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의 전설, 밀라레빠

『밀라레빠』, 에반스 웬츠, 이정섭 옮김

by 박신호

소장만 해도 뿌듯해지는 책이 있다. 단지, 서재에 꽂혀 있을 뿐인데, 아우라가 빛을 발한다. 밀라레빠의 <십만송>과 같은 책이다. 세 권으로 된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온 것은 십 년 전의 일이나, 지금껏 감히 읽을 엄두를 못 내고 있다. 한때 타고르의 『기탄잘리』도 그러했는데 다행하게도 작년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책들이 나의 영적 성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티베트 불교의 문턱에 들어서면 달라이라마를 흠모하게 된다. 달라이라마를 친견했었던 일부 목사님은 마치 예수님을 뵌 것 같았다며 감격했다. 하지만 더욱 감격하게 될 위대한 수행자가 있으니, 히말라야의 성자라 불리는 ‘밀라레빠’이다. 그의 치열했던 구도의 삶은 『밀레라빠』라는 책에 전한다. 내게 있는 <밀라레빠>는 한때 인연이 닿았던 법사님의 책을 복사한 것이다. 비록 원본은 아니지만, 법사님의 해설이 메모되어 있는 귀한 영적 도서이다.


성자 밀라레빠를 소개한 이 책은 옛 고려원 출판사에서 나왔다. 이 신비스러운 성자의 일대기를 기록한 저자는 ‘짱농’이라는 티베트 승려이다. 그는 밀라레빠의 맏제자였던 래중빠의 제자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전해 들은 밀라레빠의 생애담을 기록했 것이다. 때는 1488년 음력 9월. 육백 년 전의 일이다. 책을 펼치면 먼저 기록자 짱농의 헌사가 나와있다. 첫 구절은 이렇다.


“여의주와 같은 이 생애담의 광채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태양과 같이 빛나게 하여 모든 중생들의 희망과 기대에 부응하나니, 이를 제불보살에게 바치는 가장 큰 공양이 되기를...”

밀라레빠는 실존 인물로서 생전에 부처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전해지는 티베트 불교 까귀파 수행자이다. 본명은 ‘미라 샤빠 도제’인데, 그에 대한 가장 절제된 평가는 다음과 같다.


“밀라레빠는 한 생애 동안 금강불(金剛佛)을 체현한 완성자로서 사성불(四性佛)과 오성지(五聖智)를 구현한 분이다. 밀라레빠는 이와 같은 불타의 경지를 성취함으로써, 다함없는 중생을 이롭게 하였다. 위대한 완성자‘미라 샤빠 도제’의 생애담은 많은 사람에게 빛과 은총을 주며, 윤회의 현상 세계를 벗어나 영원한 기쁨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잡이가 되리라. 모든 중생들은 다함없는 축복을 받기를...!"<본문 364쪽>


밀라레빠의 구도담은 웬만한 영화보다 드라마틱하다. 어린 시절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당숙과 당숙모 재산을 빼앗긴 체, 극심한 가난과 무시에 시달렸다. 에 그의 어머니는 복수에 불타올랐다. 그녀는 아들 밀라레빠에게 저주의 흑마술을 배워서 꼭 복수하라는 간청을 했고, 아들은 이를 실행하게 된다. 그는 당숙의 집과 마을을 우박 폭풍의 마법으로 황폐화시키고 35명의 인명을 살상해 버렸다.


엄청난 살상을 저지른 밀라레빠는 자신의 과보를 깨닫고 눈물을 흘린다. 스승 ‘마르빠’를 찾아간 그는 까르마(업)를 정화하기 위한 혹독한 고행을 거친 후, 본격적인 수행의 길에 들어선다. 훗날 밀라레빠는 아버지와 같던 스승 마르빠 곁을 떠나 히말라야 동굴에 은거하여 생사를 건 명상에 돌입한다.

밀라레빠는 동굴에 머물면서 명상 수행을 했는데, 너무나도 처절했다고 한다. 옷도 없어서 거의 알몸 상태였고, 먹거리를 구할 수 없자 쐐기풀을 대신 먹는 바람에 몸에서는 푸른빛을 띠었다고 한다. 어쩌다 산속에서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고 전한다.


오랜 수행의 결과, 밀라레빠는 최상승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각성한 그는 과거 인연들을 향한 용서와 참회 속에서 진리의 화신으로써 보살행을 펼쳤다. 라레빠는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가자 제자들에게 깨우침을 전한 후, 천신들의 호위를 받으며 마하 삼마디(대열반)에 들어갔다. 이상이 그에 대한 간략한 생애이다. 물론 종교적인 과장됨도 있을 것이나, 밀라레빠는 실존 인물이었으며 그의 구도와 깨달음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오늘날 티베트 불교에서 밀라레빠의 위상은 띨로빠, 나로빠, 마르빠로 이어지는 빛나는 법맥의 최고봉으로 추앙받는다. 또한 이 책은 스승과 제자의 인연에 대한 법열이기도 하다. 스승과 제자 간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이 티베트처럼 잘 유지되는 곳도 없으리라. 스승 마르빠와 제자 밀라레빠처럼 말이다.


책에서 나오는 ‘육체는 영혼의 동굴’이란 표현에 새삼 몸의 의미를 깨닫게 했다. 또한 수행과 기도, 그 자체가 중생제도라는 구절에는 마음의 밑줄. 기도는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지만, 세상을 지키는 맑은 기운을 준다는 뜻이다.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밀라레빠>를 읽으면서 열반하신 청화스님이 떠올랐다. 스님의 목숨을 건 수행담이나 겸손했던 삶. 열반 후 벌어진 이적 등이 밀라레빠와 닮았기 때문이다. 두 분 모두 사리가 증발했으며, 장례 기간 중 방광 현상과 허공에서 기적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금 내 책상에는 스님의 다비장에서 방광 했던 보랏빛 사진이 모셔져 있다.


히말라야 성자의 <밀라레빠>과 같은 영적 도서는 구도자에게는 등불이다. 특히 수행법에 대한 구체적인 기술은 귀한 지침이다. 다시 한번 밀라레빠의 <십만송>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성자가 노래한 <십만송>에는 어떤 시적 깨달음이 들어있을까? 내 비록 비루하고 갈 길 멀지만, 좋은 시절에 좋은 도반을 만나 <십만송>을 소리 내어 읽고 싶다. <밀라레빠>와 그가 노래한 <십만송>은 진리를 갈망하는 이들을 위한 손길이기 때문이다.

여기 마지막으로 밀라레빠 성자가 남긴 유언을 적어본다. “인생은 짧고 죽는 날은 불확실하다. 그러므로 명상 수행에 매진하여라.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는 데 힘쓰라.”ॐ मणि पद्मे 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