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사찰 송광사 대웅전에는 강렬한 벽화 한 폭이 있다. 그 벽화는 ‘혜가단비(慧可斷臂)’라불리는 불화인데 배움에 대한 절실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하얀 눈이 내리는 조계산 동굴 앞에서 청년 혜가는 서역에서 온 달마에게 배움을 청하며, 그 결의로 자신의 팔을 잘라 버린다. 그 팔에서 뿜어져 나온 선혈이 하얀 눈을 붉게 적신다.
혜가의 청을 계속 외면한 채, 동굴에서 좌선하던 달마가 드디어 고개를 돌리고 핏물 떨어지는 혜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장차 선불교의 법맥을 잇게 될 제자 혜가의 등장을 바라보는 달마의 눈빛이 형형(炯炯)하다.
'혜가단비’란 불화는 논문 준비로 마음이 쫓기던 무렵에 만났다. 스승 달마에게 진리를 배우고자 자신의 팔을 싹둑 자른 혜가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무서울 지경이다. ‘혜가단비’는 당시 어설픈 논문 준비로 바쁜 척, 얄팍하게 배움을 대하던 나에게 내려진 죽비였다.
#2
배움이란 진리를 찾는 구도의 마음이다. 배움은 학생 정신에서 비롯한다고 순천에 계시는 관옥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다. 무식(無識)과 무학(無學) 그리고 무지(無知)는 서로 닮은 듯하지만 다르다. ‘무학’이 배움의 양적 빈곤을 의미한다면, ‘무식’은 배움의 질적 빈곤을 뜻한다. ‘무학’은 배움을 익혀야 할 때, 타고난 열악한 환경 탓으로 그 기회를 놓쳐 버린 결과이니 숙명에 가깝다.
‘무식’은 ‘무지’와 닮은 꼴이다. 이는 지식의 빈곤이라기보다는 아집(我執)에서 비롯한 가난한 마음을 가르킨다. 배움이 닿고자 하는 최종 목적을 지혜라고 할 때, 무식은 무학보다 더 큰 재앙이다.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유학마저 다녀왔지만 ‘무식’한 이들을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문득 하버드대학 로스쿨 석사 출신으로서 걸핏하면 고발 잘하기로 소문난 어느 유명 변호사가 떠오른다. (그는 이 글을 보고 나를 고발할지 모른다.)
한편 비록 ‘무학’이지만 고결한 인품의 향기를 주위에 퍼트리는 이도 있다. 작고한 권정생 작가의 불우한 생애는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들 아는 이야기다. 권 작가는 버림받았던 어린 시절과 질병의 고통 속에서 교회 종지기를 평생의 업으로 살았다. 그는 약봉지와 책더미 틈으로 드나드는 쥐를 벗 삼으며 동화를 쓰셨다. 그리고 ‘몽실언니’, ‘강아지 똥’ 등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었고, 지금은 어린 왕자처럼 밤하늘 별이 되었다.
#3
흔히 세상 사람들은 학력만으로 배움의 경지를 판단하곤 한다. 그러나 배움의 성숙을 곁에 드러난 이력만으로 판단하는 그 자체가 무식한 행위이다. 하지만 무식와 무지를 지혜에 이르게 하는 것도 결국은 배움의 몫이다.
오늘날 배움은 불한당(不汗黨)이 되었다. 어떠한 지식도 손가락 몇 번 까닥하면 핸드폰이 모두 알려 주는 시대이다. 불경(佛經)을 얻고자 목숨을 걸고 구법(求法)의 길을 떠났던 구법승들의 절실함을 인스턴트 배움은 도무지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밀란 쿤델라의 소설 제목을 빌리자면 비틀어 본다. ‘참을 수 없는 배움의 가벼움’라고
#4
배움의 은총은 겸손한 자의 몫이다. 당나라 시절 남은선사(南隱禪師)에게 배움을 청하는 한 관리가 찾아왔다. 선사는 그에게 차(茶)를 권하면서 찻물을 잔에 따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빈 잔 가득 찻물을 넘치도록 따르자‘잔에 물이 넘치는 것이 보이지 않냐’며 놀라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대는 바로 이 잔처럼 머릿속에 자신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구려. 먼저 자신을 비운 후 배움을 청하시구려”라고. 겸손한 자에게만 배움은 응답하는 법이다.
아상(我相) 즉 에고(ego)로 가득한 이에게 배움이란 신기루와 같다. 우리 주위에는 사교나 과시 수단으로 배움을 이용하는 이들을 볼 수 있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하여, 에고의 만족을 위하여, 배움을 희롱하고, 세상에 아부하는 곡학아세(曲學阿世) 하는 자들이다. 겸손하지 못한 배움은 세상에 미치는 해악이 커서 하늘도 용서하지 않는다고 했다.
#5
참된 배움 자리에 도달한 이는 행동과 외양에서 그 덕성이 저절로 드러난다. 이를 두고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하던가. 배움이 잘 숙성된 자의 삶은 맑고 고결하다.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을 집필한 스토아 철인이다. 그는 선왕이자 양부였던 안토니우스 피우스 선황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존중해서, 친구들에게 자기와 함께 식사를 하거나 여행을 하는 것을 강요하지 않았고, 그들이 다른 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경우에도 그들을 늘 이전처럼 대하였다. 회의가 있을 때에는 인내심을 가지고 모든 안건을 꼼꼼하고 세심하게 살폈고, 처음에 보고를 듣고 마음에 들었다고 해서 꼼꼼하게 따져보는 것을 생략하는 법이 없었다. 친구를 대할 때는 늘 한결같아서, 친구들에게 싫증을 내거나 친구들에게 푹 빠지는 일이 없었다. 모든 것에 자족했고 늘 밝았다. 멀리 내다보고 아무리 작은 일도 미리 계획을 세웠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야단법석을 떨지는 않았다." <명상록 제1권:16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후견인이었던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의 인품은 이토록 고결했다. 천하를 주무를 수 있건만 방종하지 않고, 자신의 감각과 사고를 통제할 수 있었던 힘은 오직 배움에서 나온다. 안토니우스 피우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두 황제는 로마의 오현제로서 선정으로 제국을 이끌었다. 학생 정신과 겸손으로 배움을 숙성시킨 이들의 품은 이렇게 넓고 아늑하다. 후세 역사가들은 이때를 ‘팍스로마나’, 로마가 이끈 평화의 시대라고 정의한다.
#6
요즘 여러 매체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갑론을박이 무성하다. 무식한 자가 분수를 모르고 세상을 경영하겠다고 나서면 안 될 일이다. 우리도 성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바르게 걸어온 사람이 누군지 유심히 살펴야 하는 시간이다. 결코 배움이 무식와 무지에게 패배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던 소크라테스의 말을 상기하기를 권한다. 어쩌면 자신의 무식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지혜요, 배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