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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Oct 07. 2021

류시화를 찾아서

#1 

 찜질방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 ‘서울역 입구’ 근처 봉천동 찜질방. 새벽녘 이곳 군상(群像)들의 잠자는 모습들은 괴기스럽다. ‘뿡뿡’ 방귀를 트는 사람들, 이빨을 갈면서 중얼대는 초로(初老)의 남성, 낮은 목소리로 어둠 속에서 끝없이 통화를 하는 여인. 겨우 잠이 든 얼굴들도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흐릿한 불빛마저 고단하다.      


 밤새 음침한 땀내 속을 몽유병 환자처럼 헤매다가 찜질방에서 나왔다. 아침 일찍 강남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빵과 커피로 공복을 달래고 순천으로 가는 버스에 승차했다. 5월의 연휴가 시작되는 맑은 날이다. 남녘으로 향하는 버스는 만석(滿席)이었다.     


 하늘의 도리를 따른다’는 뜻이 들어있는 순천(順天). 해방 후, 그곳은 ‘여순사건’으로 역도(逆徒)의 땅으로낙인 찍혀 남쪽 단독정부로부터 진압이 아닌 토벌(討伐)의 본보기가 되었다. 그 후 오랫동안 순천(順天)은 역천(逆天)의 한으로 내상 깊었다.      


 5월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순천에서 ‘류시화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있었다. 작년 개인적인 변고 가운데 읽었던 류시화 작가의 글은 숨넘어가던 내 영혼을 위로해 주었다. 그의 숱한 인도 방랑과 명상 체험 그리고 자유로운 삶은 경이로웠다. 군더더기 없는 그의 문장과 문체도 내 글쓰기가 도달해야 하는 종점이었다.     

 

#2

  서울에서 순천까지는 대략 네 시간 정도 소요된다. 연휴 첫날 탓인지, 도로에 가득 늘어선 차량 행렬이 마치 명절날을 방불케 하였다. 라디오에서도 고속도로 운행 시간이 평소보다 두 시간은 더 걸린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비록 가는 길이 지루할지라도 류시화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설래임에 밀려오는 졸음도 포근했다.     


 거북이 마냥 겨우겨우 움직이던 버스가 드디어 서울을 벗어났다. 승객들 사이에서 “~, 이를 어쩌지하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때 노인 한 분이 창백한 얼굴로 자신의 건강 상태로는 여섯 시간 탑승을 감당할 수 없다며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버스 기사에게 황당한 요구를 하고 있었다. 어이없어하는 승객들과 달리, 기사는 운전 중임에도 차분하게 몇 차례 전화 연락하더니, 기흥휴게소에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노인을 내려 드렸다. 그곳 휴게소에는 어느새 119구급차가 와 있었다.  

    


  버스는 정체된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국도를 한참이나 달렸다. 가까스로 도착한 휴게소에도 차량과 인파들은 가득 차 있었다. 쫓기듯 김밥 한 줄을 급히 먹고 버스에 올랐다. 순천에 도착할 예정 시간은 가까워지는 데도, 우리 버스가 달려야 할 거리는 멀기만 했다. 12시 15분 도착 예정이었는데 지체된 탓에 14시 55분으로 바뀌었다. 지친 승객들의 탄식은 점점 길고 잦아졌다. 내 옆자리 승객은 지인(知人) 결혼식이 이미 끝났겠다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정말이지 순천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지루했다.     


 창밖 햇살도 지쳐가고, 내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난다. 순천 중앙시장에서 국밥을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서서히 가까워지는 순천 방면 하늘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버스가 순천에 도착했다. 든든한 국밥 한 그릇을 그토록 상상했건만, 하차와 더불어 행사장으로 부리나케 달려가야만 했다. 겨우 도착한 순천 문화의 거리 ‘연경서점’. 다행히 ‘류시화 작가와 만남’은 진행 중이었다. 제법 많은 독자들이 전선에 앉아있는 참새들처럼 작가의 책을 품에 안은 체, 알현(謁見)을 기다리고 있었다.    

  

#3

 작가와 대면하기 위해 기다리는 줄을 포기한 체, 그냥 좁은 서점으로 들어갔다. 검은 옷과 검은 썬글라스의 류시화 작가가 책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 그는 독자마다 소중한 벗을 대하듯 이야기를 정성껏 들어주고 답해주고 있었다. 작가의 목소리는 그의 문체처럼 군더더기 없이 묵직하고 편안한 베이스 톤이었다.      


 한동안 독자들에게 사인하고 있던 작가가 일어나더니 “내가 여유시간이 많아서 자유로운 것이 아닙니다. 아휴~ 제가 페이스북에만 글을 일주일에 세 번 올리잖아요. 새벽 내, 잠 못 이루고 몸부림하는 거죠.”라면서 글쓰기의 고통에 대하여 말하면서 자신은 신출귀몰하는 자유로운 영혼이 아니라고 애써 강조했다. 더이상 버티기 힘들 때면 과감하게 도망을 가야지요. 뭐랄까 도피인 셈인데. 그 힘으로 살아가죠. 하하하     


 ..대기 번호가 어떻게 되세요.” 어느 여성이 나를 새치기한 인간으로 의심하는 표정으로 묻는다. ? 번호표요. , 그런 거 없는데요.”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그 여성은 그럼 이 번호표를 받으시고, 뒤로 가셔야 해요.”라고 말했다. 번호표를 손에 들고 잠시 갈등했다. 여섯 시간이 넘도록 서울에서 왔노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쯤 되자 류시화 작가 말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로 결심했다. 작가와 조금씩 가까워지던 대기 줄을 등 뒤로 하고 연기처럼 나왔다.     


#4 

늦은 오후, 순천 시내를 걸었다. 허무했던 발걸음이 차츰 바람 탄 열자(列子)처럼 가벼워졌다. 아우성 가득한 허기를 달래야 했다. 드디어 중앙시장에서 국밥을 튼실하게 먹은 후, 순천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의자에 앉아서 광주(光州)행 버스를 기다리면서 눈을 감는다.      


 어둠 속에서 류시화 작가와 버스 기사가 겹쳐 보인다. 힘들어하던 노인을 자상하게 달래주던 기사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그렇구나. 버스 기사가 보살이었네.’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는데 마음이 번쩍 환해진다. 화두(話頭) 하나 건졌다. 버스는 역광을 가득 싣고서 순천을 벗어나 광주로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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