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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Aug 10. 2024

말없이 가르침

<배움의 도> 2장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 반대편 짝이 있다.

저마다 세상에 있기 위해서는

짝이 있어야 한다.

선과 악, 가득함과 텅 빔,

부와 가난, 흑과 백  

   

그러기에 슬기로운 교사는

말없이 가르치고, 하는 일 없이 한다.


모두 그가 이룬 것이지만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는다.

일이 다 끝나면

그는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삶은 제행무상이다. 모든 것은 고정됨이 없이 변화한다. 시간도 예외일 수 없다. 세월이 흐르면 시간의 빛도 희미해지는 법.  기억은 앙상해지고 한순간의 이미지만 영원이 남는다.

 

 졸업식이 끝난 텅 빈 고 3학년 교실. 대학 진학이란 고지전이 치열했던 공간이다. 고3 담임을 여러 차례 맡았던 탓에 아이들이 떠난 빈자리에서 밀려오는 허망함에 익숙하다. 녀석들은 담임교사였던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내게 받았던 국어 수업이 과연 그들의 삶에 도움은 되었을까? 고요만이 맴도는 교실에서 자문해 본다.     


 광주 숭일고등학교. 나의 모교는 구한말에 설립된 사립학교다. 학창 시절의 선생님들이 떠오른다. 만우절 날 우리의 고약한 거짓말에 속아서 수업하다 말고 양호실로 달려가던 수학 선생님. 소풍날 양희은의 ‘들길 따라서’를 노래했던 국사 선생님. 참고서와 토씨마저 똑같았던 인내력 끝판 국어 선생님. 엘비스 프리슬리의 ‘러브 미 텐더’ 가사를 칠판 가득 적어주셨던 영어 선생님. 체육대회 날 단상에 올라가서 밀걸레를 들고 춤을 추었던 교련 선생님.      


 졸업한 지 사십 년이 지난 지금껏 내 기억에 살아있는 선생님들의 모습이다. 희한하게도 수업 내용이나 문제 풀이 따위 대신 이런 장면들이 스틸 사진처럼 떠오를 뿐이다. 선생님들의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와 미소, 걸음걸이, 말투가 뚜렷한 잔상으로 새겨져 있다. 그것은 삶의 모습이었다. 계획된 수업이 아닌 그냥 이루어졌던 가르침들이다.     


 언젠가부터 가르치던 국어 수업에 회의가 생겼다. 공부란 각자의 몫이고 교사는 그저 시험 출제나 하는 존재인가 싶어졌다. 고백하건대 내 강의는 평범하고 학생들과 교류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밋밋한 수업 대신 인사를 잘하는 교사가 되기로 했다. 수업종이 울리면 학생들은 내게 인사를 한다. 그때 나는 두 손을 모은 채 허리를 숙여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원정사에서 1,250명의 비구와 함께 머물고 계셨다. 그날 탁발할 시간이 되자, 부처님께서는 가사를 입으신 뒤 발우를 들고 사위성 시내로 나가 한집 한집을 다니시며 먹을 것을 얻으셨다. 탁발을 마치신 부처님께서는 사원으로 돌아와 공양을 하시고,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으신 후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금강경』첫 장인 <법인인유품>이다.     


  <법인인유품>에는 부처님 가르침의 정수가 들어있다고 한다. 처음엔 무슨 뜻인가 했지만 지금은 그 의미를 알겠다. 석가세존의 모든 행주좌와에는 여여한 진리가 스며있는 것이다. 뜻과 행동을 알아채는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말없는 알아차림. 이것은 스승으로 가는 지점이니 설익은 교사가 넘볼 수 없는 경지가 아니다.     


 교사의 제일 덕목은 언행일치가 아닐까. 물론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래도 인간이라면 가야 할 길이다. 하물며 교사라면 말해 무엇하랴. 입 안에 넘쳐나는 요란한 말 잔치에 속지말고, 절제된 가르침으로 학생들을 만나야 한다,  학생의 눈에 비치는 교사의 말없는 모습이야말로 가르침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훗날 아이들은 관동별곡, 음운의 변동, 황순원의 소나기. 비문학 독서 지문을 설명하던 내 모습을 잊을 것이다. 대신 망가진 성대 탓에 끙끙대던 모습이나 수업 전 그들에게 꾸벅 인사하던 그런 것들이 시간의 풍화를 이겨내고 녀석들 마음에 남으리라.     


<배움의 도> 2장 ‘말없이 가르침’은 역설이다. 교사는 주어진 교과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은 교육과정 뒤에 있는 다른 그것. 곧  삶에 대한 교사의 태도다. 그러니 삼가고 또 삼가해야 하는 것이  묻은 칼. 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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