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크너 교향곡 7번은 장엄하다. 금관악기와 현악기의 선율이 숭고함을 더해준다. 2악장의 아다지오는충무공 이순신 장군에게 바치는 헌정곡으로 손색 없다. 오래전 방영되었던 ‘불멸의 이순신’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던 이유를 알겠다. 그 비장한 선율이 남해 바다에서 눈 감은 충무공의 혼백을 위로하고 있는 것 같다. 1598년 음력 11월 19일 노량 바다의 아침, 이순신 장군께서 삶의 여정을 끝마친 순간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대한 콘텐츠는 넘쳐난다. 드라마는 물론이요, 스크린에서도 일찍이 국민영화 ‘명량’을 필두로. ‘한산’과 ‘노량’ 3부작이 이어질 예정이라 한다. 출판 분야에도 충무공에 대한 도서는 많고도 다양한데,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는 문체 미학의 백미였다. 얼마 전 출간된 황현필의 ‘이순신의 바다’는 섬세한 해전 삽화로 주목을 끌었다.
#2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성리학적 세계관으로 내면화된 무장이다. 그래서일까? 충무공에게는 고대 로마 스토아 철학자의 풍모가 느껴진다. 스토아 철학은 결과에 초연하고, 극단의 경우에도 마음의 균형을 추구하던 사유 학파다. 스토아 철학의 한계를 넘는 초연한 운명에 대한 사랑과 충무공의 삶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순신 장군은 스토아의 대표 철인이자,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여러모로 비견될 수 있다. 철인 황제에 대한 평은‘자신을 불태워 제국을 지켰다’는 말이 보여준다. 그는 즉위와 함께 게르만족 침입과 반란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황제가 숨을 거둔 곳도 궁궐이 아닌 전투가 치열했던 막사였다. 이순신 장군 또한 운명하신 곳은 핏빛으로 물들던 노량 바다 위의 판옥선이었다.
두 분의 공통점은 기록물에도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나 충무공 모두가 전쟁터에서 위대한 기록물을 남겼다. 철인 황제의 <명상록>은 피바람이 부는 전쟁터에서 생과 사 그리고 운명을 사색한 아포리즘이다. 충무공의 <난중일기> 또한 이에 필적하는 인간의 운명을 노래한 숭고한 작품이자 역사서이다. 감히 권하노니, 삶의 시련에 휩쓸려가는 이가 있다면 <난중일기>를 읽어보시라. 고난을 견뎌내 한 사내로부터 용기를 얻을 것이다.
#3
여러 해 전, 직장에서 막중한 업무를 맡게 되었다. 조직 전체의 체제를 탈바꿈시켜야 하는 일에 선봉장이 되라는 것이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열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출근했고 막막함으로 퇴근했다. 당시 내 컴퓨터의 바탕 화면에는 명량해전의 기록화가 깔려있었다. 출근을 하면 그 기록화부터 눈에 들어왔고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직도 신에게는 열두 척이 있습니다.(今臣戰船 尙有十二)’라는 장군의 말씀은 그때의 절박했던 나의 심정과도 같았다. 하루하루 힘든 시간 속에서 명량해전의 기록화를 응시하다보면, 이순신 장군의 생애가 마음에 흘러 들어왔다. 또한 마음이 무거울 때면 <난중일기>를 펼쳐보면서 장군에게 삶의 지혜를 배우곤 하였다.
#4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찾아서 여정을 나섰던 때가 있었다. 어느 해 가을에는 한산도 통제영을 탐방했고, 무더웠던 여름에는 고금도 통제영에도 가보았다. 삼 년 전 겨울에는 구례에 있는 장군의 백의종군 길을 걸었다. 이 가운데서 고금도의 충무사는 유독 인상적이었다. 그곳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는데, 정유재란의 아우성이 환청으로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곳에서 명나라 제독 진린의 후손들이 조선으로 귀화해서, 해남에 집성촌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득 진씨 성을 가진 우리 반 여학생이 떠올랐다. 학기 초에 출석을 호명하면서 본관을 물으니, 그 학생 답은 이랬다. “본관이 뭐예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우리는 원래 중국 남쪽 어디선가 왔다고는 했어요”라고. 허~참! 중국 남쪽에는 광동성이 있다. 명나라 진린은 광동 진씨였다. 제독의 후예가 우리 반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아산 현충사는 아직도 가보지 못했다. 벼르고 벼르다가 금년 정월에 방문을 문의했더니, 금년 12월까지는 정비사업 때문에 방문이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12월 초가 지나면 정비 공사가 마무리된다고 하니, 내년 정월에는 찬바람을 헤치고 이순신 장군께 향을 사르고 삼배를 올려야겠다.
#5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주변 정세는 녹녹치 않다. 게다가 갈수록 공동체의 분열은 심해져간다.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바른 지도자의 등장을 소망해본다. 하늘은 오백 년 전에도 우리 민족을 어려움에서 건져주고자 충무공을 보내주시지 않았던가? 장군의 자(字)인 여해(汝諧)는 ‘너가 해결할 수 있다’란 뜻이니,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 사회를 통합으로 이끌어 나갈 이 시대의 충무공이 기다려진다.
남해에서 거대한 적군을 향해 돌격했던 것은 무명의 격군들이었다. 어둡고 습한 판옥선의 밑에서 장군의 명에 따라, 쉼 없이 노를 저었던 그들이 있었다. 보이지 않은 격군의 노고가 있었기에 23전승이라는 충무공의 신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역경을 이겨낸 힘과 경험이 있다. 다시 한번 시대의 어둠을 건너기 위해서는 임진년 그때의 전라좌수영 격군들처럼 노를 저어야 한다. 나 또한 그날의 이름없는 격군의 심정으로 맡겨진 삶을 정성껏 살아 낼 것이다.
어느새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이 끝났다. 아직도 귓가에는 2악장 아다지오의 비장한 선율이 들려온다. 음악속에서 “망령되어 움직이지 마라. 침착하고 산처럼 무겁게 행동하라(勿今妄動 靜動如山)”라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울림이 내 안에서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