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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Apr 17. 2022

우리 집 큰아들은 미래의 호찌민 거상?!

2016년 3월 어느 날의 싱글파파 육아일기

베트남 호찌민에 파견 나오면서 아이들한테 한 말이 있다.


"풀 센텐스를 구사하도록 하자."


내가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우리 아이들은 그러한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해서였다. 

이는 한인 밀집지역인 푸미흥(Phú Mỹ Hưng)으로 들어가 살지 않기로 결정한 것과 같은 취지다.(결국 집만 거기가 아니었을 뿐, 막상 생활은 푸미흥에서 많이 하게 되었다.)



2016년 3월.

부모님께서 호찌민에 놀러 오셨다.

야시장을 중1 큰아들과 같이 갔는데, 흥정을 잘해서 옷을 여러 번 싸게 샀다.

상인 아주머니도 큰아들 더러 물건값을 참 잘 깎는다고, 거래를 정말 잘한다고 칭찬하고, 한 서른 살은 되어 보인다면서 '엄지 척'하며 애 아빠가 누구냐고 연신 해 대자, 부모님께서는 손주의 그런 모습을 많이 뿌듯해하셨다.


이튿날 호찌민 유명 시장인 벤탄 시장에 가서 말린 망고와 말린 생강을 사고 싶다고 하셔서 이번에도 큰아들의 활약으로 나름 합리적인 가격으로 산 순간, 바로 옆에 있던 서양 할머니 두 분께서 멈칫멈칫하다가 자신들이 사고 싶어 하는 말린 콩을 사는데 큰아들 더러 좀 도와달라고 하셨다.


그랬더니 주인아주머니 손사래를 치며 안된다고 극구 말린다.

큰아들이 개입하면 자기 수입이 떨어져서일까.


서양 할머니들의 모습이 짠해서 좀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다고 내가 거들었더니 주인이 마지못해 협상에 임한다.

이 녀석이 할머니들에게 뭘 얼마나 살 건지 물어보고는 여지없이 주인한테 계산기 달라고 하고는 멋지게 또 거래를 성사시켜 준다.

그랬더니 지켜보고 있던 옆집 커피가게 주인분도 이 녀석이 범상치 않음을 알고는 옆으로 슬그머니 와서는 셀카 찍자고 포즈 잡고는 몇 컷 찍어 간다.

알고 보니 New Yorker였던 할머니 두 분과 옆 커피가게 주인분, 기념 촬영에 기꺼이 응해주셨다.


아빠인 나도 흐뭇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래서 맹모삼천지교인가... 하는 불안함엄습을 했다.

풀 센텐스도 아니고, 반 베트남어에 반 영어에... 딱 내가 경계하라는 그 언어 습관을 키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축구 게임 하다가 거기에서 나오는 영어를 따라 하는 걸 보고는 내 기우였나 싶기도 해서 아들에게 물었다.

아빠가 이러이러해서 기쁘기도 했지만 영어를 망치는 거 같아 맹모삼천지교가 떠올랐다고 하자 자기도 안다는 것이다.


자기도 풀 센텐스 구사할 수 있는데, 시장에서는 물건 값 흥정해서 잘 사는게 목적 아니겠냐고 한다.

거래는 속전 속결로 처리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아이 원트 어쩌고 저쩌고 하면 어떻게 되겠냐고.


빨리 가격만 얘기하고 가격을 맞추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일단 판다고 부르는 가격에 절반 정도 선에서 살 걸 예상하고, 부르는 가격에서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사고 싶다고 처음에 때린 다음에 조금씩 올리다가...


적정한 가격에서 값을 딱 부르면서 "finish!!!" 외치면 거의 다 성사된다면서 나름 노하우를 얘기한다.


그래, 나중에 호찌민에서 사업을 할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이 어린 나이에 벌써 벤탄 시장 유명인사가 되어 다음에 물건 사러 가면 먼저 알아봐 주고 조금이라도 좋은 물건 싸게 사면 그게 더 좋은 게 아닌가 싶고, 또 풀 센텐스를 구사하는 영어 잘하는 어떤 애가 이렇게 시장에서 물건값을 흥정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혹시 알아?

이렇게 시장에서 네트워크 구축해서... 나중에 호찌민 거상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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