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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 풍경 그리고 메멘토 모리

by 박신호

#1

섣달그믐을 며칠 앞둔 저녁이었다. 휴대폰에서 문자 도착을 알리는 소리가 났다. 졸린 눈으로 바라본 화면에는 이상한 글이 떠 있었다. “산 죽음 알립니다. 사랑어린마을배움터 촌장 두더지의 살아있는 장례식을 알립니다.”라는 SNS 내용이었다. ‘죽음, 두더지, 장례식’라니?' 밀려들던 졸음이 달아났다.

두더지 목사님이 돌아갔단 말인가? 처음엔 황당한 가짜뉴스인가 싶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어느 믿을만한 지인이 보내준 SNS 게시물이었다. 그제야 ‘살다’의 관형어 ‘산’이란 글자가 보였다. ‘살아있는 자의 죽음’이라는 역설적인 의미를 전하는 안내문이었다.

이틀 뒤인 임인년 마지막 날에 피리님 부부와 사랑어린배움터를 찾아가기로 했다. 정오 무렵, 출발 전 만난 피리님도 산 죽음 행사 글에 처음엔 놀랐다고 했다. 아마도 이별꽃스콜레 배움터 행사가 아니겠냐며 유쾌하게 운전대를 잡았다. 순천으로 가던 길에 잠깐 광양 도립미술관에 들려 프랑스 화가 루오의 작품도 관람했다. 예정에 없었던 눈 호강은 피리님 부부 덕분이었다.

#2

해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와온으로 가는 길목에는 임인년 마지막 일몰을 보려는 차량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관옥나무도서관에서 만난 두더지 목사님은 언제나 그렇듯 우리를 포옹으로 맞아주셨다. 신년맞이 단식을 위하여 오신 분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목사님으로부터 ‘산 죽음’ 행사의 의미에 대하여 들을 수 있었다.


잠시 후 둘러보다 어느 커다란 탁자에 눈이 갔다. 그 탁자 위에는 죽음에 관한 책들이 놓여있었다. 책들 위로 비치된 기다란 서각에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 유한한 인간임을 일깨워주는 라틴어다.

일본 여행이 기억났다. 일본인 주택의 마당에는 탑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탑의 내력을 들으니 놀라웠다. 그 안에는 조상의 유골이 모셔져 있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 사회에서 그 누군가 이런 탑을 집에 모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인근 주민들로부터 집값 떨어진다는 격한 항의에 혼쭐이 날 것이다. ‘개똥으로 굴러다녀도 이승이 낫다’라는 속담처럼 우리는 죽음을 터부시 하는 정서가 강한 민족이 아닌가 싶다.


코로나 확진된 날이었다. 근육통에 끙끙대면서도 월드컵 결승전을 새벽에 시청했다.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의 우승임에도 기분이 좋았다. 메시의 축구 본좌 등극에 감격해다가, 문득 내 생전에 월드컵을 몇 번 볼 수 있겠냐 싶었다. 욱신거리는 코로나 진통 속에 헤아려보니, 대략 앞으로 여섯 차례 월드컵을 구경하면 이번 생이 끝날 것 같았다. “대한민국!!” 여섯 번 박수면 끝날 이승의 삶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3

우리는 임인년 마지막 태양을 환송하기 위해 여수 소라면 바닷가로 향했다. 그곳 해변을 따라 놓인 테크 기대어 세밑을 마무리하는 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차피 내일이면 다시 떠오를 태양이라는 메마른 생각에 심드렁했다. 그보다는 우선 찬 해풍에 굳어 있는 몸을 녹여 줄 따끈한 국물을 영접하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일몰 후, 근처 식당에서 먹은 된장찌개백반은 기대 이상이었다.

백점 만점의 백반을 먹은 후 식당 문을 나서는데, 구름님(피리님 남편)께서 내게 서녘 하늘을 가리켰다. 바라보니 형용하기도 어려운 곱디고운 홍시 빛이 어두워져 가는 하늘에 번지고 있었다. ‘아~고와라’ 탄성이 절로 났다. 구름님은 원래 해가 저문 후 삼십 분가량 지나면 하늘 끝자락에 저런 장관이 펼쳐진다고 했다. 사람들은 해가 바다에 떨어지면 성급하게 떠나는 바람에 이런 고운 노을빛을 만나지 못한다고 했다.

붉은 해가 다시 떠오른 듯 홍시 빛 하늘은 한 폭의 유화였다. 마치 바다 아래로 잠겼던 태양이 진홍빛으로 부활한 듯했다. 하지만 결국, 서녘 하늘을 물들였던 홍시 빛이 완연히 사그라졌다. 저문 태양보다 눈부신 후광이었다. 멀어지는 노을빛을 보면서 나도 눈을 감은 뒤가 더욱 아름다운 존재가 되기를 소망해 보았다. 그렇게 어둠을 가르며 다시 사랑어린배움터로 돌아왔다.

#4

명상 시간에 두더지 목사님은 틱낫한 스님을 언급하면서 올해 많은 분들이 돌아갔다고 했다. 속으로 헤아려보니 사라진 별들이 많았다. 틱낫한 스님, 방송인 송해, 엘비자베스 여왕, 배우 강수연, 고르바초프 서기장, 축구왕 펠레, 가수 올리비아 뉴톤 존, 조세희와 김성동 작가, 레슬러 이노키 등이 스쳐 갔다. 한 시절을 빛냈던 이들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임인년 한 해 이태원 젊은 영혼들의 죽음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도 ‘사고’니 ‘참사’니 하는 부질없는 논쟁에 시들어버린 꽃들이 머물 자리는 없어 보인다. 죽음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무례함에 혀를 차 본다.


그동안 죽음을 대했던 내 모습은 어떠했던가? 그저 사회적 도리를 해치운다는 의무만으로 장례식장을 찾았을 뿐, 정작 고인에 대한 추모는 거의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제공한 음식 맛이나 평가했을 뿐. 어디 장례식장이 맛집이던가 말이다. 이별을 마주하는 예의가 미성숙한 모습이었다.

#5

명상 모임이 끝났다. 다시 광주로 가야 했다. 목사님과 배움터 지인들께도 작별 인사를 드렸다. 출발 전 휴대폰을 열어 보니 “베네딕도 16세 교황 선종”이라는 죽음이 속보로 전하고 있었다. 순간 ‘기리에, 엘레이손(주여 불쌍히 여기소서)’을 기도하듯 읊었다.


늦은 시간에 동광주 톨게이트를 지났다. 밤하늘에 떠있는 달에는 계묘년 토끼가 듯 했다. 새해 시작을 앞둔 섣달그믐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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