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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다 May 08. 2019

회색신사와 스마트폰의 상관관계







10여년 만에 모모를 다시 읽었다. 이 책을 읽었던 10여년 전에도 이름으로 소개하는 것보단 '그거 있잖아, 내 이름은 김삼순에 나왔던 책'이라고 소개하는 게 훨씬 말이 잘 통했던 기억이 난다.


 오랜만에 만난 모모는 커다란 나무처럼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모모의 낡은 집과 복사뼈까지 오는 낡은 스커트, 환상적인 맛이라는 초콜릿 차와 버터바른 갓 구운 빵을 준비한 호라 박사까지 어느 하나 반갑지 않은 게 없었다. 심지어 글을 읽을 때마다 스산한 느낌이 들었던 회색신사도 달라지지 않았다.


 모모에 등장하는 회색신사는 사람들의 시간을 시간저축은행이라는 곳으로 교묘히 빼돌리기 위해 생겼다. 그들은 너무나도 은밀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회색신사들에게 시간을 뺏긴 사람들은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을 용납하지 않지만 점점 더 시간이 부족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시간을 뺏긴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예민해지고, 짜증이 나게된다.


 하하- 재밌네. 시간을 뺏기다니 말도 안돼. 나도 안 보이는 시간을 무슨 수로?

이 책을 처음 다 읽었을 때는 너무 어려서 시간을 뺏긴다는 개념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나에겐 시간은 흐르는 물처럼 차고 넘쳐 흐르고,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는 기분을 들게 하기 때문이었기에. 그러니 나는 멀직이 떨어져 사람들의 시간을 다시 되찾으려 고군분투하는 모모의 모험을 심드렁하니 바라볼 수 있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말이다.


 10년이라는 세월동안 나의 시간은 끝이 없는 바다에서 강이 되었고,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넓었던 강이 급속도로 작은 호수가 되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런 점에서 스마트폰이라는 회색신사의 등장은 정말 획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의 생각은 이렇다. 스마트폰을 하다가 시간이 비교도 안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고 느끼거나 혹은 한 것도 없이 하루가 다 갔다고 느꼈다면  회색신사들이 우리의 시간을 성공적으로 훔친 증거라는 것. 그럴 때마다 짜증도 나고 한 없이 우울해졌다가 예민해지기도 하는 걸 보면 정황이 너무 딱딱 맞아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생각해보면 모습만 계속 바뀌었을 뿐, 회색신사는 우리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테트리스 밖에 안되는 게임기, 하루종일 가지고 놀던 스티커북, 비디오 테이프, TV, 컴퓨터를 거쳐 결국 회색신사는하루종일 우리가 손에서 놓을수 없는 존재가 되는 데 성공했다. 새삼 발상의 전환을 하고 바라보니, 이 놈들 시간 좀 훔쳐보겠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게 아주 노력파 타입이다.









 나는 오늘도 스마트폰이라는 회색신사에게 착실히 5시간을 뜯겼다. 아마 나를 담당하는 회색신사는 연말마다 인센티브 꽤나 두둑하게 받을 듯 하다.


 다행스럽게도, 회색신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간단한 방법을 알고 있다.

그냥 그들의 정체를 폭로하면 된다. 바로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처럼.

혹시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다가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거나, 하루를 날려버렸다면 당신의 스마트폰이 영악한 회색신사는 아닐 지 한 번쯤 의심해보길 바란다.


 나는 오늘 밤, 스마트폰을 저멀리 던져두고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읽을 참이다.

당신도 오늘만큼은 잠시 스마트폰이라는 회색신사의 눈을 피해 자신의 시간을 누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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