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토요일 아침. 슬며시 이불을 걷어내고 거실로 나간다. 커튼 너머 창밖이 흐리다. 시곗바늘은 6시 30분을 가리킨다. 햇살 한 줌 비칠만하거늘 잔뜩 흐린 기운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살짝 창문을 열고보니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4월에 내리는 봄비 치고는 굵다. 비 오는 토요일 아침은 마음을 안락하게 한다. 이런 날, 잿빛 창가아래서듣는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은 금상첨화일 거야.모처럼의 호사를 놓칠 수 없음에 CD 음반을 고른다.한데 문득 아침 장례미사가 떠오른다. '장례미사 안내 방림동 성당 9시 30분'. 어젯밤 들어왔던 문자를 다시 확인해 본다.
성당으로 가는 길. 내리는 비가 상큼하다. 이 정도면 요 며칠 세상에 달려들었던황사를 씻어내기에 충분하리라.좌우로 내달리는 와이퍼가 빗물에 실린 연두색꽃가루를뿌리치는중이다. 장례식 가는 길에 빗물이라니. 산울림의 ‘그대 떠나는 날 비가 내리네 “라는노래가 떠오른다.
성당은 망자를 위로하는 연도(煉禱) 소리로 가득하다. 연옥 영혼을 위한 구슬픈 가락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제대 옆에는 망자의 얼굴이 걸려있다. 세례명 베네딕토, 폐암으로 생을 마쳤단다. 삶이란 이렇게 마무리되는가 싶다. 남겨진 가족들은 검은 상복 차림이다. 기도가 더해지면서 상주인 따님의 어깨가 출렁인다. 한 생을 함께했던 스콜라스티카 교우는 입을 꼭 다물고 있다.
늦은 오후 운동화를 신고 공원으로 향한다. 비가 멈춘 허공은 부드러운 회색이다. 공원 꽃밭은 철쭉과 진달래 천지다. 동백, 매화, 목련, 벚꽃이 연달아 스러진 자리에는 붉은 철쭉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철쭉 사이로 셋방살이하는진달래가 고개를 떨구고 있다.
우리네 한 생이나 저토록 고운 꽃잎의 한 생이나 다를 것이 무어랴. 이런 날, 당나라 시인 맹호연의 춘효(春曉) 정도는 읽어줘야 외롭지 않을 봄이겠다. 시인은 새소리, 빗소리를 들으면서 봄날이 지나가고 있음을 아쉬워한다. 시인의 귀가 작품을 완성한다.
거울에 비친 귀밑 새치. 작은 가위로 흰 터럭을 자르면 속삭인다. 지는 꽃만 무상하랴, 내 신세 역시나무상하렷다. 돌이킬 도리가 없다. 그저 순리를 지엄하게 따를 수밖에. 귓가에 연도 가락이 맴돈다. "주님 망자를 기억해 주소서." 아쉬움 또한 인지상정(人之常情)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