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 이거 너지?"
을지로에서 레코드바를 하시는 선배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손을 '팍!' 짚고서는 쪽지 하나를 내밉니다.
"어 어, 형님. 오랜만이에요. 뭔데요?"
조금 놀란 채 쪽지를 받아 펴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랜 단골입니다... (중략) 손님 떠난 자리에 손님에 대한 뒷말을 떠드는 모습이 불편했습니다... (중략) 아마 당분간은 못 올 것 같아요. 그동안 좋은 음악, 좋은 술 감사했습니다.'
선배의 레코드바는 오래도록 찾던 단골 바입니다. 월요일 휴일의 마지막 코스로도 자주 갔고, 늦지 않게 퇴근하는 날엔 일부러 택시를 타고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조용하면서도 바글바글대는 묘한 분위기. 무엇보다 좋은 음악, 좋은 칵테일. 그리고 마지막에 내려주는 에스프레소 한 잔. 밤이 바쁜 사람들이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완벽한 장소입니다.
그날도 갔었습니다. 마지막 손님이 너무 맛있게 술을 드시는 바람에 도저히 집에 그냥 갈 수가 없었어요. 역시나 맛있는 음악, 맛있는 술. 그날은 Chet Baker 특집이었는지 연이어 흐르는 트럼펫 소리에 취해 진피즈, 갓파더에 이어 올드패션드까지. 완벽한 퇴근이었죠. 언제나 마무리는 에스프레소. 선배 레코드바 특유의 산미 가득한 에스프레소를 주문하여 입가심하며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레코드바의 크기는 크지 않습니다. 작은 공간의 큰 스피커는 더욱 귀 깊숙이 소리를 전하죠. 그런데 그 소리를 타고 듣고 싶지 않은 대화가 따라왔습니다. 손님에 대한 수다, 안 좋은. 아마 방금 제 옆에서 일어난 커플 손님에 대한 뒷말인 것 같았습니다. 커다란 트럼펫 소리가 공간을 메우지만, 의도가 담긴 이야기는 더 크게 들리는 법입니다.
"아... 형님. 그게."
"글 보고 딱 넌 줄 알았어."
"혹시 형님한테 전해지면 도움이 될까 싶었어요."
"고맙다."
휴- 조금 긴장이 풀립니다.
"자주 왔었어? 나 거의 못 봤지?"
"가던 만큼 갔죠. 안 계시길래 일정 있다 생각했죠."
그제야 웃옷을 벗으시며 자리에 앉으셨어요. 숨 좀 돌리시라고 생맥주 한 잔을 얼른 내어드렸습니다.
"내가 미쳤었나 봐. 나 가게에서 거의 못 봤지? 사실 많이 자리를 비웠다. 최근에 와인 모임에 빠져가지고... 사실 핑계지 뭐. 가게 틀어진 건 진작에 알고 있었어. 친구가 언제 한 번 왔는데 판을 안 걸고 유튜브 차트 음악을 틀고 있더래.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도 좋더라. 놀기 시작하니까, 365일 일만 하다가... 밖에서 보내는 밤 시간이 너무 좋더라. 그러다가 정신줄 놔버린 거지. 혼날 만해. 니 말이 맞아. 이 쪽지도 어제 본 거야. 직원도 뻘쭘했는지 버리진 않았더라. 냉장고 옆에 붙여놨더라고. 어쩌면 걔네들이 나한테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수도. 암튼 직원들 잘못도 미안하고 내가 너무 미안하다. 이제 복귀했어. 다시 놀러 와."
다음 주 휴무일에 할 일이 생겼습니다!
"형님, 뭘 또 그래요.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이 김에 명품 추천 받아봅시다. 한 곡 추천해 주세요."
#ChetBaker
- But Not for Me
#만원식탁 #일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