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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Nov 10. 2022

빵 쪼가리 하나로 틀어진 한국과 베트남 관계

반미(bánh mì)가 빵 쪼가리면 김치는 풀때기냐? - 베트남 SNS

- 기자: 식사는 제대로 하고 계세요?

- 격리자: 아침에 빵 쪼가리 몇 개 주네요.


아... 안타깝게도...

모 언론사의 이 인터뷰 방송 하나로 베트남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틀어져 버리고 말았다.



베트남은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 아래, 대구 모 종교단체 발 확진자가 급증하자 대구에서 입국하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2020년 2월 24일 전격으로 격리 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그날 대구 발 다낭(Đà Nẵng) 행 비엣젯 항공편의 한국인 20명을 포함한 80명 탑승객 전원은 영문도 모른 채 인근 군 병원에 일시 격리되었다.

호찌민에서도 한국에서 입국한 승객 575명 중 대구 출신 한국인 3명이 격리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전례 없는 혼동의 상황에서 다낭에 격리된 한 여행객이 모 언론사와 인터뷰하면서 터졌다.

베트남 문화와 사정을 모르는 여행객과 기자 모두 그 인터뷰가 앞으로의 한베 관계에 그렇게 큰 파문을 남길 줄 몰랐으리라...


영어도 잘 안 통하고, 독특한 고음 성조의 베트남어를 쓰는 공무원과 의료진들이 주도하는 격리 조치와 열악한 시설, 먹을거리 등은 우리 국민들을 불안케 하고 자괴감까지 느끼게 했을 듯하다.

하지만, 2020년 기준 베트남의 1인당 GDP는 2,639달러, 우리나라는 31,880달러임을 감안하면, 베트남 당국이 격리를 시행하면서 상호주의에 따라 우리와 같이 호텔이나 공무원 수련원 같은 숙박시설에 승객들을 모시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 베트남의 대형병원은 대부분이 군 병원인 것을 우리 승객들이 알 리도 없었으니 군대 같은 격리시설에 끌려갔다고 오해했을 수도 있다.

식사로 제공된 우리의 김밥에 비유할 수 있는 반미(bánh mì)라는 야채와 고기가 들어간 샌드위치 같은 빵도 빵 쪼가리처럼 생소하게 느껴졌을 것이고.


그러나, 한국에 격리된 외국인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급작스런 격리로 인해 대량으로 김밥을 공수하여 제공했는데...

"한국에 격리되니 밥풀때기 몇 개 주네요."라고 인터뷰를 했다면 우리의 느낌은 어땠을까?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 방문했을 때 먹기도 하고 CNN 선정 아시아 최고 음식 50선에도 선정된 그 대표 음식을 대접했음에도 빵 쪼가리 하나 줬다고 비하했으니 기분이 좋았을 리 없었을 것이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VN EXPRESS) / YTN 방송화면(자막에는 빵 조각으로 순화했으나 인터뷰이의 빵 쪼가리 발언을 그대로 방송했다.)


이러한 보도에 대응하여 베트남에서는 SNS에 ‘베트남에 사과해(ApologizeToVietNam)’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기도 하는 등 한국에 대한 부정적 목소리가 커졌다.


- 한국의 김치처럼 반미는 베트남의 자부심이다.
- 반미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10가지 요리 중 하나로 미국 대통령도 베트남 빵을 먹곤 했다.
- 대구의 20명 한국인들은 다낭에게 진 빚을 사과하라.
- 그렇게 잘해줬는데 과장하고 꾸며내지 말고, 베트남 정부에 사과하라 등


비판이 고조되며 한때 트위터의 이 해시태그가 세계 검색 순위에서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단편적인 반응이었을 뿐 적어도 내가 느낀 베트남의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좋았다.

그 당시 나는 직접 그 현장에서 베트남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 식당에서 만난 종업원들 모두 한국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고,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도 없었다.


길거리에서 호객하는 구두닦이 소년에게 구두를 안 닦겠다고 거절했더니 "코리아(Korea)~ 코로나(Corona)~" 하면서 단 한번 놀림을 당하기는 했으나, 애교로 봐줄 만했다.


격리 사태 10일 후인 3월 5일.

하노이, 다낭, 호찌민에 리된 한국인을 지원하기 위한 외교부 신속대응팀이 긴급 편성되었고, 그 몇 달 전 주 호치민 총영사관에서 경찰영사 근무를 마치고 귀임한 나는 호찌민 팀에 합류하여 급파되었다.

맨 왼쪽이 필자(2020. 3. 5. 연합뉴스)


170여 명의 호찌민 격리자들은 시내 병원, 대학 기숙사, 시내에서 2시간 떨어진 (Củ Chi) 지역 야전병원 등지에 격리되어 있었다.

생전 처음 격리된 우리 국민들이라 많이 놀라고 힘들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열악한 시설이나 풍족하지 않은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베트남의 사정을 고려하여 이해를 하고 있었다.

각 격리소를 찾아다니며 생필품을 지원해 주며 고충을 듣고, 애로사항을 베트남 당국에 전달하여 관철시키기도 하는 등 지원을 했다.


일부 극소수 여행객이 급작스런 14일의 격리 조치에 강력하게 항의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감염병 예방을 위한 베트남 당국의 부득이한 조치임을 이해하고 수긍했었다.

꾸찌 야전병원에 격리된 한국인 지원 중인 신속대응팀


그렇게 일주일간의 지원이 끝나고, 돌아온 한국.


박항서 신드롬 영향으로 그동안 호의적이었던 베트남에 대한 댓글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 베트남에 여행 가는 사람들 이해가 안 된다.
- 베트남에 가 있는 한국기업들도 다 철수했으면 좋겠다.
- 베트남 여행 절대 가지 마세요.
- 박항서의 은혜도 모르는 것들...


베트남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 일색이었다.

저 보도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우리가 그렇게 베트남에 잘해 주었는데 베트남이 우리 국민을 배려하지 않고 배신했다고 오해하게 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한국인들이 베트남 당국의 일방적인 조치에 억울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언급했듯이 한국인들만 격리한 것도 아니고, 베트남만이 한국인에게 시행한 조치도 아니다.


2020년 2월 24일 당시 언론 기사 제목을 보자.


- 韓 오가는 하늘길 끊긴다… 10여 개국서 한국인 입국 제한 발령 [코로나19 비상] <세계일보>
- 여권 뺏기고 억류되고… 세계 곳곳서 코리아가 거부당한다 <매일경제>
- 세계 곳곳서 예고 없는 한국인 입국 제한 속출…'이제 시작' 우려 <연합뉴스>


이미 그 당시 이스라엘, 바레인, 요르단 등 10여 개국이 한국 방문객에 대한 입국 금지, 격리 등 조치를 취하고 있었고, 모리셔스에 방문한 신혼여행객 2쌍을 포함한 34명이 격리되기도 다.


이제 펜데믹이라는 암울한 터널을 거의 빠져나왔다. 베트남 정부의 매끄럽지 못하고 우리 눈높이에 맞지 않았던 조치에 화가 날 수도 있지만, 베트남의 경제적 수준, 의식 수준 등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좀 더 너그럽고 통 큰 마음으로 이해해 줄 수는 없을까 생각해 본다.



<에필로그>


해당 언론사 또한 추후 유감을 표했다.

보도 일주일 후인 3월 2일, 유튜브 영상 댓글로 “인터뷰 내용 중 일부 감정적인 불만과 표현이 여과 없이 방송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합니다", “인터뷰이의 발언을 전하는 과정에서 국가 간 문화적 차이로 인한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그 전달방법에 더욱 신중하겠습니다"라고 밝힌 것이다.


그 여과 없는 인터뷰 보도가 남긴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에 미친 여파 치고는 너무 큰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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