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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by 박신호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렬을 파면한다."


TV 화면을 바라보는데, 울컥하니 목이 메이더군. 지난 몇 달 동안의 아찔했던 혼돈과 믿을 수 없는 구호들이 떠올랐어. 당연했던 것들이 뒤죽박죽 되었던 낯선 세상이었지. 쿠데타가 일상인 '볼리비아'나 하급 장교가 정권을 잡았다는 어느 아프리카의 비극이라 믿고 싶을 정도였어. 그도 아니라면 정적 제거를 위해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튀르키에" 의 이야기로 착각할 지경이었다니까. 12월 3일 밤과 서부지법이 만신창이가 된 그날은 온통 거짓된 세상이었어.


역사는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고 헤겔이 말했지. 에잇! 지식인의 공염불일 뿐이야. 미국을 보라고. 그곳 대통령은 성경에 손을 올리고 취임 선서하잖아. 하지만 세상의 모든 전쟁터마다 그들이 실제 주역임을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 게다가 트럼프와 그를 지지하는 집단한테서 어둠의 냄새가 나거든. 나치 유켄트의 악취가 말이야. 하이! 히틀러, 트럼프, 용산. 모두가 합법으로 선출된 광인들이야. 역사는 저절로 발전하는 것이 아닌 듯싶어. 그저 깨어있는 시민만큼만 전진할 뿐이랄까.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이라고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을 하면서 말했지. 사실 그녀의 작품은 불편해.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흰>, <작별하지 않는다>, <몽고반점> 그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면서 피곤했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지. 혹시 폭력을 대하는 작가의 농도 있는 묘사와 수려한 문체가 빚어내는 처참함 때문은 아닐까? 그동안 <소년이 온다>를 세 번가량 읽지 않았나 싶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어. 첫 장을 펼쳐보기가 그렇게 싫더라고.

1980년 중3 때였지. 그해 5월, 중간고사 첫날이었어. 긴장된 마음으로 헉헉대며 산 중턱에 위치한 학교에 갔는데, 교문 앞에 선생님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더군. 그러더니 등교하는 우리한테 그러는 거야. 집으로 돌아가라고. 임시 휴교라나? 때가 되면 전화 연락하겠다는 말과 함께 거칠게 손짓하는 거야.

느닷없는 공휴일이 되어 버렸어. 그것도 시험 날에. 신나더군. 집에 돌아와서 라면을 끓여 먹고 있는데 어머니가 내게 군청 아래 이불집에 심부름 다녀오라는 거야. 커다란 이불 보따리를 들고 환한 햇빛이 가득한 읍내를 걸었지. 요상한 것은 한낮임에도 사람을 볼 수 없는 거야. 전파상에서 늘 나오던 음악도 들리지 않고, 택시도 다니지 않고 말이지. 슈퍼마켓도 문이 내려져 있었어. 번화한 거리를 홀로 가로질렀지. 진공 상태가 되어버린 텅 빈 거리. 모든 생명체가 빠져나간 허물만 남은 괴기스러운 공간. 그날의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팔뚝에 소름이 돋는다니까.

새신랑 옆집 경찰 아저씨가 도망갔던 80년 5월은 그렇게 을씨년스러운 풍경으로 새겨져 버렸어. 자정 무렵 군청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던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네. "군민 여러분 어서 나오십시오. 민주주의는 피를 빨아먹고 자라는 나무입니다." 피를 먹고 자라는 것이 민주주의라니. 무서운 말이잖아. 5월 광주는 86세대인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화두였지. 오죽하면 나처럼 소심한 청춘도 최루탄 뿌연 거리를 헤매었을까.


내게 <소년이 온다>는 황당한 계엄령이 내려진 12월 3일 밤만큼이나 두렵고 힘든 작품이야. 몇 해 전, 중3 학생 대상으로 <소년이 온다>을 가지고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을 했었지. 나는 내심 싫었지만 다른 선생들의 강력한 추천하기에 따를 수밖에. 수업을 진행하는데 대부분 아이들은 임진왜란과 같은 지난 역사쯤으로 받아들인 듯 덤덤해하거나, 그냥 작가의 상상으로 꾸며낸 영화 속 이야기로 치부하는 거야. 가끔 읽다가 우는 여린 학생도 있었지만. 아마도 또래인 동호에게 감정이입을 한 탓에 그런 모양이었어.

소설에 있어서 시점은 중요하지. <소년이 온다> 서술자의 시선은 죽은 자의 응시라 할 수 있어. 동호, 정대, 정미, 은숙. 선주. 이들은 망자의 눈으로 폭력의 잔악함을 고발하고 있었고 내 귀에 소곤소곤 말해주는 듯싶었어. 그것은 영혼들의 방백이었어. 이런 경우 살아남은 자의 부채 의식은 태산처럼 쌓이는 법이지. 그래서 5월 광주는 산 자는 따르라고 그토록 외쳤나 봐.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99쪽).

폭력과 비폭력의 경계는 무엇일까? <소년이 온다>에서는 양심을 말하더군.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114쪽) 그 양심을 12월 3일 밤에도 볼 수 있었어. 철모를 쓴 채, 허공을 올려다보던 어느 707 공수부대원의 모습이 떠올라. 상부의 명령을 무력화시켜 낸 더딘 발걸음이었지. 하여 문제의 국방부 장관이 반란을 일으킨 대통령에게 중과부적이라고 보고했다잖아. 5월 광주에서도 도청 앞에서 벌이진 학살의 그날, 총구를 하늘로 또는 아스팔트 바닥으로 응사했던 군인이 있었다고 하니. 양심은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 준 선물인가 봐.


오늘은 일요일 오후. 나는 5월 광주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전남대학교 커피숍에 앉아 있어. 문득 투명 창밖을 내다보니. 벚꽃 나무 아래로 두 손을 꼭옥 잡고 거니는 대학생 커플, 운동 삼매에 빠진 마스크 쓴 할아버지. 전동킥보드를 타고 달려가는 파란 모자 쓴 학생.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부부가 보이네. 봄날이 평화롭게 흐르고 있어. 당연한 일상인데... 새삼 아름다운 기적으로 보이네.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거짓과 폭력이 우리 곁을 쓱 하니 지나갔어.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자들을 살려낸 놀라운 봄날이란 말이지. 작은 새 한 마리가 나무 위로 비상하더니 하늘빛이 되네. 파아란 허공에는 먹구름이 없어서 다행인 날. 그런 봄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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