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나

김민기 다시 듣기 20

by 박신호

끝 끝없는 바람. 저 험한 산 위로 나뭇잎 사이, 불어 가는⋯, 자유의 바람. 저 언덕 너머 물결같이 춤추던 님⋯

무명, 무실, 무감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볼래, 지녀볼래⋯

물결 건너편에. 황혼에 젖은 산 끝보다도 아름다운 아, 나의 님 바람

뭇 느낌 없이 진행하는 시간 따라


하늘 위로 구름 따라. 무목(無目) 여행하는 그대⋯ 인생은 나, 인생은 나⋯


김민기의 <바람과 나>를 듣다 보면 조르바가 떠오른다. 더불어 미지의 지중해와 에게해, 작가 니코스 카잔차스키가 영면하고 있는 크레타섬까지. 그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거칠 것 없는 바람이 들어있다. 주인공 조르바는 작가의 분신일 터,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자유로움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나는 A형 성골이다. 뭐든 철저한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불안 지수가 증가한다. 그런 소심한 모습이 한심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거칠 것 없는 자유로운 영혼을 보게 되면 경외심이 들게 된다.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 방랑작가 류시화의 산문, 오지 탐험가 한비야의 기행문을 글을 즐기는 것도 그들에게서 풍기는 시원스러운 해방감 때문이다.

오래전 초기불교 경전 『수타니파타』에서 매력적인 한 구절을 만났다. “소리에 놀라지 않은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은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한동안 이 문장을 업무일지 속지에 적어놓고 자주 읽었다.‘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 같이’란 구절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가는 열쇠 같았다.


김민기 학전 대표의 삶도 바람을 닮았다. 세상이 부러워할 서울대 미대 69학번. 미술학도로 출발했지만 인생이란 바람은 그를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김민기는 캔버스보다는 통기타를 들고 다니면서 노래를 불렀다. 1972년에는 신입생 환영대회 때 불렀던 노래로 인하여 경찰서에 연행되었다. 그 후 김민기는 수차례의 연행과 고문에 시달리면서 어두운 바람 속으로 끌려갔다.

하지만 김민기의 노래는 약자들에게 퍼져나갔고 그의 노래들은 금지 목록에 올랐다. 대신 초등학교 후배였던 양희은의 목소리를 통하여 자신의 음악을 세상에 알렸다. 고난의 군 생활을 마친 김민기는 봉제공장 노동자, 보령에서의 광부, 민통선에서의 소작농 등을 전전하면서 북풍을 정면으로 맞닥트리는 나날을 보냈다.


1983년 겨울, 김민기를 이끌던 바람은 또다시 그를 서울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학전 극단의 탄생을 위하여 4장으로 된 <김민기> 앨범을 발표한다. 비로소 전설처럼 알려졌던 그의 음악이 일반 대중에게 민낯을 선보인 셈이었다.


학전 대표 김민기는 인기 뮤지컬 <지하철 1호선>과 아동극 등으로 명성이 높아졌고 후배들을 위한 든든한 언덕이 되어주었다. 오늘날 김민기의 등을 타고 출세한 문화계 인사들이 어디 한둘이랴. 특히 <지하철 1호선>은 문화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자신을 이끄는 바람에 따라 묵묵히 길을 걸었던 시대의 수행자였다.


<바람과 나>는 코리언 히피 한대수가 군전역한 김민기에게 건네준 곡이라고 한다. <행복의 나라>로 알려진 한대수는 목소리에서부터 자유로운 바람이 이는 가수이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로 <바람과 나>를 부르기도 했다. 훗날 김민기가 아끼던 김광석도 이 곡을 불렀다.

대학로 학전블루에는 김광석의 부조상이 있다. 늘 꽃다발이 놓여있는 그의 부조상은 기타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김광석은 김민기가 기획한 <노래를 찾는 사람들 1, 2집>에 참여했다. 특히 포크 그룹 <동물원 1>에 노래한 <거리에서>가 널리 알려졌다. 아마도 8090 청춘이라면 김광석의 음악에 대한 추억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이제 김광석의 죽음에 대한 후문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지만, 그가 남긴 노래들은 지금도 답답한 가슴을 바람처럼 맑게 해주고 있다. 김민기 대표의 투병과 재정난에 폐관을 앞둔 학전에서는 지금도 김광석 따라 부르기 경연대회가 열리고 있다. 김민기와 김광석 노래는 공통적으로 짙은 우수가 있다. 이들은 음악은 잔잔한 감동과 사색의 시간을 선물한다.


김광석의 <일어나>라는 인기곡처럼 김민기 대표도 극단 학전도 다시 일어나기를 팬들은 바라고 있다. K팝 대세 속에서 이름 모를 어린 가수들이 세계를 대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빌보드 싱글차트 1위 소식도 놀랍지 않은 현실이지만, 우리의 삶과 노래 사이의 간극은 커지고 있다. 아이돌의 현란한 춤사위는 볼만 하지만 허한 마음을 추슬러 주는 힘은 전혀 없기 때문이.



쏟아지는 세파는 행복보다는 근심과 불안을 던져준다. 그러면서 어차피 ‘다 지나갈 일’이라는 위로에 기대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시름에 젖게 된다. 그런 날에는 <바람과 나>를 따라 부르면서 한대수와 김민기 그리고 별이 된 김광석에게 위로를 얻고 싶다.


바람과 같았던 조르바. 언젠가 인연이 허락된다면 크레타섬에 가보련다. 에게해의 미풍보다는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묘비명을 직접 보고 까닭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 아마도 그곳에 서면 자유로운 영혼이 남긴 말이 바람에 실려 들려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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