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혜, <작은 땅의 야수>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한동안 유행했던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이다. 90년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조간신문을 펼쳐보니 한 면 가득 ‘가족 빼고 다 바꾸라’라는 구호가 굵은 고딕체로 나와 있었다. 모 재벌이 내세운 일등주의 광고였다.
평생토록 일등 경험이 없는 장삼이사들에게는 섬찟한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곧이어 루저, 스펙과 같은 단어가 등장하면서 이런 분위기는 한층 더해갔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부자 되세요’를 거치더니 승자 독식의 정글로 변해갔다.
여기 씁쓸한 이야기가 있다. 전화기를 발명한 이는 그레이엄 벨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21 년 전 이탈리아 사람 안토니오 매우치가 전화기를 발명했다면 다들 머리를 갸웃 뚱할 것이다. 가난했던 매우치는 자신이 발명한 전화기를 특허품으로 정식 등록을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한데 훗날 미국인 벨이 자신이 제작한 전화기로 정식 등록을 하였다. 그 결과 세상은 그레이엄 벨을 전화기의 발명가로 기억하게 되었다. 안타까운 이야기다.
김주혜의 <작은 땅의 야수들>을 읽고 나서 왜 일등주의가 떠올랐을까? 이 작품은 2024년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았으나 같은 시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에 파묻혀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다. 한강 작가의 여러 도서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리면서 출판계를 흐뭇하게 했지만 톨스토이 문학상에 빛나는 <작은 땅의 야수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드물었다.
작년 겨울, <작은 땅의 야수들>에 대한 풍문이 내 귀까지 닿았다. 인기 유튜브 채널에서 김주혜 작가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방송에 나온 그녀의 발랄함은 스카이 콩콩 놀이처럼 통통 튀었다. 젊은 재미교포 2세임에도 민족의 근현대사를 7년 동안 책 안에 담아냈다는 점이 놀라웠다. 작가의 외조부가 백범을 도왔던 독립운동가 출신이라는 점도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다음날 도서관에서 찾아낸 <작은 땅은 야수들>은 두툼했다. 표지에 그려진 호랑이 줄무늬도 강렬했다. 육백 쪽이 넘는 분량임에도 작품이 술술 읽혔다. 아마도 그 무렵 읽었던 한강 작가의 난해한 작품에 대한 반작용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작은 땅은 야수들>은 독자에게 친절했다. 박경리의 <토지>와도 일맥상통하고, 이민진의 <파친코>와도 닮은 분위기였다. 모두가 현대사를 다루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작은 땅의 야수들>을 읽으면서 우리 문학의 범주를 생각해 보았다. 작가는 재미 교포이고 영어로 먼저 출판된 작품이라 했다. 외국어로 출판된 책을 한글로 번역했다는 점 때문에 우리 문학으로 다룰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우리 문학의 범주는 문학 수업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그 범주는 다양하여 한국인이 쓴 우리 글로 된 작품과 한국인이 쓴 외국어 소설. 뿐이랴 외국인이 한글로 쓴 문학도 있을 것이다.
이 모두가 우리 문학일까? 수업 시간에는 우리의 정서가 녹아있다면 우리 문학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저 교과 지도서에 나와서 가르쳤을 뿐이다. 어쩌면 ‘정서’라는 요소도 주관적인 까닭에 그 범주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다행하게도 <작은 땅의 야수들>은 작가 김주혜가 직접 한글로 번역했다고 하니 우리 문학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작은 땅의 야수들>의 미덕은 흡입력과 디테일에 있다. 일제의 폭압 통치와 문화통치 기간을 거쳐 일제 말기와 해방 정국의 혼란. 이후 한국 전쟁과 산업화 시작까지. 시대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이 땅의 민초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에 더하여 개인의 디테일한 일생과 기생. 자본가, 사회주의자, 일본군, 소작인, 지식인 등 다양한 군상에 대한 작가의 심리 묘사는 탁월했다.
이 작품은 옥희, 월향, 은실 같은 여인들의 삶이 뼈대를 이룬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옥희의 삶은 기생과 교사를 거쳐 해녀에 이르는 기구한 삶을 보여준다. 험악한 시대일수록 일차적인 희생양들은 약자이기 마련이다. 병자호란 때 끌려갔다 환향했던 여인들을 화냥년라 조롱하며 피박 했던 역사가 그렇다. 거대한 역사의 물결에 갇힌 민중의 삶은 생존하기도 힘든 처지에 빠지게 된다. 전쟁과 빈곤의 수렁에 처한 개인의 운명은 비참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이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다. 임진왜란을 복기하며 <징비록>을 저술했던 유성룡의 뜻도 그러했으리라. 이러 의미에서 <작은 땅의 야수들>는 또 다른 <징비록>이라 여겨진다. 광복절과 홍범도를 부인하고 일제 덕분에 수혜를 누렸다고 주장하는 뉴라이트 무리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소설은 시대를 살아가는 파란만장한 인간의 이야기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은 이러한 삶을 다룬 대표작이라 하겠다. 마찬가지로 김주혜의 <작은 땅의 야수들> 역시나 힘겨운 시대를 견뎌낸 민중을 위한 교향곡이다. 백두산 호랑이가 새 시대를 향해 포효하는 새날을 그리며 우리 곁에 다가온 김주혜 작가를 주목해 본다.