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경찰에 입직한 지 25년 차.
항상 마음 한 켠에 채워지지 않았던 것이 내가 아무리 경찰을 오래 하고 법을 많이 다루어 보았다고 한들 변호사 자격증이 없는 이상 자격 미달.
해외 경험도 좀 있고 형사, 수사 등 다양한 경험을 하고 유명한 살인범들을 잡고, 사회 이목이 집중되었던 사건 등 수많은 사건을 처리했어도 결국 마땅한 자격증 하나 없어서 아무것도 할 게 없구나 생각을 항상 해 왔었다.
굳이 좀 괜찮다 싶은 건... 그 기간 동안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서 인적 네트워크가 좀 있는 거?
허나, 이 또한 그냥 좋은 사람들 만나서 술 마시고 재미있는 이야기하고... 이게 다라고 항상 생각하니 뭔가가 부족했다.
그러던 중...
국내 굴지의 유명 포털사에 입사했다가 뜻한 바 있어 1년 만에 그만두고 모 일간지 사에 입사한 20대 후반의 기자를 만나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 기자가 인사 차 방문해서 단순히 인사만(?) 하려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훤칠하고 시원시원한 외모에 말도 참 조리 있게 하고, 생각도 깊었다.
우스갯소리로 요즘 가장 핫한 그 포털 사를 때려치우고 하필 왜 AI가 발전함에 따라 없어질 직업 중에 하나로 꼽힌다는 기자를 했냐고 하니 그러게요 한다. - 결국 그 기자는 모 방송사 경력직 기자로 선발되어 이직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그 기자 왈,
자기는 정말 글쓰기에 소질도 있고 그동안 글을 많이 써왔는데 현재는 글을 좀 쉬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경험이 너무 없어서 상상과 생각만으로 글 쓰는데 한계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나더러는 경험이 많으셔서 글 쓸 소재가 많으시겠네요 한다.
그때는 그냥 흘려듣고 말았는데...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래 내 부캐는 천 작가야!라고 할 만큼 난 '다양한 경험'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거다!
생각해 보면 브런치 작가로 등단한 지 이제 2주 갓 넘었는데 4. 9. 14:53 현재 55,000 넘는 과분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도 하루아침에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20년 전부터 준비해 온 결과물이다. - 그게 이제 조금 빛을 보는 것 같다.
1999년 운 좋게 첫 형사 파트에 발을 내디딘 날부터 어떠한 사건이 벌어지든 마치 난 추리 소설 속의 탐정인 양, 드라마나 영화 속의 주인공 형사인 양 주변에 항상 카메라가 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사건들을 해결하곤 했었고, 그때마다 아 이건 책으로 내면 참 좋겠다 해서 글들을 써 오곤 했었다.
그러니까 지금 하나씩 탈고를 거쳐 브런치에 내놓는 글들은 즉석에서 기억을 떠올려 쓴 글이 아니라 사건 접할 때마다,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들과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90% 이상 써 놓은 - 사실 그때는 100%라고 생각하고 써 놓았는데 탈고하다 보니 미흡한 점이 많이 보인다 - 에세이 같은 글들에 그 당시 생생했던 기억들을 떠 올려 보충해서 내놓는 글 들이다.
와인과 김치도 숙성이라는 기간을 거치 듯이 내 글들은 길게는 20년 짧게는 하루 만에 검토와 탈고라는 숙성을 거쳐 브런치에 나오고 있다.
묵직하고 웅장한 그런 글이 아니라, 진짜 브런치 같이 가볍게 읽히는 그런 나만의 스타일의 글들로 다듬어져 나오고 있다.
예전 같이 근무했던 분들과의 에피소드를 내놓기도 하는데, 어느 정도 팬덤(?)이 생긴 것인지 - 감사하게도 같이 근무했었다는 이유로 구독자가 되어 주셨다 - 이제는 그분들이 그때 그 일 있었잖아요, 그 사건도 글로 써봐 주세요 하신다.
어떤 사건은 그분들 말을 듣는 순간 생생하게 그 일이 떠 올라 일사천리로 글을 쓰게 되는 사건도 있는 반면에...
대표적인 사건이 곧 탈고가 끝나는 '파트너 여경 홍 경사님'과의 에피소드... 글로 한번 써봐야지 했지만, 내 치부(?)가 드러나는 사건인 지라 전혀 글로 써놓은 게 없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게 떠올라 몇십 분 만에 글을 마무리했다.
어떤 사건은 (그분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분에게는 임팩트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될지 모르나, 내게는 글로 쓰려고 해도 잘 써지지 않는 기억으로 점철된 사건도 있었다.
요는... 나 또한 글 쓰는 자격증도 없고, 글쓰기 강좌에 체계적으로 글 올려주신 분들 보면 대단하신 분들 많지만...
경험이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스킬임을 깨닫고는 나라고 왜 글을 못 써, 나도 나만의 색깔을 가진 작가야!라는 근자감(?)에 용기를 내서 계속 글을 올리고 있다.
나름 브런치 글쓰기 요령을 정리하자면...
1. 자신의 일상, 직장 생활, 가족 간의 대화 등 모든 경험이 다 글쓰기 소재가 된다. 글을 쓰고 싶은데 쓸 만한 게 없어요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겪고 있는 그 일상이 글 소재가 된다.
2. 어차피 브런치 글은 남들에게 읽히기 위해 쓰이는 글이다. 혼자만 좋으려면 일기장에 쓰면 된다. 도움이 되는 고급 정보이든, 흐뭇한 웃음을 주는 에피소드이든, 밝히고 싶지 않은 흑역사든 - 이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아... 다 저렇게 사는구나 하는 위안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남을 의식(?)하는 글을 써야 한다.
3. 시쳇말로 어그로(?) 끄는 제목도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 하더라도 독자들은 일단 제목을 보고 클릭 여부를 결정한다. 나는 감사하게도 현재 2개의 글이 다음(DAUM) 메인에 걸리는 바람에 5만 조회수를 넘는 행운을 얻게 되었는데, 이러한 센스는 직업 특성상 25년간 뉴스를 거의 매일 체크하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기사 제목을 보게 되어 터득한 것 같다.
이 정도면 "형사의 글쓰기", 내지 "글 쓰는 천 형사", "형사도 글을 쓴다." 등등의 제목으로, 당당하게 키워드로 '글쓰기' 태그 달아서 이 글을 내놔도 되지 않을까 자뻑(?) 해 본다.
3호 학원 간 틈에 탄천 변을 4호와 같이 산책 후에, - 방금 전 지인은 이를 두고 3호 봉사와 4호 힐링 산책을 한 일타쌍피라고 해주셨다. 결국 글까지 썼으니 일타3피가 되었다. - 4호가 잠시 잠든 사이 차에 앉아 초보 작가 지망생의 소심한 글쓰기 강좌 글을 조심스레 내어본다.
#카카오 브런치 천지적 작가 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