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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Sep 01. 2022

해외여행 가는구나. 내 선물 같은 거 사 오지 마~~

<라떼마리즘> 사 오라는 말인지, 사 오지 말라는 말인지...

경찰 생활 15년 차쯤 되었을 때 한 상사분을 모시게 되었다. 참 좋은 분이셨다.

그런데, 사람 좋은 것과 별개로 그분을 반면교사 삼아서 내 유머 코드를 송두리째 변화시켜야만 했던 날이 왔다.

평소 분위기를 띄우거나, 상대방을 편하게 해 주려는 의도로 유머를 하곤 했는데, 막상 내가 들어 보니 그런 유머는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들 정서에는...


가족들과 어렵게 시간을 맞춰 휴가 일정을 잡았었다. 아내의 일정, 세 아이들의 방학과 학원, 스포츠 클럽 활동 일정 등등을 다 감안해서 겨우 말이다.

중요한 현안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상황이라 연가를 낸다고 보고를 드렸다.

더 급한 현안이었으면 당연히 아예 휴가를 취소했었으리라...


"천 팀장, 이 중요한 시기에 휴가를 간단 말이야?!!?" 하신다.

아... 휴가도 내 맘대로 못 간단 말인가, 나름 고심하고 보고한 데... 씁쓸했다.

몇 초가 몇십 분 같았다.

그 순간 "아냐, 농담이야~ 조심히 잘 다녀와~"

하신다. 휴~~


이건 해서는 안되는 농담이구나 느꼈다.



얼마 후, 해외 가족여행을 간다고 보고하는 김 형사에게 하는 말을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그래? 해외여행 가는구나. 잘 다녀오고, 가서 내 선물 같은 그런 거 사 오지 마~~" 하신다.

그것도 아주 살가운 목소리로.


헉, 나도 저런 농담을 곧잘 하곤 했는데, 막상 들어 보니 선물을 사 오라는 말인가, 사 오지 말라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 형사는 휴가 가서도 가족들과 있는 시간 내내 선물 생각이 나면서 기분이 찜찜할 듯하다. '선물을 사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 사 오지 말란 말일까' 하고 말이다.


그 두 번의 간접 경험 이후로 나는 저런 류의 농담을 전혀 하지 않는다.

아니, 아직도 가끔 어떤 상황이 닥치면  유머 본능이 살아나 저런 몹쓸(?) 농담이 불쑥 나오려고 하는데 흠칫 놀라 참는다. 듣는 상대방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라떼마리즘>
웃기려 하는 좋은 의도라고 해도 듣는 상대방에게는 부담이 되는 농담이 있다.
그런 농담은 해서는 안된다.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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