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어두컴컴한 길을 걸어가 보세 흠...구둣방 할아버지 벌써 일어나 일판 벌려 놓았네 흠...밤새 하늘에선 별들이 잔치 벌였나. 어느 초라한 길목엔 버려진 달빛 고였나
희뿌연 바람이 해진 옷새로 스며들어 오는데 흠...해말 간 새벽길 맨발로 걸어가 봐도 좋겠네 흠...두부장수 종소리 깔린 어둠을 몰아가듯 울리네 흠...밤새 하늘에선 별들이 잔치 벌였나. 어느 초라한 길목엔 버려진 달빛 고였나
희뿌연 바람이 해진 옷새로 스며들어 오는데 흠...
김민기의 <새벽길>이란 노래다. <아침이슬>이나 <상록수>는 국민가요로 자리매김했지만, <새벽길>과 같은 곡은 낯설 것이다. 하지만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이라면 한 번쯤 들었을 노랫가락일 수도 있다.
노래의 한 구절을 보자. “어느 초라한 길목엔 버려진 달빛 고였나” 길에 달빛이 고여있다니, 수려한 노랫말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김민기의 노랫말은 한 편의 수필이다. 문학성과 일상성이 듣는 이를 사유의 세계로 끌고 간다.
<새벽길>에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정경이 그려져 있다. 새벽부터 구두 수선 장사를 준비하는 할아버지와 두부 장수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허름한 옷차림에 파고드는 새벽 기운을 안고 생활 전선에 나선 서민들이다. 생각해보니 학교를 안 다니던 어린 시절, 이른 아침에 “두부 사~려”란 외침과 종소리가 들리면 아버지 심부름으로 따끈한 콩물이 담긴 병을 받아오던 기억이 있다.
현재 관악캠퍼스가 아닌 예전의 서울대는 사대문 안에 있었다.당시 서울대 정문 근처에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구두 수리점이 있었다고 한다. 서울대 71학번인 김민기는 등하굣길에 그 구두방의 할아버지를 자주 보았다던 것 같다. 사찰 인근에 사하촌이 있듯, 대학교 정문이나 후문 쪽에는 학생을 상대로 하는 상가들이 많이 있는 법이다.
내가 다니던 대학가도 그러했다. 그 시절의 상점들이 떠오른다. 아침 일찍 문을 열던 복사집 할머니. 우리의 아지트였던 해태식당. 학과 행사 때마다 막걸리와 두부를 배달하던 청개구리 아저씨. 어두운 공간에 피어나던 담배 연기와 DJ가 선곡한 음악이 흐르던 음악다방. 그곳에서 달걀을 푼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들었던 지긋지긋한 스콜피온스의 <still loving you>. 고향 친구가 숙식을 제공받으면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카페 ‘일곱 송이 수선화’도 있었다.
그 무렵,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특이한 분을 생각해 본다. 교내 서점에서 일하시던 은테 안경을 쓰신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그 할아버지는 내가 대학교 4학년이었던 당시 서점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무표정이었고 구부정한 몸으로 서점을 부지런히 청소하거나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구내식당에서 식사할 때는 쫓기듯 밥을 먹는 모습이 특이했었다. 서점을 자주 들렸지만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없다.
훗날 알게 되었는데 할아버지는 비전향장기수였다. 노무현 정부 때였나? 이인모라는비전향 장기수가 정부의 허가로 판문점을 거쳐서 북으로 갔다. 그는 북에서 가족을 만났고 인민 영웅으로 대접받았다고 한다. 구내 서점 할아버지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북의 가족을 만났을까? 지금도 살아 계실까? 말없이 서점 매대에 책을 정리하던 구부정한 뒷모습이 선하다.
2학기 중간고사 때였다. 마지막 날 시험 과목이 교양과목 법학이었다. 국문학도에게 법학은 미적분처럼 난해했다. 나는 학번은 같지만 나이는 한 살 많았던 형에게 그의 자취방에서 법학을 스터디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그날밤 풍향동 허름한 방에서 라면에 밥을 말아서 먹었고, 담배를 피운 다음, 책을 펼쳤다. 그때 시험이 끝난 두 동기 녀석들이해태 타이거스 10연승을 축하하자며 찾아왔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우린 내일 시험이라며 음주가 어렵다고 했지만 그들은 고작 한 과목이 아니냐며, 딱 한잔만 하자고 유혹했다. 그 불청객들은 두 시간 가량 잔을 기울더니 시험 잘보라는 말과 함께 일어났다. 문제는 그들이 나간 후에도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공부 전략을 변경하기로 했다. 차라리 새벽에 일어나 대학 도서관에 가기로 말이다.
요란한 시계 알람음에 놀라서 눈을 떠보니 새벽 3시 30분이었다. 서너 시간 잠을 잤나 보다. 부리나케 찬물에 세수를 하고서 가을이 무르익고 있는 거리를 나섰다.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형의 애마, 삼천리 자전거에 올랐다. 우리를 태운 자전거는 자전차가 되어 어둠이 싸인 새벽을 가르며 도로를 질주했다. 도로에는 차의 불빛이 드문드문했다. 그렇게 도서관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네시 반, 환한 불빛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열람실에는 이미 몇몇이 책을 보고 있었다. 법학 시험 시간은 오전 9시이니 다섯 시간이 남아 있었다. 새벽 기운 탓이었는지 정신은 맑았다. 신통하게 졸음이 찾아오지 않았다. 조금씩 어려운 법학 용어들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느새 날은 밝아왔고, 열람실에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그날 법학 시험의 학점은 A+. 완벽한 마무리였다. 이 모두가 신통한 새벽의 기운 덕분이었다.
동양철학에서는 새벽 세 시부터 양의 기운이 시작된다고 한다. 큰 사찰이 그 시간에 도량석을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가톨릭 수도원도 새벽 5시가 되면 ‘주님께서 부르신다’며 무릎을 꿇고 찬양을 시작한다. 엷어져 가는 동녘 하늘에서 빛이 잉태하는 새벽은 영적인 시. 공이다. 뿐이랴. 예술가에게도 새벽은 창작의 근원인 경우가 많다. 가령 무라까미 하루키의 새벽 네 시 기상은 얼마나 유명하던가. 어찌 보면 하루키의 감각적인 문체는 새벽의 은총인 셈이다.
나도 새벽에 일어나서 차를 마시고, 기도 올리고, 잔잔한 음악 속에서 글을 쓰고 싶다. 뭐 그렇다고 하루키처럼 되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그저 어둠이 투명한 빛의 세계로 변하는 그 순간에 잠기고 싶을 뿐이다. 머잖아 생활의 전선에서 전역을 하면 그러한 새벽을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그럴 때 김민기의 <새벽길>을 들어본다면 금상첨화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