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퇴근합니다. 출근길은 아무래도 챙길 일들이 많고 여유 부릴 틈이 없지만, 퇴근길은 괜찮아요. 계절도 상관없고요. 시간도 1시간 남짓 적당합니다. 평소보다 과하게 늦게 마감하는 날을 제외하곤 걸어서 퇴근합니다.
그 야심한 시간에도 한강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마 저와 비슷한 분들이겠죠. 각자 하루의 루틴에 이 시간이 설정되어 있는 사람들. 걸어서 퇴근하기 시작한 건 장사 시작하고 3년쯤 되었을 때인가, 친구 덕분이었어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얼굴이 반쪽이 되었더라고요. 학창 시절 그 친구 별명이 요요였거든요. 원체 덩치가 커서 연례 행사처럼 다이어트를 했는데 빠졌다가 다시 찌고, 빠졌다가 더 찌고. 그랬던 친구가 얼굴이 반쪽이 됐으니 적잖게 놀랐었죠.
"요요, 곧 또 요요?"
"아닌데. 나 이 몸무게 3년 됐는데."
"오오! 진짜? 어떻게?"
저희 가게 시작할 때부터였나 봅니다.
"알지? 나 맨날 다이어트했던 거. 근데 어느 날 갑자기 뭐 하는 짓인가 싶더라고.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봤어. 뺄 때 빠지긴 한 거잖아. 왜 빠졌겠나. 운동을 했으니까겠지. 그래서 그 운동 시간을 그냥 스케줄에 넣어버렸어. 출근 전에 1시간 일찍 나와서 매일 운동했어. 처음엔 힘들었는데 이젠 안 하면 어색해. 출근 시간을 운동 시간에 맞추니까 자연스럽게 전날 술자리나 멍하니 핸드폰 보는 것도 줄어들고. 좋은 리듬이지."
그래서 저도 걷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영어 공부라도 할까 하면서 이어폰을 챙겼지만, 이젠 그렇지도 않습니다. 좋더군요. 조용한 시간에 간간이 들리는 소음들, 한강 물소리도 들리고. 바람 소리도. 하루의 기억들이 흘러가기도 하고, 오늘 장사하면서 실수한 부분들 또 내일의 계획들을 떠올려 보기도. 매출이 안 좋았던 날엔 한숨을 쉬기도 하고.
가끔 집으로 빠지는 출구를 넘어서 걸어갈 때도 있습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생각에 빠지다가 생각이 사라지는 밤이에요. '여기 어디야?' 문득 정신이 들어 두리번대다가 다시 거꾸로 걷기 시작합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습니다. "허허" 하면서 한강 출구를 빠져나와 횡단보도에 섰습니다. 많이 늦기도 해서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며 신호등을 기다렸습니다. 보행 신호가 되어 길을 다 건너 인도로 올라서는데 뒤에서 "빵!" 소리가 들리더군요. 차가 감정이 있겠냐마는 분명 그 소리엔 짜증이 담겨 있었고, 심야의 경적 소리에 자못 놀라 뒤를 돌아봤습니다.
"빵빵! 빵!"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느릿느릿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이미 빨간 신호로 바뀐 길을 할머니는 이제 절반쯤 건너고 있었습니다. 경적의 차량은 두 번째 차였어요. 할머니 걸음이 꽤 남은 상황에 약간 긴장이 되어 그 앞 차량의 운전석을 보았습니다. 고요한 새벽 교차로, 가만히 앉아 있던 청년.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지 고개로 리듬을 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완전히 길을 건너는 동안 그 차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제 옆을 지나갈 때쯤 "딸깍딸깍" 비상등을 켜면서 출발했습니다.
저도 남은 귀갓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걷다가 핸드폰을 켜고 '주무셨어요.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라고 어머니에게 보낼 아침 예약 문자를 걸어두었습니다. 떳떳하진 않지만 틀린 기분은 아닙니다.
#EliTeplin
- Can't Stop Thinkin' About You
Tryin' to forget the pain
Memories come back again
I don't know what to do with them
Heavy on my mind
#만원식탁 #일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