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by 만원식탁


저의 주말인 월요일 밤. 내일 장사를 준비하며 노트를 정리하고 있는데 오랜만에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서로 먹고 사느라 바쁘게 사느라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꼬마 시절 동네 친구는 이따금 걸려오는 전화가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뭐 해?”

“어이, 나? 뭐 정리 좀 하고 있어.”

“소주나 한잔 할까?”

“그래? 그래.”

“예전에 잘 가던 치킨집?”

“오케이, 1시간 뒤.”

“오케이.”


수십 번을 만나서 술잔을 나누었겠지만, 그 많은 술집에서 나눈 얘기의 종류는 몇 가지 안 될거에요. 늦은 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몇 번이고 떠들었을 수다를 되새김질하며 웃음을 이어갑니다.


“이직할까?”

“왜? 회사 사업 잘 된다며.”

“그냥. 답답하기도 하고.”

“편하게 생각해. 뭘 해도 잘할텐데 뭐.”


사실 이 친구는 자기 앞길을 걱정할 놈은 아닙니다. 자기 분야의 전문가이고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능력쟁이니까요. 다만, 어렸을 때부터 “답답하다.”라는 표현을 입버릇처럼 했어요. 뭘 위해 일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겠다고. 그냥 주어진 숙제들을 해결하듯이 살고 있을 뿐이라고. 물론 저는 “그러면서 사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라고 항상 응원해주지요. 응원이기도 하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어, 이 노래?”

“이거 우리 진짜 옛날에 많이 들었는데.”


허름한 동네 치킨집에서 조악한 음질로 멋진 음악이 흐릅니다.


'차가와지는 겨울바람 사이로 난 거리에 서 있었네.'


신해철, 길 위에서. 기억이 났습니다. 2014년 10월, 신해철 사망. 청춘을 꽉 채웠던 영웅이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장례식장도 갔었는데. 근데 가지는 못했어.”

“뭔 소리야. 왜?”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차에서 틀었던 노래도 이 곡이었는데.


“그날따라 차가 엄청 많더라고. 생각난다. 강변북로에서 빠지려고 하는데 매장에서 전화가 온 거야. 뭐지. 준비 다 해놓고 나왔는데. 오픈 전까지는 갈 수 있는데… 그러면서 전화를 받았지. 직원이 엄청 다급한 목소리더라고.


‘사장님… 지금 혹시 바로 오실 수 있으세요?’

‘어… 어, 갈게. 잠시만 기다려.’


그러고는 바로 차 돌려서 갔지 뭐. 도착해서 가게로 달려 들어가니까 직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테이블만 연신 닦고 있더라고. 바닥 물청소를 하다가 콘센트 안으로 물이 튀어 들어갔었나봐. 전기가 죽어 있더라고. 뭐 어떡하겠어. 시트콤 마냥 같이 웃고, 코드 다 뽑고 말렸지. 한 시간 있으니까 다행히 전기 살아나고 평소보다 좀 늦었는데 무사히 장사도 잘했어. 장례식을 못 가서 진짜 아쉬웠는데. 그날 생각나네.”


어느새 병이 비어 새로 한 병 주문했습니다.


“그날 영업 내내 신해철, 무한궤도, 넥스트 음악을 틀었거든. 눈치 챈 손님들 몇몇이 슬쩍 주방 쪽을 바라보더라. 몇 손님은 잔을 들어 주기도 하고. 평소에도 내가 매장에서 말이 많진 않은데 그날은 진짜 마음이 이상해서 거의 말을 안 했어. 퇴근하고 집에 가서는 계속 기사 검색하고 TV에서 뉴스도 계속 나왔으니까. 장례식장에 모인 팬들의 안녕을 보면서 조용히 인사했었네.”


역시 팬이었던 제 친구도 아련히 회상하는 표정입니다.


“그날 내가 혼자 조문도 썼었어. 하하하. 여기 어디 있을텐데… 있다!”


그렇게 어린 시절 두 친구는 수없이 나누었을 옛날 이야기를 또다시 반복하며 하루를 정리하였습니다. 너무 많이 들어 늘어진 테이프를 계속 듣듯이.




#신해철

- 길 위에서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진 않은 나의 길
언제나 내곁에 있는 그대여
날 지켜봐주오

#만원식탁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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