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록 수

김민기 다시 듣기15

by 박신호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치른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


우리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오래전 영상의 한 장면을 본다. 화면에는 흰색 와이셔츠 차림의 중년 남성이 통기타를 들고 의자에 앉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잘 부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색한 표정으로 진심을 꾹꾹 담아 노래한다. 잠시 후 화면에는 “두 번 생각하면 노무현이 보입니다.”라는 문자가 나타난다. 영상 속에 흐르고 있는 노래는 김민기의 <상록수>이다.

다들 눈치를 채겠지만 노래하는 이 남자는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이다. <상록수>는 노무현을 상징하는 노래다. 우리 정치사에 가장 극적인 인물 노무현. 그의 풍기는 외모나 고난의 정치 궤적은 백범 김구를 연상시킨다. 대통령 퇴임 후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던 비극적인 종말. 지금도 5월 장미가 만발할 때면 노무현 자살이라는 비보를 접했던 토요일 아침이 떠오른다.


나의 정치 성향은 회색이다. 태극기 부대로 상징되는 극우 세력을 혐오한다. 진보세력도 신뢰하지 않는다. 보수는 기득권에 집착하는 카르텔 패거리이고, 진보는 위선과 정파 싸움으로 지지층의 기대를 배반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투표날 찍을 사람이 없어서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요즘 존경하는 대통령을 설문조사하면 노무현은 늘 1, 2 등을 다툰다. 이런 결과를 볼 때면 화가 난다. 나는 잊지 않고 있다. 대통령 노무현을 조롱하고 난도질했던 정치인들과 여론, 그리고 시민단체들과 노조 그리고 진보언론 매체들. 당시 보수언론보다 더 비열하게 노무현을 공격하던 진보적인 언론사가 기억난다. 가롯유다 같은 그들이 지금 와서는 걸핏하면 그리움이란 민망한 말로 노무현 소환한다.

그래서 회색분자가 되기로 했다. 어두운 밤바다에 오징어가 잡히는 것은 반짝이는 배의 불빛 때문이다. 빛을 보고 환호하는 오징어와 같았던 나의 청춘. 이념에 매몰된 불빛에게 속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아무튼 <상록수>를 들을 때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바보 노무현과 위선자들, 그리고 희망이 사라져 가는 이 땅의 현실 때문에.


<상록수>는 1970년대 대중음악의 명곡이다. 존 바에즈가 노래한 <우리 승리하리라>와도 비견된다. 1978년 양희은의 앨범에 이 곡이 처음 수록되었을 당시 곡명은 <거칠은 들판의 푸르른 솔잎처럼>이었다. 김민기의 많은 노래들의 운명처럼 <상록수> 역시나 금지곡으로 묶었다가 1987년 민주화의 물결 속에서 해금이 되었다. <거칠은 들판의 푸르른 솔잎처럼>은 1993에 발매한 김민기의 컴필레이션 음반에서 <상록수>로 개명하게 되었다.

<상록수>의 탄생에는 두 가지 서사적 비화가 있다. 김민기는 군 제대 후 공장 노동자로 일한 경험이 있다. 이때 <상록수>는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 축가로 만들어졌다. 또 다른 비화는 1978년 광주에서 있었다. 그해 12월 광주지역에서 노동 및 야학 운동을 했던 전남대 출신 지역운동가 박기순이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했다. 그와 알고 지냈던 김민기는 부랴부랴 광주에 내려갔고 그의 영결식장에서 <상록수>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영결식장에서 많은 이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을 떨궜다고 전한다.


결혼과 죽음의 현장에서 불렸던 <상록수>. 창작의 순간부터 평범한 운명을 지닌 노래는 아닌 셈이었다. <상록수>는 단순한 노래가 아닌 메시지 전달이 극대화된 곡이다. 장엄한 선율이 마음에 비장함과 용기를 불어 놓어준다. <상록수>는 IMF 국가 외환 당시 거리에서 자주 들을 수 있던 국민 희망가였다. 골프선수 박세리가 양말을 벗어던지고 샷을 날리던 공익광고 장면은 유명하다.


일흔이 넘은 김민기 대표암투병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그의 분신인 극단 <학전>도 폐관을 앞에 두고 있단다. 대중음악의 산실이요, 대학로 소극장 공연의 시발점이었던 학전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생각이 많아진다. 4,500회의 최장 공연의 기록을 자랑하는 <지하철 1호선>, 연일 매진이었던 <김광석 다시 부르기>, 어린이극 <개똥이>등 숱한 이 시대의 문화의 자양분이 김민기와 극단 학전에서 탄생했다.

어제는 학전을 살리기 위한 ‘again 학전’에 대한 기사가 주요 일간지에 나와 있었다. 내용 가운데 눈길을 끈것은 “폐관도 학전답게”라고 말하던 영화배우 방은진의 인터뷰였다. 학전을 연명시키기 위한 국가 지원이나 기업 후원은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자부심과 굳건함이 묻어있다. 역시 김민기의 등을 타고 세상에 나간 이들은 남달랐다.


이제 <상록수>는 김민기와 극단 학전을 위하여 불러야 때인 것같. 앨범 계약금으로 학전을 열었고, 재정난에 집을 담보 잡혀가면서까지 우리 시대의 문화 공간을 지켜냈던 김민기.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라는 노래의 마지막 소절처럼 어려움을 이겨내기를 염원한다. 다시 한번 “학전답게‘란 말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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