 손주를 돌보고 있다. 아내가 “매일 좀 와” 하며 권하듯 말한 뒤로, 오후 4시쯤이면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손주와 아들이 집에 들러 두세 시간 머물다 간다.

일주일에 두 번쯤은 아들과 점심도 함께 먹고,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소소하지만 정겨운 시간이다.


아내도, 나도 그 시간이 참 좋다.

손주가 두 팔을 벌려 안길 때의 그 기쁨, 하루하루 자라는 아이를 지켜보는 뿌듯함, 그리고 아들과의 편안한 대화. 그 모든 것들이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만든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웃게 되고,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도 웃음이 난다. 사랑하는 사람과 음식을 나누고, 함께 하루를 보내며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요즘 자주 느낀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행복한 게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 순간 자체가, 바로 행복이다.

한편으론 직장 생활로 고된 하루를 보내는 며느리가 종종 떠오른다.
안쓰럽고, 고맙고, 어쩐지 미안하다.
그래서 손주를 돌보는 시간이, 그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못지않게 며느리를 향한 애틋함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양배추 한 잎, 김에 싼 밥 한 입, 서로의 농담 한마디.
그리고 의성어와 의태어로 대화하는 손주와의 교감, 아들과 며느리가 살아내는 삶에서 느끼는 대견함.

그 모든 것들이 우리 하루를 따뜻하게 데워준다.
우리는 지금,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 작은 순간들 속에서 충분히 웃고, 기쁘고,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