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나서기 전, 베토벤 CD를 꺼낸다. 교향곡 1번과 3번이 담겨있는 음반이다. 퇴직한 선배를 만나려 가는 차 안에서 들어볼 것이다. 시동을 켜고 CD를 플레이어에 넣는다. 이윽고 장중한 1번 교향곡 1악장 아다지오 몰토가 흘러나온다.
정월이 여러 날 남은 까닭인가. 여태껏 새해 분위기가 느껴진다. 한해 출발과 마무리에 어울리는 곡이라면 단연 베토벤의 교향곡이다. 아마도 9번 교향곡 환희 때문일 것이다. 청력이 완전히 떨어진 상태에서 만든 환희의 송가는 인생 응원가이다.
악성(樂聖)이라 불리는 베토벤의 삶은 불운으로 점철되었다. 고질적인 병증과 생계의 어려움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오순도순한 가정도 못 꾸린 채, 말썽쟁이 조카와의 끝없는 갈등. 제대로 된 자신의 삶을 꿈꿀 수 없었던 불우한 루트비히. 오로지 예술적 자존심으로 생을 버텨야 했던 그를 헤아려본다.
차가 고즈넉한 길을 달리고 있다. 차창 너머 영산강이 뿌옇게 들어온다. 미세먼지가 허공에 가득한가 보다. 어느새 교향곡 1번이 끝났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이러한 고요가 좋다. 꽉 찬 선율 사이의 휴지. 신은 틈에 존재한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이어 쾅하는 벅찬음이 터지더니 잔잔한 선율로 바꿔간다. 교향곡 3번 1악장이다. 흔히 영웅, 에로이카 불리는 곡이다. 맥없이 서있는 억새들도 음악을 감상하는 듯 이리저리 흔들고 있다. 강물 위로는 두루미인지 백로인지 모를 새들이 날개를 퍼득이며 비상한다.
선배와의 약속시간까지는 여유가 있다. 차에 앉아서 강변을 바라본다. 교장으로 퇴임한 선배는 어려운 노인들을 돌보는 생활지도사가 변모했다. 늘 부지런하던 선배였다. 그의 새로운 삶이 궁금하다. 나 또한 퇴임이 가까워진 탓인가 보다. 약속 장소인 카페로 걸어가면서 정월이 다 지나기 전에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들어보자 생각한다.
문을 열고 카페에 들어서자 맞은편에서 선배가 환한 미소로 반겨준다. 젊은 날 교통사고로 눈 한쪽 이 실명된 그다. 청력이 망가진 베토벤과 반쪽뿐인 시력으로 교단을 지켰던 선배. 묘한 조합이다. 그것은 자존심으로 삶을 지켜낸 생의 의지리라. 서창들녘이 해맑은 창으로 들어온다. 고운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