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 생각을 걷다1
당신은 홀로 바다에 있습니다. 푸른빛마저 지쳐버린 심해는 어둑시니와 같습니다. 세상에서는 당신을 이 땅의 막내라고 부릅니다. 그 애틋함으로 당신은 숱한 찬사를 받지만, 검푸른 대양이 주는 절대고독을 알지 못하는 육지 사람들의 허망한 말일 뿐입니다. 당신은 지금껏 검푸른 바다의 광활한 물결에 있었지만, 뭐든 구별 짓기 좋아하는 인간들은 당신을 국토의 막내라고 호명합니다. 당신은 모를 일이겠죠.
모두들 당신을 ’독도‘라고 부릅니다. ‘독(獨), 도(島)’ 외로운 섬이란 뜻이죠. 다른 해석도 있답니다. 당신에게 큰형 같은 ’울릉도‘에는 예로부터 전라도 사람들이 많이 살았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은 돌맹이를 ‘독’이라고 발음합니다. 그래서 당신을 돌섬 즉 ‘독도’라고 불렸다는 겁니다. 그럴듯합니다. 당신은 ‘홀로 있는 섬’입니까? 아니면 ‘돌로 된 섬’입니까? 쓸데없는 ‘언어유희’란 생각도 들지만, 호칭은 존재감을 부여하기에 의미 있는 분별력입니다. ‘돌로 된 섬’이란 의미는 화학 기호처럼 건조합니다. ‘홀로 있는 섬’이란 뜻이 당신에게 정당합니다. 여기에 방점을 찍겠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인들도 당신에게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알고 계셨나요? 그들은 당신을 ‘죽도(竹島)’라 표기하고, ‘다케시마’라 부른다고 합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화두 같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오직 당신일 뿐인데, 육지 것들은 자신에 입장에 따라 ‘독도(獨島)’ 혹은 ‘죽도(竹島)’라고 부릅니다. 대나무 하나 없는 당신에게 ‘죽도(竹島)’란 명칭은 참 별스럽습니다. 당신에 대한 애정보다는 소유하고픈 못된 욕망이 보입니다. 이제 당신의 호칭에 대한 부질없는 논쟁은 그만하겠습니다.
어릴 때, 당신에 대한 노래를 자주 들었습니다. 특히 체육대회에서는 응원가로 많이 불렀습니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경상북도 울릉군 남면도동일번지 동경 백 삼십이도...그 누구가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 이 노래 덕분에 당신을 모르는 이들은 거의 없답니다. 단체 활동 때마다 ‘독도는 우리 땅’이란 이 노래를 자주 부른 탓인지 지금도 노랫말이 환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노래를 불렀고, 하나가 되는 단결력까지 얻었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또다른 노래도 있습니다.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당신을 닮은 하ᆞ간돌이라는 분이 만든 노래인데 ‘홀로 아리랑’이라고 합니다. 당신을 ‘동해바다 외로운 섬’이라고 했는데 저는 이 부분이 좋았습니다. 이 노래를 만든 분을 순천 바닷가에 있는 어느 대안학교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허세도 과장도 없는 하얀 미소와 백발이 환하게 보였는데 당신만큼이나 맑고 외롭게 보였습니다. 이 곡은 내 삶의 여정에 어두운 구름이 머물 때면 낮은 목소리로 위로를 해줄 것 같습니다.
당신을 자꾸 ‘외로운 존재’라고 말하는 것에 오해 없기 바랍니다. 내가 말하는 외로움이란 맑음에 가깝습니다. 유유상종, 끼리끼리와는 거리가 먼, 홀로 존재함에서 오는 영혼의 넉넉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가끔 혼자서 밥을 먹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에게는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고요한 외로움은 편안합니다. 외롭지 않은 것들이 세상을 늘 복잡하게 만드는 법입니다.
제 말이 지나친가요? 세상에 모든 소란은 혼자 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한다는 말을 떠올려봅니다. 당신은 서해, 남해에 무리 지어 펼쳐진 흔한 다도해 섬이 아닙니다. 외로움 감수하고 넓은 동해에 홀로 떡하니 서 있습니다. 패거리가 주는 허세와 위로받고 싶은 나약함도 포기한 체, 뭇 생명들의 벗으로서 당신은 독존(獨存)할 뿐입니다.
혹시 우리나라 정치인과 일본이 맺었다는 ‘독도 밀약’에 대하여 들어보셨나요? ‘해결하지 않은 것을 해결하는 것으로 한다’는 해괴한 내용이 담겨 있답니다. 말장난과 같은 비논리 속에서 당신에 대한 그들의 깊은 고민이 묻어납니다. 하지만 비겁한 정치놀음일 뿐입니다. 정치놀음에 무슨 ‘정도(正道)’가 있겠습니까? 이 ‘독도 밀약’은 이명박이란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하여 당신을 방문함으로써 거품처럼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이제 당신은 국제재판소로 가야 할지도 모를 일이 되었습니다.
한심한 질문을 드립니다. “당신은 어느 편입니까?” .... 그냥 제가 답하겠습니다. 당신은 그냥 당신입니다. 즉 ‘독도는 그냥 독도’입니다. 당신은 괭이부리새와 같은 바다 새들과 거센 바람과 끝없는 해조음 그리고 숱한 생명들의 터전일 뿐입니다. 당신을 ‘죽도(竹島)’라는 부르는 괴상한 말에 혀를 차지만,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애국주의’도 달갑지 않습니다.
당신의 품속에 사는 각종 생물들이 약 2046종이라는 설명을 어딘 가에서 보았습니다. 이 숱한 생명들이 당신 아니면 그 막막한 동해 어느 곳에 자리를 잡겠습니까. 당신은 마땅히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지키면서 그 오랜 세월 바다에 서 있을 뿐입니다.인간들은 당신에게 천년기념물 제336호라고 번호까지 부여했더군요. 별거 아니니 무시하시기 바랍니다. 인간들은 원래 숫자를 좋아합니다. 당신은 돌돔, 괭이갈매기, 새우, 강치의 어머니입니다. 그냥 그들과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이 최근 부쩍 당신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데는 경제적인 이유가 있더군요. 일명 ‘불타는 얼음’이라고 불리는 ‘메탄 하이드레이트’이라는 에너지가 있는데, 당신은 이 에너지를 매년 10조 원씩 30년 동안 쓸 수 있는 양을 가지고 있답니다. 결국 당신을 소유하고 해체하려는 그들의 속셈을 알 것 같습니다. 이들에게 당신은 생명의 자리가 아닌 쓸모와 효용의 대상으로만 보이는 모양입니다. ‘독도는 우리 땅’이란 우리의 외침만은 순결하기 바랍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를 당신께 대입하면 ‘독도는 독도일 뿐이다.’입니다. 당신을 ‘영토주의’와 ‘자본주의’가 아닌 생명의 터전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존재로 인정해야 합니다. 이제 ‘홀로 아리랑’ 한 구절을 적어보면서 글을 마칠까 합니다. 편히 주무시고 더불어 당신의 친구인 뭇 생명들을 꼭 보듬어 주시기 바랍니다.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오늘도 거센 바람 불러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아리랑 아리랑 홀로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2021. 5월 더워지는 어느 날 . 빛고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