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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Nov 26. 2021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1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시절. 가난한 조국은 젊은이를 인력(人力)이라 불렀다. 인력에 불과한 청춘들은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했고, “잘살아보세를 노래했다. 산업화와 수출입국의 불쏘시개는 젊은이들의 몫이었다. 배움과 풋풋한 연애에 따위는 언감생심이었다. 이들을 구원할 인권과 노동권은 활자에만 존재할 뿐이었다. 인력의 시절, 질식된 인권과 노동을 소생시키려던 한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다가 청계천에서 소신공양(燒身供養)의 불꽃이 되어버렸다.     


  그 청년의 이름은 전태일. 이제 세상은 그를 '열사'라고 부른다. 그가 남긴 일기 속에는 한 명의 대학생 친구를 애타게 찾는 내용이 있다. 세상의 모순을 고민하던 그에게 기득권은 거대한 공룡이었다. 이들과 대적하기 위해서 필요한 노동, 법률, 행정을 이해시켜 줄 대학생 친구가 절실했을 것이다. 하지만 끝내 대학생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청년이 남긴 일기를 입수한 젊은 변호사가 있었다. 그는 대학생 친구가 필요했다는부분에서 전율했다고 한다. 그 변호사는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가 되어 노동과 인권 분야에 헌신하는 삶을 살게 된다. 서울대 전체 수석 조영래 변호사. 그는 청년이 그토록 기다렸던 대학생 친구였다. 하지만 조영래 변호사도 마흔셋 아까운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청년 전태일과 젊은 변호사는 하늘에서 영원한 벗으로 만났을 것이다.


#2

  친구에 대한 정의는 많다. 그 가운데서 나를 알아주는 벗이란 뜻의 지기지우(知己之友)’가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진정한 친구 셋만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란 말이 있다. 한때는 ‘아이고~고작 세 명?이란 생각도 했었지만, 살아보니 세 명의 벗을 얻는 것이 녹녹치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지기지우라 칭할 수 있는 벗을 헤아려본다. 몇몇 친구들이 떠올랐지만, 손으로 꼽아보자니 신중해진다.     


 지기지우를 헤아려보는 내 자신이 얌체 같다. 그보다 내가 먼저 알아주는 친구가 몇이나 되는지를 살필 일이다. '관포지교'의 주인공 관중과 포숙아처럼 말이다. 관중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믿어주고 지지했던 포숙아를 그리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진정으로 알아준 이는 포숙아였다.” 라고.  

#3    

 고향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훤칠한 미남이었고 달리기가 수준급이었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고, 같은 동네에 살면서 뻔질나게 어울리곤 했다. 음악다방도, 성당도 함께 다녔고, 같이 담배를 피우면서 기타로의 실크로드 음악을 듣곤 했다. 친구의 형과 누나까지도 내게는 그냥 친형, 친누나 같았다.      


  군대를 갔다 온 친구가 갑자기 아팠다. 막내로 자란 친구는 코피를 많이 쏟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눈빛에 힘이 없었다. 가끔은 분노에 찬 강한 눈빛도 볼 수 있었 다. 어느 날 친구는 눈썹과 머리를 밀고 나타나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친구의 알 수 없는 좌절과 분노를 감당하기가 부담스러웠다. 서서히 여러 벗들이 친구를 외면하기 시작했는데, 나도 그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친구가 맑은 미소로 돌아왔다. 나와 친구, 그리고 친구의 누나까지 커피숍에서 떠들썩하니 좋아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포근한 우정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친구의 우울증은 다시 찾아왔고, 사회로부터 점점 멀어져갔다. 세상에 발을 못 딛고 허황한 말과 함께 헤매는 친구가 걱정되었으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안타까움 뿐이었다. 직장과 결혼 등으로 세상일에 바빠진 나는 친구가 염려되었지만, 연락하기도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친구와 멀어져 갔다    


#4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신호 맞지? 광주에 신호가 셋 있더라.. 모두 전화했었다. 신호야 경수가 어제 죽었어. 장례식장에 친구 한 명 없어서 너무 마음이 아프구나. 와 줄 수 있지?”라는 누님의 전화 목소리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미안하고 아픈 마음으로 장례식장 갔다. 친구는 영정 사진 속에 있었다. 현실 같지 않았다. 친구가 왜 저기에 있지?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저 멍했었다. 미안했고, 미안했고, 너무 미안했다. 차마 영정 사진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우산을 쓰는 둥 마는 둥 빗속을 걸어 집으로 갔다. 버스나 택시를 타고 싶지 않았다. 걷는 도중 친구의 왜소한 얼굴과 멋지게 달리던 모습만이 자꾸 그려졌다. 삶의 자락을 놓을 때 얼마나 외로웠을까? 찾아갈 봉분마저 없는 친구를 가끔 마음에서 찾는다. 그의 고통을 외면한 것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고 싶다. 어쩌면 친구는 전태일처럼 고통을 나누고 위로해 줄 벗을 애타게 찾았을 것이다. 가버린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유구무언일 뿐이다     

#5

 가톨릭에서는 11월을 위령성월이라 한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리는 달이다. 해마다 위령성월이 되면 저편 언덕으로 먼저 가버린 그 친구가 떠오른다. 훗날, 친구를 만나면 함께 손잡고 담배를 피워야겠다. 비록 끊었던 담배지만 친구가 권하면 냉큼 웃으면 맛있게 피울 것이다. 그리곤 영혼의 거리를 싸다니며 서로에게 발짓도 하고 신기한 것도 구경하며 다녀야겠다. 젊은 얼굴 그대로일 친구가 나를 보면서 팍 늙었구나라고 킬킬대면 함께 웃어줄 예정이다. 그래도 고마울 것이다.     


 지기지우는 귀한 인연이. 희랍의 한 철학자는 친구는 제2의 자신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부부의 인연만큼 벗과의 우정도 만만치 않은 인연이다. 이 세상을 정성껏 살다가 어느 날 저세상에 가게 되면 먼저 와 있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과 어깨를 동무하고 기념사진이라도 찍어야겠다. 다들 여기 봐. 하나, ~ 김치~” 라고 소리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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