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관식과 애순에게

by 박신호

“아직도 안 보셨어요? '폭싹 속았수다' 말이에요.” 지인의 말투에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이럴그저 뻘쭘하게 웃을 뿐.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대화란 주고받는 핑퐁 게임과 같은 것. 나는 좋은 정보에 감사하며 "아 그래요, 어디서 볼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 상대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넷플렉스”


"폭싹 속았수다"란 제목을 들었을 때 처음엔 사기 당한 피해자를 다룬 드라마인가 싶었다. 폭싹? 폭삭? 표기법도 헷갈렸다. 정답은 폭삭이었다. 앞의 받침이 폐쇄음일 경우 다음 첫 음운은 된소리로 발음이라는 복잡한 설명은 그냥 접어두자. "폭싹 속았수다"는 '고생이 많았다'는 제주 방언이었다.


결정적으로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것은 반 아이들의 반응 때문이었다. "폭싹~" 이런 희한한 제목의 드라마를 들어보았냐고 물었더니 여자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롯데월드에 나타난 조선인이거나 서울광장에 출현한 칼리하리 사막 부시맨의 꼴이다. 퇴근 후 아내에게 폭싹~ 드라마를 아느냐고 묻자 동자승 보듯 쳐다보더니 넷플렉스 아이디와 비번이라며 적어준다.


근래 인상 깊었던 드라마 두 편이 생각난다. 먼저 밤낮으로 학교 일진들에게 얻어터지는 약골 남학생의 분투기를 다룬 <소년시대>. 그 이름도 찬란한 부여 흑거미, 아산 백호, 청룡 같은 전설의 동물명이 난무하고 "쓰~벌"과 같은 찰진 욕설이 귀에 감기던 드라마였다. 다른 한 편은 <우리들의 블루스>. 웬만한 유명 소설 보다 울림이 컸던 드라마였다. 삼각, 사각 남녀 관계를 설정하던 막장 드라마와는 견줄 수 없는 품격 있는 서사극이었다. 덕분에 드라마는 B급 문화라는 선입견도 바뀌었다.

TV의 선봉장은 단연 드라마다. 술술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파노라마와 같은 이야기들. 힘써 독해할 필요도 없다. 긴장을 풀고서 편한 자세로 바보상자가 보여주는 영상만 보면 될 일이다. 해로운 드라마가 있다. 고성과 분노, 저주가 넘실대는 독설임에도 시청삼매에 빠져있는 아내를 볼 때면 정신 건강이 염려된다. 물론 장점도 있다. 극 중 인물이 겪는 불행에서 위안을 얻고, 역경을 이겨낸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다 보면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하는 마법을 순간을 맞이한다.


지난날 안방을 차지했던 인기 드라마들이 떠오른다. 흑백 TV 시절, 십 원을 지불하고서 남의 집 안방에서 숨죽이고 보았던 <여로>를 필두로, 매주 방영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 뿐이랴. 사극 <용의 눈물>과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역사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던 사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의 인생 드라마는 "똥덩어리" 대사가 번쩍이던 <베토벤 바이러스>이다. 마에스트로 강마에를 얼마나 사랑했던가. 강마에의 카리스마에 취해서 그만 클래식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말았다.

16부작 <폭싹 속았수다>는 고소한 양갱 맛이다. 등장인물의 대사는 달콤했고 구성은 섬세했다. 3대에 걸친 오애순의 삶과 우리의 현대사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작품이었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지난 시절의 잔영을 발견하는 것도 솔솔 했다. 주인공 양관식과 오애순이 관통했던 세월은 부모님이 보냈던 시절이었고, 양금영의 인생은 내가 살아왔던 궤적과 동일했다.


수채화 같은 제주의 풍광에는 서러운 사연들이 서려있다. 해방직후 4. 3의 아픔이 이곳 토박이들 가슴에 핏물이 되어 내재율로 흐르는 까닭이다. <폭싹 속았수다>과 <우리들의 블루스> 두 작품이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는 이유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그리기에 적합한 곳인 까닭이리라. 검푸른 바다에 몸을 던지는 해녀들과 넘실대는 파도와 싸우는 선원들. 해변가에 늘어선 갑남을녀의 좌판들. 절박한 삶의 현장에서 피어난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는 작가의 내공 덕분이었다.


옥에 티라면 과한 산파조의 눈물 타령이었다. 애순과 금영의 역할을 동시에 연기한 아이유의 눈에는 화수분 같은 눈물이 쉬지 않았다. 하나 더 지적하자면 자신의 삶 전부를 자녀들에게 갈아 넣는 설정도 불편했다. 자식들에게 저당 잡힌 인생이라니. 새삼 가정을 이루고 생활전선을 종횡무진하는 세상의 모든 남편과 아내들에게 위로의 박수를 보낸다.

양관식과 오애순의 인생에는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이 겹쳐 있었다. 아버지는 가난한 남녘 끝 고흥에서 태어났다. 봄마다 보리고개를 넘나들었고, 중학교도 제대로 마칠 수 없었고, 형편이 조금 좋아지던 중년에는 교통사고로 장애자가 되었다. 장애인이 된 남편을 노년이 되도록 돌보았던 어머니의 인생은 또 어떠한가? 어머니는 오애순보다 더 험한 삶의 길을 걸었다.


<폭싹 속았수다>는 세상의 아비, 어미 된 자들을 위한 헌사다. 마침 어버이날이다. 드라마의 양관식과 오애순처럼 우리 세 자녀를 위해서 주어진 삶을 갈아 넣었던 나의 관식과 애순 씨에게 카네이션 한 송이를 바치고 싶다. "당신들 정말 '폭싹 속아수다'. 나의 박관식, 이애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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