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여기가 왜 좋아? 별거 없어 보이는데.”
주방 바로 앞에서 두 손님이 대화를 나눕니다. 한 분은 종종 오셔서 얼굴 정도 기억하는 손님, 다른 한 분은 친구인 것 같습니다.
“여기? 그냥.”
“그냥?”
“응, 그냥. 별 게 없어서 좋달까…”
칭찬인지 아닌지 헷갈립니다.
“대학 졸업하고서 사진 찍겠다고 세상 좋은 곳 많이 다녔잖아. 나 재작년에 삿포로 갔던 거 기억나? 셋째 날이었나… 좀 취해서 술이나 깨려고 기웃대다가 어느 골목에서 작은 카페에 들어가게 됐어. 정말 작았어. 구둣방 사이즈? 거기에 젊은 사장이 앉아서 커피도 팔고, 술도 팔고. 그렇게나 좁은데 필요한 건 또 다 있더라. 의자가 5개 있었나? 끝 자리가 하나 남아 있길래 저길 어떻게 들어가지 하고 멍하니 있는데, 손님들이 전부 나오더라고. 그러더니 나보고 안으로 들어가래.”
따뜻한 히레사케를 한 모금 하십니다.
“몸을 구겨 넣어 끝에 앉으니 나간 사람들이 또 착착착 들어와. 불편한 기색이거나 그렇다고 낯선 이에게 선물하는 듯한 친절도 없었어. 당연히 그런 것처럼. 손글씨로 써 있는 메뉴판을 보니 또 뭐가 많아. 그래서 제일 위에 ‘best’라고 표시된 걸 주문했지. 그러니까 젊은 사장이 한 번 웃더니 손 닿는 재료들을 부스럭대면서 깨끗한 유리잔에 음료를 하나 툭 만들어 주더라고. 받아 보니 아이리시 커피였어. 일본어를 읽을 줄 모르니까. 아, 맛있더라고! 춥고 밤이고 이미 취했고. 그때 그 비좁은 공간에서 한 모금 딱 마시는데 기가 막힌 거야. 크림은 달지, 커피는 좋지, 그 사이로 위스키 향이 쓰윽 들어오는데… ‘하~’ 하고 작은 탄성을 뱉으니까 사장이 위스키 병을 보여 주더라고. 이걸로 만들었다고. Green Spot이라는 위스키였어. 다음에 따로 사 먹어봐야지. 암튼, 그때 문득 생각했어.”
친구분은 기네스를 한 모금 들이키고서 고개를 기울여 친구를 바라봅니다. 제 귀도 쫑긋해졌습니다.
“별 게 없다.”
재료를 썰다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손님을 힐끗 쳐다보았습니다.
“뭐야 그게.”
고개를 툭 떨구며 웃는 친구.
“그렇더라고. 기억이라는 게 다 내 안에 있더라고. 감상은 대단한 무언가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고 다 내 느낌이더라고. 그 여행 가기 전에 사실 아버지한테 전화드렸어. 사진 그만하고 회사 들어가겠다고. 생각은 몇 달간 했어. 대단치도 않은 상 같은 거 몇 번 받고서 특별한 줄 알았지. 아버지 덕에 작은 전시회 몇 번 하면서 사진 몇 장 팔면서 나를 보는 남들의 시선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는 거 알게 됐을 때, 집착했던 것 같아. 더 특이한 걸 찍으려고. 특별하지 못한 재능 들킬까 봐 더 특별한 걸 찍으려고. 그러다가 어느 날… 아무것도 바라볼 용기가 안 나더라.”
슴슴하게 찐 가오리찜을 내어 드렸습니다.
“그때 카메라도 안 가져갔거든.”
“사장님, 저도 사케 한 잔만 데워주세요.”
“같이 히레사케로 드릴까요?”
“아니요, 전 그냥.”
가오리찜 양념을 드리고, 아즈캉을 준비합니다.
“돌아와서는 골목을 찍고 사람들을 찍었어. 그냥 걷다가 먹다가 마시다가. 카메라도 작은 걸로 바꾸고. 요즘엔 거의 이거 Nikon Z8만 들고 다니네. 전시회? 진작 포기했지. 그냥 블로그 하나 만들어서 사진 올리고 글도 좀 쓰고. 그러다 보니 하나둘 봐주대. 가끔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재밌더라. 댓글로 대화도 하고. 그러다가 여기를 알게 된 거야. 독자 중 한 분이 모임 한 번 하자고 하길래. 사장님, 혹시 그 오토바이 타고 다니시는 목수 양반 아시나요?”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했지만, 반장님 언급이 반가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뒤로 종종 왔지. 혼자도 오고. 올 때마다 기분이 좋아. 봐봐. 다들 즐겁잖아. 이 술집은 강요하지 않아. 대단할 건 없지만 부족함도 없는. 영화 볼 땐 몰랐는데 보고 나면 흥얼거리게 되는 OST 같달까. 그래서 좋아해.”
칭찬에 기분은 좋은데 눈이 마주칠까봐 도마만 바라보며 웃었습니다.
“아 맞다, 잠시만요.”
사진 작가 손님이 가방을 뒤적이다가 무언가를 꺼내셨습니다.
“지난번에 드리고 간다는 걸 깜빡했네. 그 목수 양반이랑 처음 왔을 때 찍은 겁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선물 드려도 될까요?”
#전람회
- 이방인
그제야 나는 알게됐지
그토록 찾아헤매던 나의 머물 곳은 너였음을
#만원식탁 #일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