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속지 말고 눈을 바라보라

『나는 누구인가』, 라마나 마하리쉬

by 박신호

진짜 말세인가 보다. 자칭 메시아라는 인간들이 넘쳐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어느 종교연구소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만 메시아가 천 명쯤은 될 거란다. 은총인지 재앙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진리를 밝혀주는 성자, 성현은 보이지 않고 자칭 메시아들만 득실대는 세상이다.


가짜 메시아들은 엽기의 극판을 보여준다. 가스라이팅은 기본이요, 상상 가능한 모든 폭력도 동원한다. 성적 쾌락을 탐닉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들먹인다. 언어폭력은 더 심해서 ‘찢어 죽인다. 하느님 까불면 죽어, 하느님 보고 싶어 그럼 나를 봐’무도한 언어의 환장파티다. 이런 사이비들에게 배웠다는 이들도 "아멘"하면서 넘어간다니 두대체 이해 불가하다. 이런 말세에 참 영혼 한 분을 떠올려다.


새천년이 시작될 무렵, 자주 뵙던 영적 스승이 계셨다. 그는 칠십 노령임에도 목소리가 카랑카랑했고, 눈빛은 형형했다. 우리는 그를 법사님이라 불렸다. 가정이 있었고 공직 생활도 오랫동안 하셨다고 했다. 법사님은 평범한 속세인임에도 진리에 대한 남다른 혜안을 지닌 분이셨다.


하루는 법사님 법문 중에 라마나 마하리쉬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구스타프 칼융이 존경했던 근세 인도의 위대한 영적 스승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라마나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는 수행자들의 필독서라고 했다.


그 당시 전남대 후문 부근에는 ‘좋은 책방’이란 서점이 있었다. 나는 「풍경소리」라는 책을 얻기 위하여 그곳을 찾았다. 처음 들려본 책방에는 미소를 띤 라마나 마하리쉬(이하 스리 라마나)의 사진이었다. 잠시 후, 책방 주인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의 눈매가 라마나와 닮아 있었다. 얼마간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누구인가』도 구입했다. 훗날 알게 되었는데 책방 주인은 목사였다.

집에 와서 <나는 누구인가>를 펼쳤다. 라즈니쉬가 스리 라마나를 가리켜 ‘몇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물’이라고 극찬했다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오쇼 라즈니쉬가 이런 평가를 했다니 놀라웠다. 세상은 라마나 마하리쉬를 침묵의 성자라고 했다. 그는 영적으로 준비된 사람들에게는 침묵으로써 내면 상태를 전달했고, 수준이 안 되는 이에게는 언어로써 가르침을 전했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에서 구스타프 칼융의 “스리 라마나, 그리고 현대인에게 주는 그의 메시지”라는 글을 볼 수 있다. 칼융은 진아(Self)와 신을 동일시하는 스리 라마나의 가르침은 서구인들에게 충격이라고 했다.


스리 라마나 가르침의 핵심은 진아(眞我) 탐구다.


“인간의 모든 문제와 괴로움은 진정한 나, 즉 진아(眞我)를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 그리고 진아를 알면 풀리지 않은 문제란 하나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진아를 아는 일이다.” 스리 라마나에게 진아란 곧 신이었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브라만 계급 출신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육체가 인간 자체가 아님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의 깊은 삼매에 대한 일화는 유명하다. 어느 날 스리 라마나는 숱한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아루나찰레스바라 사원에서 명상에 들었다고 한다. 그는 모든 감각을 잃고 며칠째 미동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이들이 그를 일으켜보니 허벅지와 발에 해충에게 물어뜯겨 피가 흐르고 고름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런 깊은 명상을 마하 사마디라 부른다. 가톨릭에도 이와 유사한 탈혼과 관상기도가 있다. 성령 만세를 외치면서 신비한 기적에 환호하는 무리들이 알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스리 라마나는 시바 신의 상징 아루나찰라 산에 머물렀다. 그는 아루나찰라 산은 지구의 심장이며 영적인 중심이라고 했다. 그는 그곳에 있는 비루박싸 동굴에서 수행했다. 지금도 아루나찰라에는 스리 라마나의 아쉬람이 있고 그의 신성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위대한 영혼들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스리 라마나 성자의 마지막 순간은 감동적이다.


“저녁 8시 47분. 베란다에 모였던 제자들은 방안에 가득한 환한 빛을 보았다. 그것은 사진기 플래시만큼이나 밝았다. 그들이 놀라움에 말을 잊고 있을 때, 밖에서는 ‘빛이다. 빛이다’라는 소리가 났다. 문득, 밤하늘에 환한 유성이 나타나서는 북쪽 아루나찰라를 향해 떨어지더니 꼭대기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라마나 마하리쉬 성자의 마하 사마디였다.


가짜 메시아에게 환호하는 것은 단 한 권, 단 한 사람만을 추종하는 무지에서 비롯한다. 그 누군가 자신이 메시아라고 떠들면 그이의 말을 듣지 말고 눈빛을 천천히 보라. 눈동자에는 진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스리 라마나 성자의 고요한 눈을 바라보면 그 뜻을 알 것이다..


햇볕은 따가워지고, 세상은 아수라 계다. 이 난장판에서 나를 지키는 길은 ‘진아를 탐구하는 일’이다. 타인의 생활을 엿보며 킥킥거리기에는 우리네 인생이 너무 짧다. 라마나 마하리쉬의 눈동자를 바라볼 때면, 날뛰던 당신의 에고가 주춤할 것이다. 한 번 해 보라.


라마나 마하리쉬 성자의 말씀 몇 가지.

* 진아는 <나>라는 생각이 없는 그곳이며 <침묵>이라고도 한다. 진아가 곧 신이다. 진아는 모든 것이다.

* 나는 누구인가? 모든 것을 <내가 아니다>라고 부정하고 나면 그것들을 지켜보는 각성만이 남는다. 그것이 바로 나다.

* 마음과 호흡의 근원은 같다. 에고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호흡이 시작된다. 따라서 마음이 조절되면 호흡이 조절되고, 호흡이 조절되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과일. 야채 등 채식이 중요하다. 이것은 자아탐구에 도움 된다.

* 생각이 일어나면 따라가지 말고 <이 생각이 누구에게 일어났는가>를 물어야 한다. 한 생각이 날 때마다 물어야 한다. 그러면 점점 근원으로 향하면서 생각은 사라진다.

* 자기 자신 즉 진아를 신에게 완전히 던져 버리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수행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