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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Oct 16. 2021

택 . 배. 풍. 경

#1

왜 샀어택배가 더 싸구만~.” 아내가 잔소리를 한다. 친구가 운영하는 마트에서 포장 김을 사 왔다고 이러는 거다. 반사적으로 툭 한마디 하려다, 그냥 못 들은 척한다. 이럴 때 무반응은 가정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오늘 낮에 마트를 운영하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소리는 무거웠다. 그냥 안부 전화했다면서 이래저래 힘든 상황을 말한다. 코로나 시작 이후부터 매출이 쭉쭉 빠졌단다. 정부는 자영업자를 위한 정책을 발표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 마치 ‘독박’ 뒤집어 쓴 기분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는 인건비 부담으로 인력도 줄였다고 한다. 퇴근 후에 친구의 마트를 찾아갔다. 매장 안은 썰렁했는데 불빛은 처연하게 밝았다.   

  

다들 택배로 주문하니 장사가 되겠니? ”라며 친구는 인건비도 부담이지만, 총알과 로켓으로 무장한 택배한테 배겨날 재간이 없단다. 그나마 라면, 담배, 막걸리는 꾸준하게 팔린다고 희미하게 웃는다. 친구와 이야기하는 사이에 하얀 마스크를 쓴 백발의 손님들 몇몇이 오간다. 택배 주문도 낯설거니와 발품 팔아 물건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날로그 세대이다.     

#2

 늦은 밤 귀갓길. 운전에 부쩍 신경이 쓰인다. 작년부터 운전할 때면 초보 운전자처럼 긴장한다. 코로나 시대에 배달 오토바이 사고는 흔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뛰어들고, 파고들고, 덤벼드는 오토바이를 보면 화가 나지만, 어려운 시대를 견뎌내겠다는 그들의 절실함에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가는 오토바이 택배 운전자의 평온한 일상과 안전을 화살기도로 빌어본다.   


“24시간 언제나 30분 이내로 배달이 가능하다.”라고 말하는 배달 광고는 놀랍다 못해 괴기스럽다.  한국은 놀라워요늦은 밤에도 음식을 갖다줘요 관광 온 외국인들은 우리의 야식 배달문화에 경악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어둠이 내리면 배달이 없다는 그들의 나라가 오히려 부럽다. 스코트랜드의 제임스 밀은 배고픈 소크라테스와 배부른 돼지를 비교하면서 진정한 행복을 말했다. 과연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한가? 

    

 아파트에 들어와서 주차할 장소를 찾는다. 고작 저녁 10시인데 주차할 곳이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빈 자리를 찾아서 돌고 있는데, 택배차 한 대가 뒤 짐칸까지 열어놓고 주차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늦은 저녁인데 아직까지 일을 하나그렇지 추석이 다가오니 바쁘겠구나.’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최근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를 떠올려본다. 그때 택배 기사가 잰걸음으로 뛰어오더니 급히 차를 몰고 나간다. 택배차가 서둘러 떠난 그 공간으로 차분하게 주차한다. 그 택배 기사는 오늘 하루 일을 다 끝냈을까? 야무지게 여섯 시에 퇴근했던 나는 문득 그에게 미안해진다.     


 아파트 경비실로 걸어간다. 오늘도 경비아저씨는 쌓인 쓰레기를 정리하시는지 경비실에 안 계신다. 역시나 그는 주민들이 내다 버린 잔해물을 정리하고 계신다. 안녕하세요경비실에 제 책을 두었다고 택배 연락이 와서요”, “그래요갑시다요즘 추석이 다가오니 택배 상자가 넘쳐나네요.”라며 경비아저씨는 흐르는 땀을 손으로 훔친다. 한쪽 공간에는 그의 손을 기다리는 하얀 스티로폼 상자들이 장작개비들처럼 어지럽게 쌓여있다.     

#3

 현관 앞에 터진 종이상자와 비닐이 놓여있다. 오늘 우리 집에 배달되었던 택배 부산물일 것이다. 들어오기 전에 이것들을 쓰레기장에 버려달라는 아내의 주문이다. 낮에 좀 버리지..’라며 아내가 부여한 업무를 쿨~하니 무시하고 문 열고 들어간다. 현관 신발장 앞에 사과 한 상자가 터진 입을 벌리고 있다. 곧 추석이라고 어느 지인이 보낸 것이다. 그 옆에는 개봉을 기다리는 비닐로 포장된 작은 택배물도 놓여있다.   

  

 현관에 있는 비닐 택배는 누구거냐?” 내 음성에는 짜증이 배어난다. 아빠 내꺼야속 옷..”딸이 심드렁하니 말한다. 속옷도 택배로 주문하니?”라고 묻는다. *이 얼마나 빠르다고~, 로켓이잖아” 로켓 배송이란 택배는 물건을 주문하면 다음 날 도착한다고 한다. 실로 로켓 배송은 총알 배송보다 더 어마무시한 배달인 것 같다. 이제 우리 집은 총알과 로켓이 매일 오가는 참호가 된 모양이다.  

   

 오늘 당근마켓에서 게임기 팔았다원금 거의 건졌어아들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한다. 몇 달 전, 게임기 샀다는 아들을 꾸중했던 기억이 난다.택배로 보냈니?”라고 물어보니 아니란다. 직접 만나서 당사자에게 물건을 주고 돈을 받았단다. 택배가 아닌 직접 만나서 거래했다는 별거 아닌 이야기가 이상하게 포근하다.   

  

#4

 옷을 정리하고 핸드폰을 보니 반가운 문자가 들어와 있다.선생님 잘 지내시죠추석 잘 보내세요?’이십 년 전에 졸업한 민주의 안부 문자다. 민주는 신랑과 안경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늦은 저녁이지만 반가움에 연락을 한다. "민주야잘살고 있니아이는 몇 학년신랑도 잘 지내고?”,“선생님호호호 잘 지내시죠건강하세요얼마 전안경 가게는 닫았어요신랑은 택배 기사 일 시작했어요.     


 남편이 택배 일을 시작했다는 제자의 말에 호흡이 멈칫해진다. 부디, 민주와 그녀의 남편이 어려운 시대를 잘 견뎌서, 평온한 일상을 가꿀 수 있기를 바래 본다. 그동안 숨 가쁘게 초인종을 누르던 택배 기사들에게 물 한잔이라도 건네야겠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이들의 분주함 덕에 우리는 일상에서 숨을 고르게 조율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소망한다. 총알, 로켓과 같은 무자비한 소비가 아닌,  slow buying 소비의 세상을~. 그리고 마트 장사가 잘 된다며 환하게 웃고있는 친구의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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