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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Jul 20. 2024

쏨뱅이 타령

  쏨뱅이탕이 자꾸 생각난다. 느닷없는 입맛 타령이라니 별스럽다. 검색창에 쏨뱅이를 입력해 본다. ‘쏨뱅이 매운탕’, ‘완도 직송’, ‘볼락과 같은 정보가 화면에 줄줄이 뜬다. 쏨뱅이는 육지 사람들에게 낯선 생선이다. ‘쫌뱅이로 잘못 들릴 수 있는 별난 이름이다.

 

 완도를 떠난 지, 사십 년 세월이 넘었다. 쏨뱅이를 떠올리며 침을 삼키는 까닭은 그곳 완도에 닿아 있다. 초등 아닌 국민학교 3학년 가을이었다. 우리 식구는 서울을 떠나 남녘의 섬. 청해진 완도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비포장 험로였다. 섬사람... 그것은 착잡함과 희망의 교차로였다.     
 

 쏨뱅이는 완도에서 흔한 물고기였다. 맞벌이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던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에 오르던 자주 생선이었다. 저렴했던 쏨뱅이는 어머니에게 유용한 찬거리였나 보다. 어머니는 그 별난 이름의 생선을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다. 완도에서 알게 된 해산물이 많다. 파래, 매생이, 청각, , 다시마, , 문저리, 아나고 등.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바닷가에는 먹거리가 즐비했다.     

 

 한 번은 친구 집에 놀다가 청각, 톳이 들어있는 해물 죽을 먹게 되었다. 그 낯선 맛에 곤욕스러웠다. 반면 입맛의 즐거움을 주었던 해산물도 있었으니,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고소한 아나고였다. 어머니의 손맛이 스민 쏨뱅이 국물과 아버지가 봉지에 싸 오시던 아나고는 용호상박의 맛이었다.


 처음 맛본 쏨뱅이 국물의 짭조름함을 딱히 설명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쏨뱅이라는 이름만큼은 인상적이었다. 대학 시절, 어색한 미팅 자리에서 상대 여학생에게 쏨뱅이라는 생선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쫌뱅이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멸치, 삼치, 갈치와 같은 로 끝나는 것도 아니요. 고등어. 청어, 방어, 상어와 같은 로 끝나는 생선도 아닌 유별난 명칭인 것은 맞다. 아무튼 덕분에 수줍던 분위기가 훈훈해졌다.

    

 쏨뱅이의 생김새는 이름만큼이나 인상적이다. 몸통 전체에 비해 커다랗게 눈이 돌출해 있고, 쫙 벌린 입의 크기도 상당하다. 적갈색 몸통에는 은하수처럼 작은 무늬들이 새겨져 있다. 머리 부위 또한 전체 삼분의 일을 차지할 만큼 크다. 등에는 제법 날카로운 지느러미가 달려있어 조리할 때 조심해야 한다. 크기는 어른 손바닥 정도이니 큰 고기는 아니다. 어머니의 쏨뱅이탕에는 이렇게 못생긴 한두 마리가 입을 벌린 채 잠겨 있었다.


 완도에서 십여 년을 살았다. 그럼에도 누군가 고향이 어디냐며 물을 때면 서슴없이 완도라고 말한다. 비릿한 바다 내음과 넘실대는 물결, 빛나던 황홀한 붉은 낙조, 푸른 바다 위로 쏟아지던 빛의 폭포 등. 유년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있는 풍경이다. 내게 완도와 쏨뱅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았다. 쏨뱅이에서 우러나는 바다 내음과 하얗고 연한 부드러운 식감은 고향의 맛이다.


 왜 어머니는 쏨뱅이를 밥상에 자주 올렸을까? 서울살이 오 년 동안 고생이 컸던 어머니는 완도에서 아버지와 악착같이 돈을 벌기 위해 식당을 시작했다. 손님은 꾸준하게 늘어났다. 두 분의 하루는 자정 무렵에 이르러서야 끝났다. 몇 시간 주무시고 일어난 어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이윽고 김과 생선구이 그리고 쏨뱅이 국이 상에 오를 때면 손님들의 얼굴은 환해졌다.     


  이제 팔순을 훌쩍 넘으신 어머니께 쏨뱅이탕을 먹고 싶다고 했더니, 웃으신다. 순간 어머니도 그 시절이 떠올랐으리라. 엊그제는 어느 지인에게 얻은 감태를 드렸더니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머니 역시나 바닷가에 살았던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음이다. 아마도 나이를 더할수록 쏨뱅이 국물이 그리운 까닭은 어머니의 세월이 스며있는 유년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음식에 호불호가 없다. 대신 맛집 탐방이나 대기표를 들고 길가에서 서성이는 것 따위는 질색이다. 며칠 전 아내에게 쏨뱅이 먹으러 완도에 갈까하고 말을 했더니 놀란 표정으로 고작 생선 국물 마시러 완도까지 가냐며 되물었다. 평소 타박 없이 식탁에 차려진 대로 먹는 남편이었기에 웬일인가 싶었던 모양이다.

  

 그날 저녁 식사 때 불쑥 내가 내게 말했다. “이제 나이를 먹어가니 옛날 음식이 그리운 모양이네라고.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유년기의 감각이 형성될 무렵, 강렬하게 인식된 것이 의식의 창고에 저장된다는 말이 있다. 지금도 치즈나 콘프레이크가 달갑지 않은 것은, 유년 미각이 기억하지 못함이리라. 찬 바람에 수은주가 떨어질 때면 찾게 되는 호빵과 어묵 국물 또한 어릴 날 새겨진 미각 때문일 것이다.     


  시각보다 강한 것이 후각이라고 한다. 특정 공간에서 풍겨오는 냄새는 망각의 시간을 소환시킨다. 마찬가지로 미각 또한 이에 못지않은 그리움을 불러내는 힘이 있다. 요즘처럼 마음이 건조해지면 해조음이 들려온다. 그럴 때면 바다 내음과 쏨뱅이 국물이 그리워진다. 뿐만 아니다. 국물 속에는 항구의 통통배 소리와 어판장으로 향하던 활어차의 생동감까지 담겨 있다.     

  쏨뱅이탕의 그윽한 미감은 마술이다. 국물이 입안을 적시면 섬 개구리 시절이 홀로그램처럼 머릿속에서 재현된다. 다른 차원의 시공으로 이어진다는 우주의 웜홀과도 같다. 세상살이로 마음이 허할 때면 고향의 장면과 정겨움이 느껴진다. 이렇게 그리움을 무작정 따라가면 어느새 모락모락 김이 나는 쏨뱅이 국물에 도착하게 된다.     


  이제 겨울도 끝자락에 서 있다. 더 늦기 전에, 고향 완도와 어머니의 손맛이 생각나는 쏨뱅이탕을 먹으러 가야겠다. 그 따끈하고 짭조름한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면 허한 감정에도 생기가 돌 것이다. 사는 것이 별거 있으랴. 쏨뱅이탕 한 그릇으로 충분할 테니. 아내도 느닷없는 내 맛 타령을 이해할 것이다. 쫌뱅이가 아닌 쏨뱅이를 향한 옛 그리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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