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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코다(coda), 노을의 향연

by 박신호

“누군가 삶을 마감하는가 보다 / 하늘에는 붉은 꽃이 가득하다

열심히 살다가 / 마지막을 불태우는 목숨

흰 날개의 천사가 / 손잡고 올라가는 영혼이 있나보다

유난히 찬란한 노을이다.” – 서정윤 <노을>


#1

“생의 마지막을 붉게 물들이겠다.”라고 어느 정치인이 말했다. 그를 두고 세상에서는 3김 가운데 한 명이라 불렀다. 그는 팔순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다시 한번 선거를 주도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하긴 평생을 2인 자로 살았다고 하니 맺힌 것이 있을 법하다. 다른 두 김씨 정치인이 차례로 대통령이 되는 것을 지켜보았던 노정객의 오기가 서려 있었다.


매일같이 태양은 새벽녘 여명으로 찾아오고, 황혼이 되면 선홍빛 노을을 남기고 물러간다. 자연은 우주의 질서를 따를 뿐 말이 없다. 자연이 뿜어내는 빛의 향연 앞에 우리의 감정도 출렁인다. 하지만 자연은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자연에 투영된 욕망은 결국 제 자리를 맴돌다 힘을 잃게 된다. 노정객은 붉은 노을처럼 마지막 정치 여정을 마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쉬움과 욕망이 뒤섞인 그의 노을은 씁쓸했다.


#2

자연을 향한 감정투사는 살아온 여정에 비례한다. 노정객이 바라보았던 노을에는 권력의 아쉬움이 서려 있었다. 허공이 유화처럼 강렬하게 변하는 붉은 노을. 생의 마지막을 붉게 만들겠다는 욕망에는 소멸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이 묻어 있다.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없는 인간 실존의 한계가 말이다.


우리는 노을 빛속에서 자연의 경이로움과 인생의 덧없음, 생의 충동과 같은 다양한 감정을 마주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일 것이니, 어찌 서로 무관할 수 있겠는가? 동트는 여명이 생의 시작이라면, 노을은 생의 마무리쯤 될 것이다. 싱그럽던 유년기, 피가 뛰던 청, 장년기를 지나고나면 어느새 황혼이 슬그머니 우리 곁에 앉아있다. 이때부터 삶의 속삭임을 잘 들어야 한다. 혹시 그 소리가 희미하다면 노을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노을은 우리의 내면에 들어와 삶의 가르침을 베풀 것이다.


#3

참으로 아름답던 여인이 있었다. 사춘기 어린 시절 TV 명화극장에서 그녀를 보고서 잠이 오지 않았다. 스크린에서 그녀는 연인을 안고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는데, 마치 강림한 천사 같았다. 오똑한 콧날, 영롱한 눈망울과 가날픈 그녀의 몸. 심지어 그녀의 실루엣 빛같은 그림자까지 투명했고 아름다웠다. '오드리 헵번' 그녀의 이름이다.

오드리1.jpg


오드리 헵번은 2차 대전 중 극심한 결핍 속에 자란 탓에 영양실조로 고생을 했단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그녀를 ‘로마의 휴일’로, ‘사브리나’로, ‘티파니에서의 아침’으로 이끌었다. 세기의 요정으로 불렸던 앤 공주. 오드리 헵번은 헐리우드의 별이었다. 오드리 헵번이 노래한 ‘문 리버’와 헵번스타일이라 불렸던 머리결까지 세상은 그녀를 사랑했다. 빛나던 요정 오드리 헵번도 불행한 결혼과 함께 희미해져 갔다. 그렇게 만인의 공주이자 여인이었던 그녀는 우리 기억 속에 서서히 풍화되어 갔다.


사라진 오드리 헵번이 수십 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를 안고 슬퍼하고 있었다. 우리의 늙은 앤 공주님이 울고 있었다. 그녀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아프리카, 아시아를 다니면서 세상을 향하여 자비를 호소하고 있었다. 만년의 그녀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 있었는데, 주름진 얼굴에는 미묘한 슬픔과 자비가 자리하고 있었다. 죽어가는 어린 생명에게 떨구던 눈물, 깊고 선한 눈, 품격있는 주름으로 난민촌에 머물던 그녀는 성모(聖母)였다. 오드리 헵번은 1993년 겨울. 하늘의 인도를 받으며 밤하늘에 아름다운 별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유래된 음악 용어 가운데 코다(CODA)가 있다. 푸가, 토카타, 소나타, 교향곡 등 음악의 마지막 장르에 붙여진다. 정적인 코다도 있고 동적인 코다도 있다. 우리의 인생에도 마지막에 이르면 자신만의 코다를 붙여야 한다. 노정객이 생을 붉게 만들겠다는 욕망의 코다를 선택했다면, 오드리 헵번은 자비 실천이라는 코다를 정했다.


#4

살아 오는동안 숱한 노을을 마주했다. 대학 시험 마치고 산수동 언덕을 더벅더벅 내려오면서 바라보았던 희뿌연 노을. 최루탄을 피해 거리를 달려갈 때 금남로 빌딩 사이에서 만났던 분노와 두려움의 노을. 신병 훈련소 연병장 땅바닥에 엎드린 채 올려보았던 노을. 퇴근길 운전 중에 마주했던 안락하고 나른한 노을. 그리고 아들을 군입대 시키고 강원도에서 광주로 내려올 때 만났던 한쪽이 텅 비인 노을. 그 모든 노을이 내 삶을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코다’를 생각해 본다. 장년의 길목에서 선홍빛 노을에 잠긴 서쪽 하늘을 똑바로 바라본다. 이젠 벗들도 백세시대라며 다가오는 노년의 불안에 대해 자주 말한다. 살아내야 할 시간이 살아왔던 시간보다는 짧을 것만은 분명하다. 앞으로 만나게 될 세월 동안 마주할 노을 빛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허리를 바르게 세워본다. 선홍 빛으로 출렁이는 노을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내게 두 손 모으란다. 그렇게 살면 된단다. 걱정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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