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이름은 들어보셨는지?고향에서 베르고글리오라 불린 이분은 하느님 품으로 돌아간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교황은 예수회 사제가 되기 전 나이트클럽 경비와 노동자 생활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탱고와 축구의 나라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최초의 비유럽 교황이었다.
언젠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예수회 사제 베르고글리오가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라고 한다. 어느 추기경이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베르고글리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것도 세 번이나. 신임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동안 침묵하더니 천천히 답을 했다. “저는 주님 앞에 죄인입니다.”라고.
오래전 들었던 일화인지라 이야기의 출처는 기억나지 않다. 아무튼 죄인이라 고백하는 교황이라니. 훌륭한 목자의 출현임은 분명했다. 전임 베네딕도 16세 교황은 전통 교리 수호에 관심이 많았고,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베네딕토와 프란치스코. 이 두 교황의 인연을 다룬 영화가 <두 교황>이다. 배우 앤서니 홉킨스가 베네딕토 교황, 조서너 프러이스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맡아 열연한 명작이다. 한번 보시길.
콘클라베 결정으로 바티칸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났던 2013년. 아르헨티나 예수회 출신의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빈자의 성인 프란치스코의 이름으로 266대 교황에 올랐다. 이후 그의 재위 13년 간의 업적은 숱한 언론에서 보도했으니 굳이 따로 말할 필요는 없겠다.
나는 지금껏 세 차례 교황 방한을 경험했다. 그 처음은 요한 바오로 2세였다. 그는 폴란드 출신 교황으로서 1984년에 광주를 직접 찾았다. 그때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기에 교황이 누군지 도통 관심이 없었다. 한데 주말 아침, 친구의 전화 한 통을 받고선 교황 행렬이 지나간다는 금남로에 나갔다. 광주은행 사거리에서 친구를 만났고 교황을 보겠노라며 도열해 있는 인파 사이로 들어갔다.
기다림은 길었으나 친견(?)은 찰나였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차량 유리 박스 안에서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지나갔다. 순식간이었다. 이런 젠장. 고작 늙은 서양인 뒷모습이나 보라고 일요일 거리를 헤맸단 말인가. 나는 괜스레 죄 없는 친구를 타박했다. 새삼 지금은 하늘에 있는 친구에게 미안해진다.
뒷모습만 남기고 사라졌던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다시 찾은 것은 그로부터 5년 뒤였다. 당시 나는 요셉이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던 터라 성당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새벽녘 여의도로 향했다. 1989년 가을이었다. 여의도 상공에 떠있는 가을 햇살은 따가웠다. 그날 정장 차림에 신문지 모자를 쓴 나는 60만 군중들과 함께 외쳤다. “비바 파파”, “비바 파파”
90년대에 들어서 대학 졸업과 결혼을 했고 교사가 되었다. 두 아이도 태어났다.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를 거쳐, 베네딕토 16세로 바뀌었다. 이 무렵 나는 성당에 발바닥만 찍을 뿐이었고 툭하면 사찰 순례를 떠나는 붓다를 사랑하는 가톨릭 이단 신자였다. 향불을 사르면서 관옥 목사님 말씀과 그레고리오 성가를 들었고 일원상 앞에서 명상을 했으니 종교통합 신자였다.
2013년 베네딕토 교황이 스스로 퇴임했다. 요즘 말로 자진 하야라 할까. 한때 가톨릭의 발전을 막는 교황이라 비난했었는데 꽤나 머쓱했고 죄송했다. 그토록 멋있게 퇴임한 비바! 베네딕토16세. 회개와 더불어 용서를 구합니다.
침몰한 세월호 유가족의 절규가 하늘을 찌르던 2014년 8월. 신임 교황 프란치스코가 우리나라를 찾았다. 세 번째 교황을 만나기 위해 아내 손을 잡고서 자정녘 광주역에서 기차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광화문. 한국 순교자 시성식장이었다.
그때 장면들이 선하게 떠오른다. 소형 소울 자가용을 타고 등장한 교황. 서두 차량이 뿜던 라이트 불빛과 시청 허공을 가르던 취재 헬기의 아련한 굉음. 환호성을 올리던 군중들과 아이돌을 맞이하듯 “비바 파파” 외치며 달려가던 귀여운 수녀님들. 프란치스코 교황은 차에서 내려 30일 넘도록 단식하던 유민 아빠의 손을 잡아 주았다.
당시 어느 못난 기자가 교황에게 “세월호의 경우는 중립이 좋겠다”라고 하자 교황은 단호하게 고통 앞에 중립이란 없다고 했다. 방한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가족이 진도까지 메고 걸었다던 십자가를 바티칸에 가져갔다. 십 년 전 펼쳐졌던 8월의 크리스마스였다.
곧 새로운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가 시작될 것이다. 얼마 전 보았던 영화 <콘클라베>의 대사가 한 생각난다.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확신입니다.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확신은 치명적인 포용의 적입니다. 그리스도조차 종국에는 확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던가요?" 극 중 로렌스 추기경이 콘클라베에 참석한 추기경들에게 한 말이다.
고뇌하면서 소외된 이를 포용하는 교황을 기대한다. 내 생애 여섯 번째 콘클라베의 결과가 궁금하다. 시스티나 성당에 모인 추기경들은 죄인이라 고백했던 교황 프란치시코 후임을 선출할 것이다. 베드로 이래 267대라고 한다. 바티칸궁에서 하얀 연기가 오를 때면 세상은 새 교황의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라는 축복에 환호할 것이다.
신임 교황명으로 요셉 1세는 어떨까. 의로운 사내이자. 노동자의 수호자요. 성가정의 상징이며 마리아의 베필이신 요셉 성인 말이다. 혹시 누군가 당신 세례명이 요셉인 까닭에 그러냐고 묻는다며 베드로처럼 부인하리라. 나의 성인은 아리마테아 지방 출신 요셉이니 오해마시길. 그저 동명이인 올시다.
베르고글리오. 프란치시코교황님. 당신이 교황이여서 자랑스러웠고 행복했습니다. 굿바이 비바 파파. 감사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