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의『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나서
블랙홀 같은 서사의 향연이었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이야기 속으로 무섭게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와 함께 했었던 시간은 엔도르핀으로 충만했으니, 그것은 읽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었다.
첫 문장부터 강렬했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머리 박고 죽었다니, 그것도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슬퍼야 하는 데 웃음부터 나온다. 이런 경우를 ‘웃프다’라고 하던가? 한데, 어디서 읽은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래 그랬다. 카뮈의 이방인의 첫 구절이었다.“오늘 어머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카뮈는 어머니 죽음으로, 정지아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 아버지와 그 딸이 펼치는 살풀이였다. 하지만 무겁고 음울하기보다 경쾌하다.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았던 아버지의 죽음과 사흘간의 장례식을 딸의 시선으로 담고 있었다. 딸은 그동안 몰랐던 아버지의 참 면모를 보게 된다. 그것은 생활력 없는 아버지, 시대와 불화였던 한 남자, 빨치산이라는 딱지에 갇혀야 했던 소박한 어느 사회주의자의 민낯이었다. 빨갱이, 사회주의, 유물론과 같은 무거운 이념에 가려졌던 아버지의 실체는 ‘그냥 사람’이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구례는 맑은 섬진강과 너른 지리산 자락에 둘러싸인 고장이다. 구례는 한국전쟁 전인 1948년부터 변고의 땅이었다. 한국전쟁이 발발 후에는 낮에는 국군과 경찰의 세상, 해가 저물면 밤손님이라 불렸던 빨치산들이 주인행세를 하던 고단한 땅이었다. 그 시절 구례는 마을 사람끼리 고발하고 죽여야 했던 동족상잔의 축소판이자, 이념에 의해 희생당한 가족사가 넘쳐나는 아수라의 세계였다.
좌익과 우익의 극한 대립을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는 인간다움으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아버지 고상욱이 자주 읊조렸던 “사람이 오죽하면 글겄냐.”라는 구수한 전라도 방언 속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담겨 있다. 이는 태극기와 촛불이라는 이념 갈등이 심각한 지금의 우리 사회에 필요한 말이다.
'티키타까'라는 말이 있다. 핑퐁 용어이자 스페인 명문 축구팀 전술을 일컬은 용어로써 구성원끼리 주고받는 아기자기한 플레이를 뜻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사연 많은 군상들이 펼치는‘티키타까’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 티키타까는 황 사장, 박한우 선생, 사촌오빠 길수, 사촌 언니들, 작은아버지, 윤학수, 박동식, 구례 떡집 언니, 이웃집 맏딸 영자, 오거리 슈퍼 소녀 등으로 이어지면서 윤기가 흐르는 찰진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발랄함은 이문구의 『우리 동네 사람들』과 닮았으니, 그것은 선한 이도, 악한 이도 없는 ‘그냥 인간’들이 펼치는 한판의 놀이였다.
작가는 빨치산의 삶을 마친 아버지를 두고 ‘해방’이라고 했다. 육신을 벗었으니 영혼의 입장에서 분명 해방임이 맞다. 그것은 사상범으로 겪었던 전기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마저 오락가락했던 아버지의 육신에게는 해방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해방은 비단 몸뚱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삶을 무게를 견뎌야 했던 영혼의 해방이자 이념의 굴레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정지아는 생소한 작가였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만나기 전까지는. 몇 해 전 얼핏 『빨치산의 딸』이란 작품명을 들었던 적은 있었다. 작가의 연표를 보니 나와 같은 65년 을사년 생이다. 동시대를 지냈다는 공감 때문인지 작품에 남다른 친밀감이 느껴졌다.
유신과 5공을 관통했던 우리 세대는 잘 알고 있다. 빨갱이가 얼마나 무서운 단어인 것을..., 그 시절 빨갱이 가족이라는 연좌제에 걸리면 경찰대나 사관학교 진학 물론이요, 좋은 직장을 얻기에도 물 건너간 이야기였다. 작품 속 사촌 오빠 수길이가 겪었듯이 말이다.
그때를 좀 더 추억해본다, 작가와 같은 65년생은 유신독재가 선포되던 해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어린 코흘리개 때부터는 가족까지도 의심하라는 간첩 식별법 교육받았고, 중학생 때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로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했다. 고등학교 때는 교련 교육을 받았고, 대학 시절에는 군부대 일주일 입소라는 특훈을 받았다. 빨갱이는 뿔 달린 괴물로 알았던 우리의 어린 시절. 그래서 빨치산 아버지에게 미안하다는 딸의 오열을 그 시대의 경험했던 우리 세대는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빨치산의 딸은 아버지의 생애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이 건조한 두 문장이야말로 아버지의 인생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딸에게 아버지는 그냥 인간이었고, 행복하고 싶었던 한 남자일 뿐이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삶의 희로애락을 마무리하고 본향으로 돌아간 아버지에게 바치는 딸의 헌사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삶으로부터 해방되는 때가 찾아올 것이니, 묵묵하게 하늘이 내려준 생의 일지를 담담히 써 내려가야 한다. 죽음 또한 삶의 한 부분이 아니겠는가? 다만 인생길에 마주친 벗들과 유쾌한 ‘티키타까’하면서 살아볼 일이다. 빨치산 고상욱 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