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용 티슈를 꺼내서 귓 뒤쪽을 닦는다. 박박 문지르며 닦는다. 평소 손길이 닿지 않았던 귓바퀴 청결까지 신경이 쓰이다니 별스럽다. 혹여 몸에서 냄새가 날까...싶어지는 나이가 되었다.
엊그제 아내가 늙어갈수록 추레한 노인 냄새를 풍기면 안 된다며 작은 향수병을 책상에 놓고 갔다. 문득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가 싶어 킁킁거렸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오래전 선배 교사에게 맡아졌던 냄새가 떠 올랐다. 내 옆자리에 앉았던 선배의 옷자락에서 풍기던 그 쿰쿰한 냄새. 그때부터 늙음이란 육신이 발효되는 과정이라 믿었다.
오십 고개를 넘자마자 노안(老眼)이 찾아왔다. 본시 심한 난시를 소유한 탓에 활자 판독을 흐리게 하는 노안은 고약했다. 얼굴에 달라붙은 거미줄 같았다. 게다가 목구멍이 포도청인 교사다 보니 교재 준비부터 수업 시간까지 곤란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결국 돋보기를 맞추기 위해 안경점을 찾았다.
이어진 노화는 탈모였다. 대학생 시절부터 새치가 많았던 터라 틈틈이 뽑아대곤 했다. 엘리베이터에 혼자일 때면 고집스레 새치를 토벌했다. 그렇게 십여 년이 지났을까? 머리숱이 부쩍 사라진 걸 눈치챘다. 더불어 부계의 유전자를 입증하는 듯 M형 탈모도 진행되기 시작했다. 하루는 길게 자라난 한 가닥 눈썹 터럭에 기겁했다. 주위에선 눈썹 문신도 권했으나 팬더가 연상되어 고개를 흔들었다.
다음은 입술이 노화에게 공격당했다. 의사에 따르면 피지가 많은 체질이어서 희긋희긋한 반점이 생겼다고 했다. 하여 레이저로 입술 피부를 지져 보았으나 고통만 심할 뿐 피지는 장마철 잡초처럼 기세를 더하였다. 의사는 죽고 사는 질환이 아니라면서 그냥 살아보라고 주문했다. 옳은 말씀, 말 그대로 치료 포기. 노화의 한판승이다. 붉은색 립밤으로 보정은 하지만 이 또한 피곤할 뿐이다.
노화의 기세는 더욱 거칠어졌다. 이번에는 방광이 위기였다. 새벽 4시가 되면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방광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압박감이라니. 그냥 무시하고 잠을 이어가기엔 목에 걸린 가시처럼 편치 않았다. 매일 새벽 화장실을 다녀오는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은 측은지심으로 가득했다.
“그만, 제발 여기까지만...” 노화에게 종전을 청해보았으나 허사였다. 마침내 마의 삼각편대라 할 수 있는 혈압, 고지혈증, 두통이 등장했다. 그동안 부지런히 걸어 다녔건만 이래도 되는 거냐? 황당했다. 의사는 모두 다 초기라며 감량과 근력 운동을 추천했다. 원인을 따져보니 즐겼던 아이스크림과 스낵 과자에 혐의가 갔다. 아내는 탄수화물과 설탕 중독 때문이라 했다. 아무튼 "내 탓이요, 내 탓이요"다.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았으니 다시 한 살이 되었다. 이제 늙음에게 빼앗겼던 육신의 영토를 수복하고 싶다. 무좀. 역류성 식도염 같은 잔당들도 있으나 적절한 약물 처치로 진압이 가능하다. 다행스럽게도 왜적을 물리쳤던 충무공의 12척 같은 신체 부위가 남이있긴 하다. 우선 임플란트 걱정 없는 치아가 믿음직스럽다. 무알콜체질의 보답으로 받은 피부 상태도 쓸만하고 용종 하나 없는 대장은 든든한 싸움꾼이다. 무엇보다도 지적호기심은 여전하니 하늘께 감사드린다.
과연 노화의 침입을 막아낼 수 있을까? 설마~ 언감생심이다. 분열을 거듭한 세포가 힘을 잃으면 생명은 자동 소멸하는 법. 이것이 자연의 순리이니 어찌 거스르겠는가. 하지만 남아 있는 오감의 샘을 믿고서 버텨내고 싶다. 챗GPT은 물론이요, ELP 축구와 클래식, 신간 서적도 부지런히 읽고. 필요한 자격증도 따고 유익한 강좌도 즐겨 들으련다. 펄떡이는 감각이 안녕을 고하는 그날까지 부여잡을 요령이다.
불로장생을 꿈꿨던 진시황도 별수 없이 죽음의 신에게 끌려갔으니 나 같은 존재는 말할 것도 없다. 늙은 육신은 낡은 옷과도 같은 것. 언젠가 훌훌 벗어던질 수밖에 없다. 때가 되면 늙은 육신도 새 옷을 입는다지만 아직은 알 도리 없는 빈 그림자 같은 말이다.
선가(禪家)의 화두 '부모미생전'이 떠오른다. 본래의 나를 설계한 선한 진리를 바라본다. 지금껏 내 삶을 이끌어 온 영원한 존재에게 부탁해야 한다. 괜찮은 늙음을 허락해 달라고. 언제가 불려 갈 그때까지 정성껏 몸을 닦고, 애써 걷고, 힘써 읽고 쓰면서 살아볼 일이다.
개똥 밭에 굴려도 이승이 좋다지만 개똥 냄새는 싫은 법이다. 평소 향수 사용을 즐기지 않았을 뿐더러 유별난 향기를 풍길 용기도 부족했다. 이젠 그런 시절이 지나고 있다. 용기를 내서 손목에 살짝. 목덜미에 살짝 향수를 뿌려본다. 오~ 이런 냄새. 그런 시절을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