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이를 적지 않게 먹다 보니 흘러간 삶 가운데 아쉬운 대목이 참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기록하지 않았던 일이다. 평상시 겪는 일은 물론 여행 중에 보는 좋은 풍경이나 멋진 볼거리도 눈에 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며, 사진조차 잘 남기지 않을 만큼 덤덤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서, 되돌아보고 싶은 장면들이 떠오르곤 한다. 7년 전 아내와 둘이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게 떠났던 배낭여행도 그중 하나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가며 그 흔적을 다시 따라가 보기로 했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배낭 하나 둘러메고 낯선 길을 걸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그것도 20~30대의 젊은 시절이 아닌, 60대를 앞둔 시기에 부부가 함께라면 더 특별하지 않을까. 수년에 걸쳐 제주 올레길을 완주하고 나니,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 속 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이어진 길. 올레길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자연스레 관심이 쏠렸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심을 가지게 되자 평소에는 지나쳤을 뉴스도 눈에 들어왔다. 올레길을 마친 해 겨울, 우연히 항공권 할인 소식을 들었다. 파리로 갔다가 마드리드에서 파리를 거쳐 인천으로 돌아오는 왕복요금이 80만 원대였다. 걷기 좋은 계절이라는 거 하나만 믿고, 다음 해 5월에 출발하는 항공권을 무작정 구입했다. 직장에 얽매인 데다 정기 휴가철도 아닌데, 말 그대로 질러버렸다. 그렇게 우리 부부의 배낭여행이 시작되었다. 파리에서 시작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일부를 걷는 10일간의 여정을 계획했다.
나는 여행 전에 이동수단과 숙소 같은 핵심 요소들을 꼼꼼히 준비하는 편이다. 항공권을 예약한 후 파리 숙소와 주요 이동수단인 테제베(TGV), 스페인의 렌페(Renfe)까지 철저히 계획했다. 프랑스 철도청(SNCF) 홈페이지에 회원가입하고, 여러 차례 수정 끝에 몽파르나스 역에서 바욘까지 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빨리 예약할수록 저렴하다는 정보를 믿고 서둘렀다. 팜플로나에서 마드리드로 이동하는 렌페는 대행 사이트를 통해 손쉽게 예약했다. 그러나 마드리드에서 파리를 거쳐 인천으로 돌아오는 항공편을 무리하게 1시간 간격으로 연결했다가, 파리에서 실수라도 할까 불안해 결국 취소 후 다시 예약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산티아고 가이드북을 구입하고, 서울 마포구에 있는 순례자협회를 찾아가 교육을 받고 나서 순례자 수첩을 발급받았다. 순례자 증서를 받으려면 최소 100킬로미터를 걸었다는 증빙이 필요한데, 루트에 있는 알베르게나 성당 등에서 도장을 받는 수첩이 바로 그것이다. 순례 관련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해 정보를 수집했다. 8만 명 가까운 회원을 가진 그 카페에는 언제든 생생한 정보가 올라왔고, 초보자에겐 더없이 유용했다. 무거운 배낭을 목적지까지 운반해 주는 '동키 서비스' 같은 것도 그곳에서 알았다. 베드버그(빈대) 때문에 고생했다는 후기가 많아 김장용 비닐과 벌레 퇴치약도 챙겼다. 피레네산맥을 넘을 때 눈이 있을지 몰라 스패츠도 준비했지만, 결국 짐을 줄이기 위해 제외했다.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는 고사하고 영어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처지라 겁이 나긴 했지만 카페 회원들에게서 용기를 얻었다. 맞닥뜨리면 길이 보일 것이라고 믿었다.
당초 계획은 파리에서 이틀 머물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닷새 걷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행은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출발 전부터 프랑스 테제베 파업 소식이 들려왔다. 다른 나라, 그것도 먼 유럽의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철도 파업이 나와 직접 연관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세계는 하나'라는 말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여행을 미룰 수는 없었다. 현지에 가면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