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1.Coffee

by 만원식탁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에서 커피를 내리고 싶어. 드리퍼 앞으로 바다가 보이는 곳이었으면 좋겠어. 커피 향 맡으면서 손님들의 얘기 소리를 듣고 싶어. 그럼 난 행복할 것 같아. 그런 정도라면 행복할 것 같아. 외로운 건 자신 없거든. 그렇다고 사람들이랑 부대끼는 것도… 이제는 자신 없고. 딱 그만큼만. 커피 향이 오갈 수 있는 정도의 거리. 그 정도에서 사람들과 살고 싶어. 그러면 그것으로 난 행복할 거야. 누가 물어본다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


3년 전에 친구가 남겨 두고 간 엽서가 있어요. 지금 제 주방 냉장고에 파란 자석으로 붙어 있습니다. 그 친구는…


홍대에서 소위 가장 잘 나가는 카페 사장이었습니다. 전성기가 지나갔다지만 한때의 홍대는 대단했었죠. 그 친구 카페가 홍대에 자리 잡았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 대학을 나왔거든요. 그렇게 단순했던 친구. 절대로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도 신기했어요. 말을 엄청 재미있게 하고 구하기 힘든 CD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 인기도 많고 많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 친구에 대해 제대로 아느냐 묻는다면 글쎄요… 저와는 고등학교 동창이라 상당히 가까이 지냈고, 저한테 술을 가르쳐 준 것도 30년을 피다 끊은 담배를 처음 가르쳐 준 것도 다 그놈이었는데. 그 친구는 인상으로 기억되는 타입이었어요.


이야기의 8할은 커피와 책과 Keith Jarrett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누가 끼어들 수가 없었어요. 끼어들 필요가 없었죠. 커피를 내려 주고 최근 읽은 책 이야기를 해 주고, 또 위스키도. 학교 근처에 혼자 살았기 때문에 어디에 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언제나 재즈가 흐르는 작은 자취방. 미대 출신 아니겠습니까. 피아노 치는 Keith Jarrett 그림이 가득한 그 친구의 3층 원룸이 제일 근사한 재즈 카페였거든요.


저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낭만적인 대학생 친구가 그렇게 멋있어 보였습니다. 고등학교 때만큼 자주 만나진 못해도 종종 어울렸죠. 요리사의 길을 선택한 제가 흥미로웠는지 이것저것 자주 물어봤어요. 그러다가 홍대 기찻길 근처의 작은 오뎅바에서 일할 때였나? 거의 마감할 즈음 그 친구가 취기가 가득한 채 놀러 왔습니다.


“맥주 한 잔만. 오뎅은 서비스?”

“아사히, 기네스 섞어서지?”

“결심했다.”

“뭘?”

“장사하려고!”


잘될 줄 알았습니다. 사람 휘어잡는 솜씨, 센스 하나는 타고난 친구였으니까요. 커피 맛은 말할 것도 없었고요. 힙합으로 변해 버린 홍대가 싫다며 가게도 희한하게 홍대 상권 길 건너 저 멀리에 자리 잡았어요. 지금은 경인선 숲길 공원이 생겼지만 그 시절엔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와! 정말 잘되었습니다. 잡지에도 자주 나왔고요. 어느 때부터인가는 그 친구의 원두를 받아 쓰는 게 일종의 상징이 되어서 홍대, 명동, 강남의 카페, 레스토랑들로 팔려 나갔어요. 요리 배워서 가게 차리겠다고 일찍 사회 생활을 시작했지만 아직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그 친구가 먼저 사장이 되고 성공한 모습이 대단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장사를 시작하고 더 친해진 것 같아요.


그러다가 저도 작은 가게를 차렸고, 자리 잡아 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친구로서, 자영업 동료로서. 그러던 어느 날 잔뜩 취한 친구가 놀러 왔습니다.


“맥주 한 잔만.”

“아사히, 기네스 섞어서지?”

“결심했다.”

“뭘?”

“그만하려고!”


그렇게 그 친구는 사람으로 가득하던 카페를 신기루처럼 삭제하고는 홀연히 부산 작은 바닷가로 떠났습니다. 많은 손님들의 기억 속에서 그런 곳이 있었던가? 하는 몽롱한 착각을 일으키듯.


“못 하겠어. 표정이 내 표정이 아니고 말이 내 말이 아니야. 이야기도 내 이야기가 아니고. 내 표정이 아니고 내 말이 아니고 내 이야기가 아닌 것들이 너무 많이 돌아다녀. 연극처럼 살고 싶지 않은데, 막이 끝나질 않는다. 끊을 수가 없네? 감각도 생각도 마비됐어.”


오늘 그 친구로부터 새로운 그림 엽서가 도착했습니다. 카톡으로 보내도 되는데, 그 친구답게. 그 친구의 표정을 닮은 바다. 올해 여름 휴가 장소는 정해졌네요. 시원이 보러 부산 가서 제대로 한 잔 해야겠습니다.




#KeithJarrett

- Be My Love


#만원식탁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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