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5분

by 만원식탁


늦은 예약이 있었습니다. 11시 즈음에 5명이 갈 건데, 그때까지 아마 밥을 못 먹은 상태일 거라 혹시 요리 메뉴들이 다 주문되겠냐고 물어보셨어요.


"물론 되지요! 조심히 오세요."


궁금했습니다. 이렇게 예의 바르게 예약하시는 분은 흔치 않거든요. 어떤 손님일까? 왜 밥을 못 먹고 오는 거지? 계속 상상하면서 장사를 했네요. 늦은 시간인데 좀 취해서 오시려나… 11시 5분.


"저희 11시 예약이요."


하면서 들어오시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머리를 한껏 곱게 빗어 올린 아름다운 무용수 네 분이 걸어 들어오셨어요. 예약하셨던 분 목소리가 걸쭉하셔서 당연히 연배가 좀 있으신 남자 손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희 가게의 그 시간 방문객들이 보통 그렇기도 하고.


"아, 선생님도 곧 오실 거예요."


제 얼굴이 뭔가 당황한 표정이었나 봅니다.


"사장님, 저희 하이볼 네 잔 먼저 주세요. 선생님이 이 가게 다 맛있대. 시켜, 시켜~"


그렇게 거의 1시간 정도를 이 메뉴 저 메뉴 시키시며 맛있게 드셨습니다. 정말 잘 드시더라고요! 무대 화장이지만 옷은 갈아입은 상태여서 어떤 무용을 하시는지, 문외한인 저로서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무용수들은 소식하신다고 생각했거든요. 선입견이었나 봅니다. 뭔가 전투적인 식사가 소강 상태로 잠잠해질 때쯤…


"선생님, 여기요!"


그 소리에 저도 현관을 바라보니 듬성듬성한 백발에 모자를 깊이 눌러 쓰신 어르신 한 분이 목례를 하며 들어오십니다.


"벌써 다 먹은 거야? 하하하. 맛있지? 오늘 정말 고생했다. 공연 좋았어. 관객들 반응도 좋았고. 객석도 거의 다 찼더라. 상희야. 마지막 무대인데 내가 그래도 선물 하나 준 것 같아서… 그냥 오늘은 참 좋았다! 아니지, 내가 주는 선물이 아니지. 하하 무슨 소리를. 니가 잘 챙겨 갔다! 사장님, 저는 맥주 한 잔 부탁합니다."


화장 때문에 몰랐는데 다시 손님들을 바라보니 오늘 자리의 주인공처럼 보이는 한 분께서 다른 무용수들보다 살짝 나이가 더 있어 보이더군요.


"에효~ 열심히 했으니까요."

"와~ 쌤도, 쌤도 짠 해요! 짠짠짠~"


아까부터 유독 목소리가 큰 학생이 분위기를 돋우네요. 그렇게 2시간을 더 보내셨습니다. 중간에 울기도 했다가 또 떠나갈 듯 웃다가. 분명 저분들이 공유하는 굉장한 추억이 있는 거겠죠.


은퇴하는 무용수와 후배들, 그리고 감독님? 교수님? 정도로 추측해 보았습니다. 왜 오늘 무대가 마지막이었을까, 그들의 사연은 알 수 없지만. '축하합니다.'라고 속으로 외치고 오뎅 나베 한 그릇을 정성껏 끓여 서비스로 내어 드렸습니다. 역시 큰 목소리의 학생이


"와우! 싸장님 최고!!"


조촐한 저희 가게에서 이뤄진 만찬. 세계적인 팀이 아닐지 몰라도 그들의 세계에서 열심히 했고 최선을 다했을 겁니다. 표정이 그래요. 가게를 한 번 둘러보았습니다. 꽤 늦은 시간. 삼삼오오 시끌시끌. 다들 각자의 사연으로 하루를 마치고 모여 계시네요. 문득 예전 잘 묻던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잘 사는 게 뭘까?


한 시절 쓸데없는 철학에 빠져 살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못 내렸는데. 오히려 장사하면서 손님들 보면서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냥 열심히 사는 거다. 몰입감. 그게 살게 하더라고요. 그게 사람을 움직이고, 조금 더 잘하고 싶게 하고, 집중하게 하고.


오늘 밤, 무용수의 무대는 마지막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동안 수없이 몰입하며 살아온 순간들에 박수를 보냅니다.




#Queen

- the Show Must Go On


The show must go on

Inside my heart is breaking

My makeup may be flaking

But my smile, still, stays on


#만원식탁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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