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반지를 찾아라

by 박신호

#1

앗! 반지가 없어졌다. 내 왼손 검지에 있던 묵주반지가 사라진 것이다. 한 달 전쯤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렸다. 천주교에서는 자주 묵주기도를 바친다. 이 기도를 드릴 때 사용하는 묵주를 반지 형태로 만든 것이었다, 묵주란 50개의 구슬을 다섯 마디의 환(環) 형태로 이루어진 기도 용품이다. 묵주반지는 5단 묵주를 1단으로 압축한 것이다.


이 묵주반지는 8년 전 바오로 딸 서점에서 구입했다. 은으로 된 반지였다. 그 무렵 나는 중력만큼이나 무거운 업무를 떠맡게 되었다. 성공에 대한 부담으로 스트레스가 컸다. 목마른 자가 물을 찾는 심정으로 구입한 반지였다. 특정 종교의 표징을 드러내는 것은 질색이었지만,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업무로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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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학교 시스템을 환골탈태(換骨奪胎)시키라는 주문은 내 영혼을 은하계 밖으로 보내 버렸다. 교장, 교직원, 학부모, 학생들까지 일제히 나를 주시하는 형국이랄까. 물론 함께 팀을 이루었던 동료, 후배 교사들의 눈물겨운 분전도 있었다. 지금은 웃음만 나오는 헛된 일 같은데, 그때만큼은 황산벌로 향하던 계백의 심정이었다.


아무튼 골치 아픈 회의나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할 순간마다 묵주반지를 돌리면서 그분께 지혜를 구하곤 했다. 이 반지로 기도를 하고 나면 벌렁대던 에고도 안정되었다. 출근 시간부터 퇴근 시간까지 묵주반지는 수호천사였다. 이러한 절대반지가 실종되었으니 그 상심과 허전함에 집안의 모든 공간을 들쑤시면서 찾았다. 식구들에게도 치킨 한 마리를 포상으로 내걸면서 반지 찾기를 독려했다. 하지만 소파, 책상 밑과 호주머니까지 혐의를 두고 탈탈 털었건만 반지의 행방은 묘연했다.


#3

아내는 결혼반지 잊었을 때보다 더 난리라고 별스러워했다. 그녀도 집 청소를 하면서 혹시나 하고 구석구석 찾아보았다면서, 어디선가 나올 거라며 희망의 불씨를 살려주었다. 사실, 나는 반지를 분실했던 전과가 있다. 신혼 무렵, 제주도 수학여행 때 학생들을 인솔하면서 머물던 숙소에 결혼반지를 놓고 나온 것이다. 숙소에 있던 3단 서랍 첫 번째 칸에 둔 채로 말이다.


수학여행 마지막 날, 기상 악화로 정신없이 귀가를 서둘렀기 때문이다. 교사와 학생 모두 폭우로 인해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아슬아슬하게 목포행 배에 올랐다. 지금이라면 엄두가 나지 않을 항해였다. 선실 안에서 흔들리는 가방을 붙잡고 안전 귀가만을 염원하고 있었다. 그때 손가락이 뭔가 허전했다. 숙소에 결혼반지를 두고 온 것이다. 그 시절은 삐삐를 사용하던 세상였다. 숙소에 연락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자정이 넘어서 학교에 도착했다. 많은 차량이 비바람을 뚫고 온 자녀를 태워가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었다. 다음날 그 숙소로 전화를 해서 반지의 행방을 물었다. 숙소 리조트 직원의 답변은 이랬다. “그 방 서랍 칸에 고객님의 반지가 없는데요?”라고. 그러면서 혹시 다른 곳에 둔 것이 아니냐고 묻는 것이었다. CC-TV도 없고, 그 반지의 존재를 증명 방법이 없었다. 분명 3단 서랍 맨 위 칸에 두었는데....말이다.

그렇게 결혼반지는 신혼 시절과 함께 사라졌다. 사실 그 반지는 비싼 보석은 빼놓고 금으로 된 부분만 녹였던 것이다. 그 탓이었나. 예상 밖으로 아내는 쿨하게 그 상황 수용했다. 아무튼 결혼반지는 제주도 폭우 속에 증발하였다. 지금도 그 숙소 직원들을 의심하지 않으려고 한다. 뭐든지 인연이 다하면 내게 사라지는 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4

그해 겨울 국가 비상사태가 터졌다.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인 IMF가 닥친 것이다. 진심으로 사회가 근심되고 우려되었다. 쏟아지는 실업자들을 보면서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교사라는 직업이 미안했다. 뒤숭숭한 어느 날, 내가 가입했던 단체에서 긴급 소집이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대구 스승님께서 "금반지를 내놓으라"고 명하셨다. 개인에게 할당된 반지의 개수는 없었다.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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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말했더니 동의를 한다. 그녀도 나라를 구하고 싶었나 보다. 아무튼 큰아이의 돌 반지 몇 개를 바로 기부했다. 며칠 후 뉴스에서는 우리 단체의 금반지 기부가 보도되었다. 아~놀라워라. 그날 방송 이후 시민들의 금모으기가 시작되었다. 전국의 시민들이 줄지어 동참한 것이었다. 위대한 나비효과였다.


우리 단체 회원들은 일제 국채보상운동의 주역인 된 듯 감격했다. 얼마 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도 시민들의 ‘금모으기’를 보면서 특유의 말투로 벅찬 감동을 전했다. 물론 기대하지 않았던 금반지의 값을 국가는 주었다. 훗날 그분께서 내게 지금껏 잘했던 일을 묻는다면 주저 없이 ‘금모으기’ 마중물이라고 답할 것이다


#5

반지의 제왕이란 영화가 있었다. 욕망의 상징인 절대 반지를 놓고 선과 악이 투쟁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그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골룸은 절대 반지에 중독된 반인괴수(伴人怪獸)이다. 사라져버린 묵주반지도 내게는 절대 반지였다. 허전한 왼손 검지를 볼 때마다 상심했다. 나와 골룸은 이심전심이었다.


오늘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다. 결국 묵주반지 찾기를 단념했다. 대신 새로운 묵주반지를 사기로 했다. 아침일찍 성탄대축일 미사에 가기 위하여 정장을 꺼내 입었다. 그 순간 호주머니에서 그 무엇이 잡혔다. “앗! 유레카! 유레카!” 나의 절대 반지, 그토록 찾았던 묵주반지였다. 절대 반지를 얻은 골룸마냥 환호가 절로 나왔다. 이보다 더 큰 성탄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이라고 산타할아버지께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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